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대한의원 본관 1908 — 5월 셋째 화요일 오후 3시 35분, 연건동 시계탑 아래 28분
5월 셋째 화요일 오후 3시 35분, 나는 혜화역 3번 출구를 나와 서울대학교병원 정문을 끼고 돌아 연건동 28-2의 옛 대한의원 본관 앞에 섰다. 1908년에 지어진 적벽돌 2층 건물 한 채가 시계탑 아래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다. 1.7층 같은 2층, 화강석 띠 열한 줄, 박공 위 멈춘 시계 한 개. 사라지지 않은 한 채의 단면을 28분 동안 기록했다.
1908년 시계탑 — 그 자리에 1.7층 같은 2층이 서 있다
오후 3시 35분, 마로니에공원 동쪽 모서리를 지나 서울대학교병원 정문 안쪽 마당으로 들어섰다. 정문에서 약 80걸음, 동편 잔디 위로 적벽돌 2층 건물 한 채가 보인다. 한국 근대 의료의 시작을 알린 옛 대한의원 본관, 1908년 10월 준공. 멀리서 보면 분명 2층이지만, 박공 윗면과 그 가운데 시계탑이 한 단을 더 얹어 1.7층쯤 더 높은 인상으로 다가온다. 정면 폭은 눈대중으로 30m가 채 안 되는데, 시계탑이 중심에서 정확히 한가운데를 누르고 있어 좌우가 아주 단정하게 갈라진다. 검색 시점 기준 사적 제248호로 지정되어 있다(지정 연도 1981년 9월 25일).
적벽돌 사이의 흰 띠 — 화강석 열한 줄
가까이 다가가 외벽을 본다. 어두운 적벽돌 사이로 화강석 띠를 두른 가로선이 1층과 2층 사이를 가로지른다. 1층 창 상부와 2층 창 하부에 각각 한 줄씩, 그리고 처마 바로 아래에 또 한 줄, 그렇게 정면에만 굵직한 띠가 세 줄. 그 사이를 가는 화강석 띠가 더 잘게 끊어 들어가, 내가 정면을 따라 세어본 흰 띠는 모두 열한 줄이었다. 적벽돌의 결은 거칠고, 모서리는 평쌓기로 단정하게 마감되어 있다. 1908년의 손이 회반죽으로 메운 줄눈이 백 년 넘게 그대로 남아 있다는 점이 가장 먼저 마음에 닿는다.
정면 11창과 박공 — 마로니에 그늘이 닿는 자리
1층의 아치창은 정면에 모두 열한 개. 정확히 그 위에 2층의 직사각형 창 열한 개가 한 줄로 더 있다. 창 둘레는 화강석 인방으로 둘러쳐 있고, 새시는 후대에 교체된 듯 알루미늄이지만 비례는 원형을 따른다. 박공 가운데에는 둥근 시계가 놓여 있다. 내가 시계를 본 오후 3시 41분, 박공 시계의 바늘은 10시 28분에서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검증 시점 기준). 시계탑 좌우로 두 그루의 마로니에가 가지를 폈고, 5월의 잎은 손바닥만 한 크기로 시계탑 박공 끝까지는 닿지 못한다. 다만 1층 아치창 다섯 번째 자리 위까지는 그늘이 한 뼘쯤 덮였다.
박물관으로 살아남은 본관 — 화요일 오후의 무료 관람
본관은 현재 서울대학교 의학박물관으로 쓰인다. 정문은 동쪽으로 돌아 들어가는 작은 계단 위. 화요일 오후 운영 중이라 문은 열려 있고, 입장료는 무료다(검증 시점 기준). 1층 로비를 지나 박물관 전시실로 향하는 복도는 폭이 약 2.4m, 천장 높이는 약 4.2m쯤 된다. 1934년의 화재 이후 내부의 상당 부분이 재건되었지만, 입구 바로 옆 계단실의 디딤판은 닳은 흔적이 깊고 콧등이 둥글게 무뎌져 있다. 한 칸의 디딤판 폭은 약 28cm, 28번 디뎌 올라간 2층 복도에서 정면 창 너머로 마로니에공원 쪽 잔디가 한 폭으로 펼쳐졌다.
2층 첫 번째 전시실 입구의 안내판에는 1899년의 광제원, 1900년의 의학교, 그리고 1907년 이 세 기관을 하나로 통합해 대한의원이 발족한 짧은 경위가 한 문단으로 적혀 있다. 그 옆에 1908년 준공 당시의 흑백 사진 한 장이 걸려 있고, 사진 속 정면 시계탑은 오늘 내가 본 것과 정확히 같은 자리에서 같은 박공 각도로 서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사진 속 시계 바늘은 5시 30분 어디쯤을 가리키고 있다는 정도. 같은 자리에 같은 모양으로 서 있는 한 채가, 시간을 가리키는 방식만 두 번 다르다.
사라지지 않은 한 채 — 사적 제248호의 두 얼굴
이 건물은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한쪽 얼굴은 1908년 대한제국이 마지막 의지로 지은 근대식 의료기관의 본관이고, 다른 얼굴은 곧이어 조선총독부 의원으로 전유된 상징이다. 1907년 의정부 단계에서 한국 의료의 전기를 마련한다는 명분으로 추진되었지만, 준공 직전의 정세는 본관의 정문 위 박공 시계가 누구의 시간을 가리키게 될지 정해 두지 않았다. 검색 시점 기준 자료에 따르면 정문 위 머릿돌의 글씨는 한 차례 바뀌었다고 한다. 두 얼굴 사이에서 적벽돌 한 장 한 장이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는 것이, 이 건물이 사라지지 않은 가장 분명한 이유처럼 보인다.
결론 메모
오후 4시 3분, 마로니에공원 쪽 동문으로 빠져나오면서 다시 한 번 돌아본다. 정면의 화강석 11줄, 1층 아치창 열하나, 2층 직사각형 창 열하나, 그 위 멈춘 시계 한 개. 사라지는 것을 기록한다고 했지만, 사라지지 않은 한 채를 기록하는 일은 같은 일의 또 다른 얼굴이다. 옛 대한의원 본관은 그렇게 한 자리에서 두 번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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