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셋째 화요일 오후 3시 28분, 인사동 쌈지길 — 최문규의 나선 슬로프 네 층과 22년 된 노출 콘크리트
화요일 오후 3시 반쯤, 나는 인사동길 44 쌈지길로 들어섰다. 최문규가 2004년에 설계한 이 4층짜리 나선형 상가가 22년의 마모를 어떻게 견디고 있는지 직접 걸어 보고 싶었다. 노출 콘크리트와 슬로프, 47개 점포가 만들어 내는 한국 현대 상업 건축의 한 표본을 한 바퀴 돌아 본 기록.
안국역 6번 출구에서 쌈지길 입구까지 1분
안국역 6번 출구에서 인사동길로 내려와 약 200미터쯤 걸으면 왼편에 쌈지길 입구가 보인다. 화요일이라 평소보다 사람이 적었고, 외국인 단체 관광객 한 무리가 입구 앞 안내판을 사진으로 찍고 있었다. 입구의 폭은 어림잡아 8미터쯤. 바닥은 화강암 판석이 깔려 있는데, 모서리 몇 군데가 둥글게 닳아 있었다. 입구 위 머리벽에 붙은 "ssamzigil" 표지판은 살짝 빛이 바랜 흰색 알루미늄이었다. 인사동길의 차량 출입을 막아 둔 오후 시간대라 입구 앞까지 사람들의 걸음 속도가 충분히 느렸다.
1층에서 4층까지, 끊기지 않는 슬로프 한 줄
쌈지길의 핵심은 가운데가 뚫린 사각 마당을 빙 두르고 1층에서 4층까지 끊김 없이 이어지는 완만한 슬로프다. 계단이 거의 없이 천천히 오르내릴 수 있다는 점이 이 건물의 정체성에 가까웠다. 4층까지 올라가는 데 약 7분이 걸렸다. 슬로프의 폭은 어림 2.4미터, 경사는 체감 6~7도쯤. 노약자가 천천히 오르기에도 무리가 없어 보였고, 실제로 7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분이 손주의 손을 잡고 걸어 올라가고 있었다. 한 층을 도는 동안 천창에서 떨어지는 햇빛이 한 칸씩 옆 점포의 진열장으로 옮겨 갔다.
노출 콘크리트 22년 — 가는 실금 일곱 군데와 메운 두 군데
3층과 4층 사이 외벽 노출 콘크리트를 가까이 들여다봤다. 22년이라는 시간이 그대로 묻어 있었다. 큰 균열은 따로 없었지만 가는 실금이 일곱 군데 정도 보였고, 그중 두 군데는 회색에 가까운 새 시멘트로 메워 둔 흔적이 있었다. 모서리에는 새똥 자국과 빗물 흐른 자국이 그대로 남아 콘크리트 표면이 부분적으로 어두워져 있었다. 이런 흔적을 일부러 지우지 않은 점이 이 건물의 인상에 한몫하는 듯했다. 콘크리트 모서리의 거푸집 자국이 22년 전 그대로 일정한 간격으로 박혀 있는 것도 보였다.
점포 47개 중 13개는 새로 바뀌었다
각 층 슬로프를 따라 늘어선 점포는 모두 합쳐 47개였다(층마다 안내 게시판이 있어 셈하기 쉬웠다). 22년 전 개관 당시에 있던 공방·디자인 숍은 절반 가까이 자리를 떠난 듯 보였고, 어림잡아 13개 정도가 카페·전통 굿즈·캐릭터 굿즈·향초 가게로 새로 바뀌어 있었다. 1층 가장 안쪽에는 한지 공예 작가의 작업실이 그대로 있었는데, 입구에 "1999년부터"라는 작은 안내문이 붙어 있어 쌈지길 개관 이전 인사동 시절부터 이어진 가게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2층 모서리의 도장(印章) 가게도 22년째 같은 자리에 있었다.
옥상 마당의 작은 잔디 한 평과 안내 표지판 한 줄
4층 끝에서 옥상으로 올라가는 짧은 계단을 마저 올랐다. 옥상은 좁은 ㄷ자 마당이었고, 가운데 한 평쯤 되어 보이는 인공 잔디가 깔려 있었다. 그 옆 벤치에 앉아 인사동길을 내려다보니 종로 11길 골목과 인사동 큰길의 만남이 한눈에 보였다. 옥상 안내판에는 "쌈지길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길입니다"라는 한 줄이 적혀 있었다. 오후 3시 53분, 햇볕이 한 칸씩 옮겨 가고 있었다. 옥상에서 북쪽으로 고개를 들면 멀리 북악산 능선이 흐릿하게 보였다.
결론 — 22년이 만든 상업 건축의 결
쌈지길은 22년이 지난 지금도 인사동 한가운데에서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슬로프 한 줄로 1층부터 4층까지 묶어 둔 건축의 결정이 22년 동안 동선의 정체성을 지켜 준 셈이다. 점포는 바뀌어도 동선은 바뀌지 않았다. 인사동에 다시 들를 일이 있다면 한 층씩 천천히 걸어 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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