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첫 일요일 새벽 5시 50분, 응봉산 팔각정에서 — 한강을 가르는 다리 일곱 개 — 한지후의 일기 14
5월 첫 일요일이다. 새벽 다섯 시 십 분에 신금호역 7번 출구로 빠져 응봉산을 올랐다. 팔각정에 도착했을 때 시계는 다섯 시 오십이 분, 한강을 가르는 다리 일곱 개를 오른쪽부터 왼쪽까지 천천히 헤아렸다. 이 일기는 그 사십 분 동안 본 것의 기록이다.
새벽 다섯 시 십 분, 신금호역 7번 출구
알람을 네 시 사십 분에 맞춰 두었다. 자명종이 두 번 울리고 끄고 나니 창밖이 회색이었다. 다섯 시 십 분에 신금호역 7번 출구로 나오자 거리는 거의 비어 있었다. 환경미화원 한 분이 빗자루를 들고 가로수 옆을 쓸고 있었고, 24시 김밥집 안에서는 아주머니가 단무지를 길게 자르는 것이 보였다. 기온은 섭씨 12도쯤, 바람은 거의 없었다. 응봉동 방향으로 약 8분 걸으면 산 입구다.
산길 입구 — 약 18분 오르막
산 입구의 안내판은 페인트가 군데군데 떨어져 있었다. "응봉산 정상 0.4km, 도보 약 15분"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새벽이라 바닥이 살짝 젖어 있어 18분이 걸렸다. 계단 폭은 좁고 일정하지 않다. 오르막 중턱쯤에서 운동복을 입은 70대 어르신을 한 분 만났다. 내려오는 길이었다. 어르신은 인사 대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고 나도 똑같이 했다. 산 속 새소리는 까치가 절반, 박새가 절반이었다. 풀냄새가 짙었다. 4월 마지막 주에 비가 한 번 온 뒤로 풀이 빠르게 자란 모양이다.
팔각정 — 다리 일곱 개를 헤아리다
다섯 시 오십이 분, 팔각정에 도착했다. 정자의 처마 끝 단청은 빨강이 거의 다 빠져 분홍에 가까웠고, 기둥 한쪽에 한국전쟁기념재단 명판이 붙어 있었다. 정자에는 사진작가로 보이는 분이 한 명 있었다. 삼각대 위 카메라는 동쪽을 향하고 있었다. 나는 서쪽 난간에 서서 다리를 헤아렸다. 오른쪽부터 동호대교, 한남대교, 반포대교, 한강대교, 원효대교, 마포대교, 성산대교까지 일곱 개. 조도가 낮아 서쪽 끝의 성산대교는 선이 얇은 검정 실처럼 보였다. 강물 색은 회청색이었고, 강 위에 짙은 안개가 한 뼘 정도 깔려 있었다.
동쪽 잠실 방향 — 옅은 주황빛
여섯 시 정각, 동쪽 잠실 방향 하늘이 옅은 주황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잠실 롯데월드타워의 첨탑 끝이 가장 먼저 노을빛을 받았다. 사진작가 분이 셔터를 끊어 누르는 소리가 일정한 간격으로 들렸다. 약 4초 간격이었던 것 같다. 나는 카메라를 가져오지 않았다. 새벽 산책에는 카메라가 없는 편이 더 나았다. 본 것은 적었지만 더 오래 머물렀다. 일출 시각을 휴대폰으로 다시 확인하니 오늘 서울 일출은 다섯 시 사십이 분, 이미 뜬 뒤였다. 산이 가려 정상에서는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내려오는 길 — 응봉동 좁은 계단길
여섯 시 이십 분쯤 내려오기 시작했다. 올라온 길 대신 응봉동 산26번지 방향 좁은 계단길을 택했다. 계단은 시멘트가 노후되어 모서리가 둥글게 닳아 있었고, 한 단의 높이가 평균보다 약간 높아 발목에 부담이 갔다. 계단 옆 담벼락에는 "민방위 대피소 해제"라고 흐릿하게 적힌 종이가 한 장 붙어 있었다. 4분쯤 내려와 응봉체육센터 뒤편에 닿았다. 운동복 차림으로 줄넘기 하시는 분이 두 명 있었다. 두 분 모두 60대 여성이셨다. 줄넘기 박자가 비슷해서 박수처럼 들렸다.
여섯 시 사십 분, 응봉동 빵집 앞
여섯 시 사십 분에 응봉동 골목 어귀의 작은 빵집 앞을 지났다. 셔터가 절반쯤 올라가 있었고, 안에서 갓 구운 식빵 냄새가 도로까지 새어나왔다. 50대 사장님이 식빵 틀을 식힘망 위에 옮기는 것이 보였다. 가격표는 식빵 한 덩이 사천오백 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들어가서 사고 싶었지만 아직 영업 시작 전이라 그냥 지나쳤다. 냄새가 골목을 따라 약 12미터쯤 따라왔다. 신금호역 입구로 다시 돌아온 시각은 일곱 시 정각, 출발한 지 한 시간 오십 분 만이었다.
결론 메모
새벽 산책의 좋은 점은 본 것 자체가 적다는 것이다. 적게 보면 그 적은 것이 오래 남는다. 오늘 가장 오래 남은 것은 다리 일곱 개의 이름을 입속으로 한 번 헤아린 그 순간과, 응봉동 빵집 사장님이 식빵 틀을 옮기던 손의 각도였다. 5월 일요일 새벽이 다음 주에도 이 풍경 그대로일지는 모르겠다. 응봉동 일대는 재개발 논의가 몇 해째 오가는 동네다. 적어 두는 일은 그 사이에 끼우는 작은 갈피 같은 것이라고 다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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