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둘째 금요일 오전 10시 28분, 사근동 살곶이길 — 셔터 여섯과 1981 우편함
5월 둘째 금요일 오전, 한양대 후문에서 살곶이다리 쪽으로 사근동 골목을 걸었다. 5월의 햇살은 11시 무렵부터 살곶이길의 좁은 폭을 위에서 아래로 길게 누르는데, 그 길이만큼 셔터들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낸다. 셔터 여섯, 1981이라 새겨진 우편함 하나, 그리고 사람보다 셔터가 먼저 보이는 사근시장 한 동 — 짧게 적어둔다.
오전 10시 28분, 한양대 후문에서 살곶이길로
한양대 후문(왕십리로28길)에서 사근동 살곶이길로 들어가는 어귀는 생각보다 좁다. 보행자 신호가 한 번 길게 뜨고, 그동안 길 폭을 어림잡아 본다. 4.2m쯤. 차 한 대가 지나면 사람은 옆 가게의 차양 아래로 한 발자국 비켜선다. 차양 아래엔 4월 말부터 떨어진 벚꽃 잎이 아직 몇 장 남아 있었고, 그 위로 신문 한 장. 신문 날짜는 5월 5일자였다. 사흘이 지났는데도 누구도 치우지 않았다. 사근동의 5월은 그런 동네다. 빠른 결정이 잘 일어나지 않는, 결정이 미뤄지는 동네.
셔터 여섯, 같은 색 같은 시간이 아니다
살곶이길을 100미터쯤 안으로 들어가면 좌우로 가게 셔터가 줄지어 나온다. 첫 번째는 회색 페인트. 1990년대 후반쯤의 색이다. 두 번째는 베이지. 한쪽 모서리가 녹슬어 있다. 세 번째는 군청색. 가장 새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손잡이 부근만 두 번 덧칠된 흔적이 있다. 네 번째와 다섯 번째는 같은 사람 손이 칠한 듯한 짙은 갈색. 이 두 가게는 같은 주인이 함께 운영했을 가능성이 크다. 여섯 번째는 셔터가 절반쯤 올라가 있고, 안쪽엔 박스 일고여덟 개가 차곡히 쌓여 있다. 영업이 멈춘 지 오래되지 않은 박스의 모서리. 셔터 여섯은 같은 색이 아니고, 셔터의 시간도 같지 않다.
1981 우편함 하나
다섯 번째 가게 옆 담벼락엔 우편함이 박혀 있다. 정확히는 담벼락이 아니라 가게 외벽 끝의 70cm짜리 콘크리트 기둥. 우편함은 손바닥 두 개를 합친 정도 크기이고, 청록색 페인트가 갈라져 안쪽 철판이 드러나 있다. 측면 작은 글씨로 "1981.4"라고 적혀 있다. 같은 자리에 1981년 봄부터 약 45년이 흘렀다. 그 옆엔 더 작은 도시가스 검침 표시가 새겨져 있다 — "1995.11. 設置". 두 시간 사이의 거리는 14년. 골목의 한 모서리에 두 시간이 함께 박혀 있는 셈이다. 어느 쪽이 더 나중까지 남을까. 아마 우편함 쪽일 것이다. 도시가스는 다음 단계에 일찍 정리된다.
사근시장 1층 — 사람보다 셔터가 먼저
살곶이길 끝에서 한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면 사근시장 1층이 나온다. 사근시장은 말이 시장이지 가게는 통로 양옆 단 일곱 곳. 그중 오늘 문을 연 곳은 두 곳뿐이었다. 형광등만 켜진 채 사람이 보이지 않는 가게가 다섯. 통로 끝쪽 노란 상자엔 매직으로 짧게 적힌 글씨가 보였는데, 정확히 읽히지는 않았다. 'ㅊㄱ'으로 시작하는 두 글자. 시장이 사라지는 일정이 적힌 상자가 시장의 중심에 놓여 있다. 부산스럽지 않다. 이 동네는 떠나는 일도 조용히 한다. 사람보다 셔터가 먼저 보이는 시장이 서울에 몇 군데 더 있을 텐데, 사근시장은 그 목록에 천천히 들어가는 중이다.
살곶이다리에서 본 시야 — 응봉산이 빠진 자리
살곶이길을 끝까지 걸으면 살곶이다리가 나온다. 1420년 무렵 처음 놓였고 지금은 보행자 전용 돌다리. 다리 위에 서면 응봉산 자락이 정중앙에 들어올 줄 알았는데, 새로 올라가는 35층 안팎의 아파트 두 동이 시야의 절반쯤을 막는다. 응봉산 능선의 위쪽 3분의 1만 빼꼼 보였다. 사라지는 시야. 사근동의 풍경에서 산이 빠지는 속도가 골목 한 칸이 닫히는 속도보다 빠르다는 생각을 했다. 셔터는 한 칸씩 닫히지만, 시야는 한 동씩 막힌다.
결론 메모
사근동은 다음 차례인 동네다. 셔터 여섯, 우편함 하나, 시장 한 동. 다음 답사 때 같은 위치를 같은 시간에 다시 찍어두려 한다. 5월의 셔터가 7월의 셔터와 같은 색이 아닐 것이다. 사라지는 것을 미리 다 기록할 수는 없지만, 셔터 여섯의 색만이라도 적어두자. 그게 이 블로그의 출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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