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셋째 토요일 오후 3시 6분, 부암동 백사실계곡 입구 — 신록과 등산화 다섯, 별서터의 그림자

토요일 오후 3시 6분, 부암동 백사실계곡 입구로 들어섰다. 5월 중순의 늦은 오후, 별서터의 돌담과 신록 사이에 잠시 멈춰서 적은 한 시간의 메모다. 도시 한가운데 끝까지 남아 있는 골짜기 하나를 천천히 걷고, 등산화 다섯과 운동화 셋의 발을 본 기록이기도 하다.

자하문터널 위, 창의문로5길 들머리 — 지도와 다른 첫 갈림길

버스를 자하문터널 입구 정류장에서 내렸다. 시간은 2시 49분, 환기미술관 쪽으로 7분쯤 걸어 올라가 창의문로5길로 접어든 게 3시 6분이었다. 지도 앱은 곧장 직진을 권했지만, 들머리는 좁은 두 갈래 골목으로 갈렸다. 왼쪽은 빌라 사이로 빠지는 시멘트 길, 오른쪽은 'ㄱ'자로 꺾이는 돌계단 일곱 단. 입구의 오래된 표지목에 손글씨로 '백사실계곡 →'이라 적혀 있어, 오른쪽 돌계단을 골랐다. 계단 옆 화단의 영산홍 다섯 그루는 5월 중순이라 이미 꽃이 졌고, 어린 잎만 남아 있었다.

사라지지 않은 별서터 — 1614년 즈음의 돌담과 1.4미터 높이 석축

5분쯤 더 걷자 별서터 안내판이 보였다. 1614년 즈음, 이항복이 지었다고 전해지는 별서터다. 지금 남아 있는 건 사랑채 자리의 주춧돌 일곱 개와, 무릎 높이를 살짝 넘는 돌담의 한쪽 부분뿐이다. 손목으로 재 보니 담의 가장 높은 자리는 약 1.4미터쯤. 돌 하나하나의 크기는 두 손바닥을 합친 정도이고, 사이를 채운 흙은 마른 회색이었다. 안내판 아래 누군가 다 마시지 않은 종이컵 두 개가 놓여 있었는데, 잘 마른 잎 한 장이 컵 입구를 덮어 둔 모양으로 떨어져 있었다. 사람이 자주 다녀가는 자리라는 뜻이다.

별서의 본채 자리는 이제 풀밭이다. 지난해 가을의 마른 풀과 올해 봄의 새 풀이 한 자리에 섞여 있었다. 그 옆 연지(蓮池) 자리에는 물이 거의 없고, 바닥의 진흙이 옅게 갈라져 있었다. 5월의 오후 햇빛은 옆으로 비스듬히 들어와, 진흙의 균열 한 줄마다 가는 그림자가 졌다.

계곡 들머리 — 5월 중순 오후의 그늘 일곱과 작은 폭포 한 줄

별서터를 지나 본격적인 계곡 길로 내려서면, 처음 50미터 정도가 가파르다. 길 양옆의 신갈나무와 굴참나무는 키가 10미터를 훌쩍 넘기는 것들이 많아, 머리 위로 짙은 그늘 일곱 군데가 길을 덮고 있었다. 햇빛이 닿는 자리는 바닥의 자갈이 환한 회색으로 빛나고, 그늘 자리는 검은빛에 가까운 갈색이었다. 그 경계가 한 걸음 사이로 바뀌는 게 재미있어, 같은 자리를 두 번씩 밟아 보다가 사진을 두 장 찍었다.

계곡 가장 안쪽의 작은 폭포는 단 차이가 1.5미터쯤. 5월의 수량은 봄비 끝이라 그렇게 풍부하진 않았지만, 물줄기 한 줄이 검은 바위 사이로 곧게 떨어지고 있었다. 손가락을 살짝 담갔다. 시계의 기온은 22도였는데, 물은 손목까지 시릴 만큼 차가웠다. 1초쯤 담그고 다시 빼니, 계곡 양옆의 이끼가 가까이서 보였다. 짙은 녹색에 어린 황록이 군데군데 섞여 있어서, 한 평면처럼 보이지만 실은 두세 겹이라는 게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등산화 다섯, 운동화 셋 — 산책자의 발을 본 30분

벤치에 앉아 30분을 보내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만 봤다. 의도적으로 발만 보려고 한 건 아니고, 그늘이 너무 시원해서 자세가 늘어졌더니 시선이 자연스럽게 아래로 떨어졌다. 30분 동안 본 사람은 모두 열셋. 그중 등산화는 다섯 켤레, 운동화는 세 켤레, 샌들 두 켤레, 슬리퍼 두 켤레, 그리고 양말에 슬리퍼 한 켤레였다. 등산화 다섯 중 셋은 발목까지 올라오는 중등산화였고, 두 켤레는 트레일러닝화에 가까운 낮은 모델이었다.

샌들 두 켤레의 주인은 모두 30대로 보였다. 한 명은 가벼운 천 가방을 들었고, 다른 한 명은 일회용 카메라를 손에 쥐고 있었다. 일회용 카메라가 5월의 백사실에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건 아마 햇빛이 옆으로 길게 들어와 모든 사람의 옆얼굴이 한 번씩 환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돌아오는 길 — 환기미술관 앞 골목과 두부집의 김

3시 53분쯤 다시 같은 길로 올라왔다. 내려올 때보다 돌아갈 때가 가파르게 느껴진 건, 오후의 햇빛이 정면에서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별서터를 다시 지나며 돌담의 그림자가 처음 봤을 때보다 두 뼘쯤 더 길어진 걸 확인했다. 시간이 50분쯤 흘렀다는 뜻이다.

창의문로5길에서 환기미술관 앞 골목으로 빠져나와, 골목 어귀의 작은 두부집 앞에 잠깐 멈춰 섰다. 통유리 너머 솥에서 김이 한 줄 올라오고 있었고, 김의 두께가 손가락 두 마디만 했다. 가게 안에는 60대로 보이는 주인 한 사람이 앞치마를 두르고 빈 자리 다섯을 닦고 있었다. 사 먹지는 않고, 김의 모양을 두 번 정도 바라본 뒤 돌아섰다. 돌아오는 길에 부암동주민센터 앞 정류장에서 7212번을 기다렸는데, 시계를 보니 4시 12분이었다. 백사실에서 보낸 시간은 약 한 시간 6분이었다.

메모 — 백사실에서 가져온 세 가지

첫째, 도시 한가운데 골짜기가 끝까지 남아 있다는 사실이 매번 새삼스럽다. 광화문에서 버스로 20분 거리에 1.4미터짜리 돌담과 1.5미터짜리 폭포가 있다는 게, 5월 중순의 토요일 오후에 다시 한 번 묘하게 느껴졌다.

둘째, 사라지지 않은 것도 기록할 가치가 있다. 평소 나는 '곧 사라질 자리'를 찾아다니지만, 백사실 같은 자리도 어디까지 같은 모습으로 남을지 알 수 없다는 점에서, 결국은 같은 종류의 산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셋째, 다음에는 평일 새벽에 다시 와 봐야겠다. 토요일 오후의 그늘 일곱은 그늘 일곱대로 좋았지만, 같은 자리에 사람이 적은 시간의 그림자는 분명 다른 모양일 것이다. 그날의 발자국 수와 새소리도 따로 메모해 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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