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 인쇄골목 1976년 3층 인쇄소 — 5월 넷째 목요일 오후 1시 58분, 외벽 환기구 28개와 처마 6.4m
충무로3가 인쇄골목 안쪽으로 두 번째 갈래를 따라 들어가면 1976년 준공이라 머릿돌에 적힌 3층 인쇄소 사옥이 한 채 서 있다. 오늘 오후 1시 58분, 나는 그 건물 앞에서 외벽 환기구 스물여덟 개와 처마 6.4m를 차례로 세었다. 사라지기 전, 단면 한 장은 적어두고 싶었다.
처음 마주친 외벽 — 적벽돌과 환기구 28개
나는 충무로역 4번 출구에서 인쇄골목까지 약 7분을 걸었다. 골목 폭은 3.8m쯤이고 양옆으로 1980년대 안팎의 4층 인쇄·제본 상가가 마주 보고 늘어서 있다. 두 번째 갈래에서 왼쪽으로 꺾자, 정면이 적벽돌인 3층 건물이 나왔다. 외벽에는 가로로 길쭉한 환기구가 정확히 스물여덟 개 박혀 있었다. 1층에 아홉 개, 2층에 열 개, 3층에 아홉 개. 모두 검정 알루미늄 격자였고, 환기구 한 개의 크기는 가로 50cm 세로 15cm 가량으로 보였다. 격자 사이 폭은 손가락 한 마디만 했다. 인쇄기에서 올라오는 잉크 휘발성분과 종이 먼지를 빼느라 그렇게 많이 뚫어둔 것이다. 줄을 세는 동안 안에서는 4색 인쇄기의 일정한 모터 소음이 새어 나왔다.
처마 6.4m — 옆 신축과 4.2m의 차이
오후 2시 4분, 바로 옆 건물의 처마와 비교해봤다. 옆은 4층 신축 인쇄소였고 2019년 준공이라 적혀 있었다. 처마는 어림잡아 10.6m. 1976년 사옥의 처마는 6.4m 정도로, 약 4.2m가 낮다. 한 층 천장 높이를 단순 평균하면 1976년 사옥은 2.1m 안팎, 신축은 2.6m 안팎. 50년 차이가 한 층에 50cm씩 벌어졌다. 이 차이는 미감의 문제가 아니다. 인쇄기 본체의 키, 종이 적재대의 폭, 작업자가 종이뭉치를 들고 허리를 펴는 머리 공간이 그 사이에 다 들어 있다. 나는 처마 아래 1976년의 모르타르 마감을 손등으로 한 번 쓸어 봤다. 표면은 거칠고, 50년의 매연이 묻어 손등이 회색으로 변했다.
정문 위 캐노피 — 폭 2.2m, 경사 7도
정문 위에는 폭 2.2m, 깊이 1.1m의 캐노피가 달려 있다. 경사는 어림 7도쯤, 도로 쪽으로 살짝 기울었다. 캐노피 위에는 1970~80년대에 흔히 쓰던 골판형 폴리카보네이트가 얹혔다가 갈색으로 빛바랜 상태였다. 모서리 한 곳이 30cm쯤 들떠 안쪽이 보였다. 캐노피를 지탱하는 철제 브래킷은 검정 페인트가 거의 다 벗겨져 적갈색 녹으로 되어 있었다. 정문 옆 손글씨 간판에는 "○○인쇄 1976"이라 적혀 있었고, 그 아래 더 작은 글씨로 옛 6자리 국번이 흐릿하게 남아 있었다. 캐노피의 7도 경사가 본래 설계인지 50년의 처짐인지, 한참 올려다봤지만 알아내지 못했다.
3층 옥상 — 슬레이트 두 채와 빨랫줄 11m
나는 골목 끝으로 돌아가서 옥상이 살짝 보이는 각도를 잡았다. 3층 옥상에는 슬레이트 캐노피 두 채가 서로 1.3m쯤 떨어져 서 있다. 한 채는 가로 4m 세로 2.5m, 다른 한 채는 가로 3m 세로 2m 정도. 그 사이로 빨랫줄이 두 줄 걸쳐져 있었고, 길이를 합치면 약 11m로 보였다. 한 줄에는 인쇄소에서 쓰는 듯한 회색 면장갑 열네 짝이 좌우 좌우 좌우 순서로 걸려 있었다. 다른 한 줄은 비어 있었다. 옥상 슬레이트는 1980년대 이전에 흔히 시공된 자재라 가까이서 들여다보는 일은 하지 않았다. 망원으로 지표만 기록해두기로 했다.
인쇄골목 1970년대 사옥 — 다섯 채와 한 채
오후 2시 21분, 나는 같은 골목에서 비슷한 시기의 인쇄소 사옥을 더 찾아봤다. 형식이 거의 같은 건물(적벽돌 3층, 외부 환기구, 캐노피, 슬레이트 옥상)이 다섯 채가 남아 있었다. 외벽 머릿돌에 1973년, 1975년, 또 1976년, 1977년, 1980년이 각각 적혀 있었다. 그 사이에 2018년 이후 준공된 8층 신축이 한 채만 새로 끼어 있었다. 다섯 채와 한 채. 이 비율이 지금 충무로 인쇄골목의 현재 단면이다. 정비계획 도서를 직접 확인하지 못했으니 단정은 못하지만, 다섯 채 중 머릿돌이 가장 또렷한 1976년 사옥의 환기구 배열은 다른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었다.
다음 메모 — 한 번 더 와서 단면을 그려둘 것
첫째, 외벽 환기구 28개의 격자 간격과 1·2·3층 배치를 눈대중으로 적기는 한계가 있다. 다음에는 5m 줄자를 가져와 한 줄만이라도 정확히 재둘 생각이다. 둘째, 캐노피의 7도 경사가 처짐인지 원래 설계인지 모르겠다. 옆 1973년·1977년 사옥의 캐노피 각도와 비교해보자. 셋째, 옥상 슬레이트는 안전상 가까이 갈 수 없으니 망원렌즈로 재질만이라도 확보. 넷째, 1976년 사옥의 1층 입구는 평일 오후 네 시 반 이후 잠깐 열린다는 골목 주민의 말이 있었다. 그 시간에 다시 와서 1층 인쇄기실의 천장 높이만이라도 눈대중으로 적어두자. 사라지면, 환기구 스물여덟 개도 함께 사라진다.
충무로 인쇄골목, 1976년 3층 사옥, 환기구 28개와 처마 6.4m — 사라지기 전 한 번은 단면을 적어두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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