성수동의 이중주 — 굴착기가 들어오는 날, 나는 커피를 내리러 갔다

성수동은 공장과 카페가 한 블록 안에서 공존하는 도시다. 재개발 계획이 발표된 4월의 일요일 오후, 성수1가를 걸으며 본 것과 못 본 것들을 기록한다. 20대의 시선으로 쓴 재개발 노트.

성수1가, 한 블록 안에 두 시대가 있다

일요일 오후 2시, 성수역 4번 출구에서 나와 성수1가 쪽으로 걸었다. 200m를 채 못 갔을 때 한 블록 안에서 두 시대가 겹치는 걸 봤다. 왼쪽엔 철제 셔터를 내린 1980년대 제혁공장, 오른쪽엔 통창 카페와 셀렉트숍. 공장 간판 위로 새 프로젝트 광고판이 덧씌워져 있었다. "성수역 일대 준공업지역 역세권 활성화 — 최고 49층". 그 아래 작은 글자로 적힌 "2027~". 올해는 2026년, 그 "2027~"이 나에겐 내년이다.

나는 20대이고, 이 동네의 다음 10년을 살아갈 세대다. 그래서 재개발 기사를 볼 때마다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그 49층이 올라가는 동안, 이 1층의 기억은 어디로 갈까."

공장의 소리, 카페의 소리

성수동을 걸을 때 제일 먼저 느끼는 건 소리의 이질감이다. 500m를 걷는 사이 세 가지 소리가 번갈아 귀에 박힌다. 공장의 프레스 소리(낮게 쿵-쿵), 카페의 에스프레소 머신 소리(짧게 치익), 전동 스쿠터 배달원의 브레이크 소리. 이 셋이 동시에 들리는 구간이 있다. 성수1가 아차산로 17길쯤. 나는 그 교차점에서 5분 정도 서 있었다. 공장 건물 벽면에 붙은 "임대문의" 종이가 바람에 살짝 흔들렸다.

내가 본 네 가지 풍경

오늘 걸으면서 눈에 박힌 네 장면을 기록해둔다. 사진보다 글이 더 오래 간다는 걸 나는 몇 번의 재개발에서 배웠다.

첫째, 1980년대 적벽돌 공장 1층에 들어선 스페셜티 커피 로스터리. 프레스 기계가 있던 자리에 에스프레소 머신이 놓여 있다. 천장 높이 약 4.2m, 철골이 그대로 노출돼 있다. 이 "있던 것을 살린다"는 방식이 성수동의 초기 핵심이었다.

둘째, 그 옆 건물은 통째로 스튜디오·갤러리 용도로 바뀌었는데, 주인 부부의 이름이 간판에 남아 있다. "김○○·이○○ 1977년 설립". 건물은 변했는데 이름은 안 변했다. 이 결이 좋다.

셋째, 블록 끝자락의 1세대 아파트. 5층 붉은 벽돌, 엘리베이터 없음, 옥상 물탱크 외부 노출. 재개발 구역에 이미 포함된 듯 창문마다 "이사 문의"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넷째, 골목 안쪽의 목공소. 문 앞에 대패밥이 한 줌 떨어져 있었다. 안에서 망치 소리가 났다. 이 소리는 3년 뒤에도 이 자리에서 들릴까. 확신이 없다.

AI에게 물어본, 재개발이 지나간 뒤의 공통 패턴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ChatGPT에 물었다. "서울의 준공업지역 재개발이 끝난 뒤 5~10년 사이, 원래 있던 소규모 제조업이 어떻게 변하는지 패턴을 정리해줘." 답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 1차 이전(재개발 착공 전후 2년): 임대료 상승을 못 버티고 인접한 지역(주로 금천·구로·의정부)으로 60~70%가 이전. 둘째, 2차 정체(착공 후 3~5년): 남은 소상공인 중 30%는 대형 복합시설 내부의 B1 층이나 리테일 파트너로 재입점, 나머지는 폐업. 셋째, 3차 정착(완공 후 5~10년): 원래의 "제조+주거+상업"의 3층 구조가 "상업·오피스+주거"의 2층 구조로 단순화된다.

AI가 제시한 숫자는 평균치이니 그대로 받아들이진 않는다. 다만 패턴은 내가 강서·금천에서 지난 2년 동안 걸으며 본 것과 비슷했다. 이 구조적 패턴을 일찍 알수록 "무엇을 기록해둬야 할지"가 명확해진다.

내가 남기고 싶은 것은 결국 한 줌의 대패밥이다

재개발을 반대하는 글을 쓰려는 게 아니다. 나는 이 도시가 멈춰 있길 바라지 않는다. 다만 49층 아래에 깔릴, 지금 이 순간만 존재하는 것들을 기록해두고 싶다. 그게 내가 20대 블로거로서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일이다. 내가 1970년대의 서울을 아는 건 결국 누군가가 그 시대에 펜을 들었기 때문이다.

다음 주에는 공장 주인들을 한두 명 인터뷰해보려고 한다. 50대·60대의 목소리를 20대 블로그에 남겨두는 일. 세대 간에 놓치기 쉬운 다리를 한 칸이라도 놓을 수 있다면, 49층이 올라가는 동안 이 블로그는 계단이 된다.

오늘 내가 성수동에서 가져온 건 사진 한 장이 아니라, 카페 카운터에 앉아 마신 핸드드립 한 잔의 온도(섭씨 62도쯤)와, 머리카락에 붙은 대패밥 한 조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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