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넷째 목요일 점심 12시 40분, AI 셋에게 '2031년 신림1구역 신림로23길'을 묘사하라 했다 — 직접 걸은 32분과 어긋난 다섯 지점
나는 오늘 점심 12시 40분에 신림역 4번 출구를 나와 신림로23길을 32분간 걸었다. 평일 점심의 골목은 햇빛이 비스듬했고, 다세대 셔터 일곱과 1979년 각인 우편함 한 칸을 세웠다. 그리고 같은 골목을 ChatGPT, Claude, Gemini 세 AI에게 묘사하라 했다. 어긋난 지점은 다섯이었다. 도구는 도면을 닮았고, 도면은 우편함의 각인을 보지 못한다.
골목 들어서며 — 내가 걸은 32분
신림역 4번 출구로 나와 횡단보도 두 번을 건너면 신림로23길 입구다. 폭은 약 4.1m로 좁다. 양옆은 1980년대 초반에 지어진 4층 다세대가 대부분이고, 1층에는 셔터 일곱 곳이 닫혀 있었다. 그 중 세 곳은 손글씨 간판이 남아 있었다. "현대미용실", "신림이발관", "건강슈퍼". 페인트는 군데군데 떨어졌고, 글자 아래로는 옛 전화번호 02-872 국번이 절반쯤 비쳤다. 골목 중간 즈음 빌라 입구의 우편함을 보았다. 4층 8칸 중 3칸만 사용 중이었다. 한 칸 모서리에 "1979.07"이라 각인되어 있었고, 도장은 거의 벗겨져 손톱으로 긁으면 가루가 묻을 정도였다.
골목 끝에는 작은 공터가 있었다. 약 70㎡쯤이고, 비닐 천막 한 장과 플라스틱 의자 셋이 놓여 있었다. 동네 어르신 둘이 그늘에 앉아 계셨다. 한 분은 라디오를 듣고 계셨고, 한 분은 신문을 펴 두고 계셨다. 멀리 27층짜리 주상복합의 크레인이 한 대 보였다. 신림1구역 정비계획은 약 4만2천㎡ 규모, 약 760세대 공동주택이 예고된 상태로 알려져 있다. 나는 셔츠 깃에 땀이 배는 채로 다시 4번 출구 쪽으로 되돌았다.
AI 셋에게 같은 골목을 묘사하라 했다
나는 점심을 먹고 카페에 앉아 셋에게 동일한 프롬프트를 던졌다. "2031년 5월, 신림1구역 신림로23길의 평일 점심 풍경을 다섯 문장으로 묘사하라. 가시적 디테일 위주로." 응답을 받았다. 세 줄로 정리한다.
ChatGPT는 "유리 커튼월의 30층대 단지가 골목을 그늘로 덮고, 1층에는 카페와 베이커리, 약국이 차례로 들어섰다"고 적었다. Claude는 "기존 다세대 일부가 보존되고 외벽 리모델링으로 흰색 도장과 채광창이 추가되었으며, 골목 폭이 6m로 확장된다"고 적었다. Gemini는 "공원과 보행자 전용로가 확장되고, 닫혀 있던 셔터 자리에 공방과 작은 식당이 들어섰다"고 적었다. 셋 다 그럴듯했다. 그러나 내가 걸은 32분과는 어긋났다.
어긋난 지점 다섯
첫째, 셋 모두 1979 각인 우편함의 운명을 말하지 않았다. 정비 사업에서 이런 명패는 거의 폐기된다. 보존 대상이 되려면 사전 협의가 있어야 하는데, 그 협의는 도면에 잘 표시되지 않는다. 둘째, ChatGPT는 30층대를 단정했지만, 신림1구역의 현행 계획은 28~32층 혼합이 거론되는 상태다. 한두 층 차이는 작아 보이지만, 일조권 협의 결과에 따라 동수와 향이 달라진다.
셋째, Claude의 "다세대 일부 보존"은 신림1구역의 정비계획과 어긋난다. 이 구역은 전면 철거 후 재건축이 우세한 방향으로 진행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존이 일부라도 끼어들려면 별도의 합의가 필요하다. 넷째, Gemini의 "공방·작은 식당"은 역세권 동선의 임대료 부담을 고려하지 않은 묘사다. 신림역 도보 5분 안쪽에서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는 업종은 한정된다. 다섯째, 셋 모두 어르신 둘이 앉아 있던 플라스틱 의자 셋과 비닐 천막을 말하지 않았다. 그 의자는 도시 정비 도면에 그려지지 않는다.
AI가 가장 자주 빠뜨린 디테일
나는 다섯 지점 가운데 어느 하나가 가장 결정적이라고 단정하지 않는다. 다만 우편함의 각인과 의자 셋은 공통적으로 비가시화된다. 도면에는 동·층·세대수가 남지만, 사람의 앉음새와 페인트의 노화, 손글씨 간판의 02-872 국번 같은 것은 남지 않는다. AI 셋은 이 점에서 도면을 닮았다. 도구는 도구로서의 한계를 가진다.
다음 메모 — 내가 다시 확인할 것
다음 주에 같은 골목을 오전 시간대에 한 번 더 걷는다. 출근 시간의 사용 빈도와 점심 시간의 사용 빈도를 비교해 두려 한다. 그리고 신림1구역 정비계획의 최종 동수·층수가 확정되는 시점을 지켜보겠다. 그때 AI 셋에게 같은 프롬프트를 다시 던져 보고, 어긋난 지점이 줄어드는지 늘어나는지 기록하겠다.
도구는 도구다. 도면도 도면이다. 둘 다 우편함의 각인은 못 본다. 그건 내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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