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둘째 월요일 오후 1시 53분, 도산공원 앞 횡단보도 — 점심 후 30대 남자 옷차림 열둘
점심을 마친 사람들이 다시 사무실과 스튜디오로 흩어지는 시간, 도산공원 정문 앞 횡단보도는 잠깐 한산해진다. 5월 둘째 월요일 오후 1시 53분, 신호 세 번이 바뀌는 사이 내가 센 30대 남자 열둘의 옷차림을 색·실루엣·소재로 정리한다.
1. 도산공원 정문 앞, 점심 직후의 햇빛
나는 평일 오후 두 시 직전의 도산공원 앞에 자주 서 본다. 청담사거리에서 압구정로데오 방향으로 한 블록 위, 도산대로 76길로 꺾이는 코너의 횡단보도다. 사무실이 모인 신용산이나 광화문과 달리 이쪽은 점심 한 시간 반이 끝난 뒤에도 한낮의 햇빛이 카페와 쇼룸 사이에서 천천히 식는다. 5월 둘째 월요일 오후 1시 53분의 기온은 체감으로 22도쯤, 바람은 거의 없고 도산공원 쪽 가로수의 그늘만 한 줄 길게 떨어져 있다. 점심을 끝낸 사람들이 카페 한 잔을 들고 사무실 방향으로 횡단보도를 건너고, 미팅이 끝난 사람들은 반대쪽으로 흩어진다. 나는 정문 맞은편 편의점 처마 아래에서 신호 세 번이 바뀌는 동안 30대 남자 열둘의 옷차림을 마음속으로 메모했다.
2. 색 — 무채색 사이에 따뜻한 한 명이 끼어든다
오전 신용산에서 본 옷차림은 베이지·아이보리·라이트그레이의 옅은 톤이 압도적이었는데, 도산공원 앞은 그 위에 다른 결이 한 겹 얹혀 있었다. 열둘 중 일곱이 여전히 옅은 무채색 계열이었지만, 한 명은 머스타드의 옅은 셔츠, 한 명은 페일코랄 톤의 폴로를 입고 있었다. 같은 평일 오후라도, 사무실 광장 앞의 채도와 카페 거리 횡단보도의 채도는 분명히 한 단계 다르다. 검정·차콜 같은 무거운 색은 둘뿐이었고, 한 명은 카키, 한 명은 옅은 올리브였다. 색이 빠진 옷 위에 따뜻한 톤 한두 명이 끼어들면 시선이 어디서 멈추는지가 그제야 보인다. 모두가 같은 무채색일 때보다, 색을 빼는 흐름이 더 분명해 보였다.
3. 실루엣 — 어깨는 떨어지고, 슬랙스 통은 더 넉넉해졌다
실루엣은 오전과 비슷한 흐름이 이어졌지만, 차이가 한 군데 있었다. 오전에는 발목까지 곧게 떨어지는 스트레이트 핏이 일곱이었다면, 오후 도산공원 앞에서는 발목 위에서 통이 한 번 더 넓어지는 와이드 슬랙스가 다섯, 스트레이트가 넷, 약간 테이퍼된 슬림이 셋이었다. 와이드 슬랙스의 밑단은 발등에 한 번 살짝 접히는 길이가 많았다. 어깨선은 거의 모두 본인 어깨보다 한 사이즈 정도 떨어져 있었고, 자켓이나 셔츠의 가슴 폭도 평소보다 1~2센티 여유가 있었다. 신발은 흰색·아이보리 가죽 스니커즈가 다섯, 검정 더비가 둘, 갈색 스웨이드 로퍼가 셋, 발끝이 둥근 슬립온이 둘이었다. 부츠는 한 명도 없었다. 5월 둘째 주의 오후가 본격적으로 가볍게 디뎌지고 있다는 뜻으로 읽었다.
4. 가장 자주 본 한 벌 — 라이트그레이 자켓에 흰 티, 와이드 슬랙스
열둘 중 셋이 거의 같은 구성이었다. 라이트그레이의 단추 두 개짜리 코튼 자켓, 그 안에 베이직한 흰 티, 아래에는 차콜 또는 다크 그레이의 와이드 슬랙스. 자켓의 라펠 폭은 7센티 정도로 가벼웠고, 어깨 패드는 거의 없는 듯 자연스러웠다. 한 명은 자켓 안에 옅은 베이지 셔츠를 추가로 받쳐 입었고, 다른 한 명은 자켓 대신 같은 컬러의 셔츠 자켓 한 장으로 톤을 통일했다. 같은 공식 위에서 한 겹의 재질과 한 단계의 색만 바꿔서 차이를 만든다. 어제 망원시장 시루떡 줄에서 본 옷차림과는 결이 또 다르다. 동네마다 디테일의 위치가 다르다는 게, 오후 도산공원 앞에서 다시 확인되었다.
5. 가장 인상 깊은 한 명 — 옅은 카키 워크 셔츠와 캐멜 와이드 슬랙스
열둘 중 한 명만 따로 메모했다. 키 178센티쯤, 옅은 카키의 워크 셔츠를 단추 두 개 풀고 그 위에 얇은 베스트 하나를 덧입은 사람이었다. 베스트의 색은 짙은 카멜에 가까웠고, 안주머니로 보이는 자수 한 줄이 가슴 부근에 가만히 박혀 있었다. 아래는 캐멜 톤의 와이드 슬랙스, 신발은 갈색 스웨이드 로퍼. 손목에는 가는 가죽 시계 하나만 차고 있었고, 카페에서 들고 나온 종이컵을 그대로 들고 있었다. 워크웨어의 디테일은 그대로 살리되, 색과 통으로 부드럽게 풀어 놓은 모습이었다. 평일 오후 도산공원 앞이라는 이 시간대와 장소가 가장 잘 받쳐 주는 한 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과 일상의 경계가 흐릿한 사람들의 옷차림은 늘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는다.
6. 20대인 내가 본 흐름 — 사무실 복장과 카페 복장의 경계가 더 흐려졌다
나는 20대 후반이고, 트렌드 글을 쓰면서도 옷을 '직업복'과 '쉬는 옷'으로 분리하지 않으려 한다. 오전 신용산역 1번출구에서 본 옷차림이 '사무실로 가는 길의 옷'이었다면, 오후 도산공원 앞 횡단보도에서 본 옷차림은 '일과 일상 사이의 옷'이었다. 자켓 한 장만 있으면 미팅도 가능하고, 그 자켓을 벗으면 그대로 카페에 앉을 수 있는 구성. 두 시간 사이에 같은 도시에서 본 옷차림이 이렇게 다르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트렌드는 한 도시 안에서도 동네마다 다른 속도로 흐른다. 같은 시즌, 같은 요일이라도 청담·압구정의 평일 오후가 신용산의 평일 오전과 조금 다른 결을 보이는 건 그래서다.
7. 결론 메모
5월 둘째 월요일의 도산공원 정문 앞은, 신호 세 번 동안 30대 남자 열둘의 오후 옷장을 압축해서 보여줬다. 색은 옅은 무채색 위에 따뜻한 한두 명, 실루엣은 어깨가 떨어지고 슬랙스 통은 넉넉해졌고, 신발은 모두 가벼웠다. 다음 주 같은 자리, 같은 시간에 다시 서 보려 한다. 한 주 사이 어떤 색 한 명이 사라지고 어떤 통 하나가 더 넓어졌는지 — 그 작은 차이가 트렌드의 실제 속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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