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로 4가 공구상가, 재개발 고시 앞둔 봄날 오후 — 30년 된 간판 다섯을 세어 보다
2026년 4월 19일 일요일 오후 세 시, 나는 을지로 4가 공구상가 골목을 다시 걸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안쪽, 재개발 정비계획 변경안 열람이 이달에 걸려 있는 구역이다. 나는 30년 넘은 간판 다섯 개를 차례로 세며 그 골목의 마지막 봄을 기록해 두려 했다.
1. 공구상가 골목은 지금 어디쯤 와 있나
을지로 4가역 4번 출구에서 동쪽으로 약 백 미터, 산림동과 입정동이 맞물리는 지점에 공구·타일·철물 골목이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변경안이 단계적으로 통과된 뒤, 이 구역 일부는 이미 빈 점포가 되었다. 내가 간 일요일 오후에는 3구역 환경영향평가 초안이 열람 중이라는 안내문이 지하철 역사 옥외게시판에 테이프로 붙어 있었다. 나는 그 종이 한 장을 휴대폰으로 찍어 두었다.
2. 간판 다섯 — 숫자로 세어본 골목
내가 센 간판은 모두 1990년대 이전 형태였다. 흰 바탕에 파란 명조체로 적힌 '○○기공사', 금속판을 대못으로 박아 둔 '△△산업', 빨간 유성 페인트로 '볼트·너트 소매'라고 적힌 함석판, 그리고 유리문에 누렇게 바랜 스티커로 '절삭유·그리스' 같은 품목이 붙은 곳이 두 곳. 다섯 중 두 곳은 문을 여는 날이 토·일 제외 주 5일이라는 메모가 나무 판에 손글씨로 적혀 있었다. 평일 오후에만 제대로 움직이는 골목이라는 뜻이다.
3. 30년을 세는 방법
한 사장님은 1994년에 이 자리에서 가게를 열었다고 했다. 그해 월세는 20만 원이었고, 2024년 마지막 재계약에서는 160만 원이었다고 숫자로 설명해 주셨다. 30년의 무게를 약 8배로 요약하는 셈법은 조금 잔인하지만, 사장님은 그 숫자를 덤덤히 말했다. "이전 자리 못 구하면 그냥 접지 뭐." 나는 그 문장을 수첩에 그대로 적었다. 뒤에 덧붙이기가 어려워서.
4. 내가 카페가 아니라 공구상을 기록하는 이유
솔직히 이 골목은 플래시를 터뜨릴 이유가 없는 풍경이다. 노출 콘크리트도, 라떼 아트도, 레터링 간판도 없다. 그러나 도시의 피부는 인테리어 잘된 카페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0.3밀리미터 드릴 비트와 5호 동파이프 이음매 같은 것들이 누군가의 일당과 가족의 저녁을 만든다. 나는 이 셈법이 사라지는 속도를 기록해 두고 싶다. 서울이 카페 거리로만 기억되면, 이 도시는 너무 얇은 도시가 된다.
5. 재개발 이후를 과장 없이 상상하기
공개된 조감도를 보면 공구상가 자리에는 35층 안팎의 주상복합 두 동이 들어설 예정이다. 저층부 상가의 임차료는 인근 신축 시세를 참고해 보면 평당 월 35~45만 원대에서 출발할 것이다. 지금 공구상 사장님이 내는 월세의 3~4배에 해당하는 구조다. 정비계획서에 적힌 권장 업종은 "문화·판매·근린생활" 정도인데, 그 안에 공구 소매점이 다시 들어올 자리는 사실상 없다. 숫자만 놓고 보면 교체는 이미 결정되어 있다.
6. 오후 네 시, 퇴근하는 철물점 셔터 소리
골목을 나오던 오후 네 시쯤, 사장님 두 분이 거의 같은 타이밍에 셔터를 내렸다. 쇠끼리 맞부딪치는 소리가 일요일 오후 골목에서 제법 크게 울렸다. 셔터 안쪽에는 형광등 불빛이 아직 남아 있었고, 나는 그 불빛이 앞으로 몇 번의 봄을 더 견딜 수 있을지 셈해 보았다. 열 번은 어려울 것 같았다. 다섯 번도 장담하기 어려웠다.
7. 결론 — 이 노트는 이렇게 닫는다
나는 이 구역의 재개발을 단순히 반대하지도, 쉽게 찬성하지도 못한다. 30년 일한 사장님에게는 이전비와 정당한 보상이 필요하고, 도시 전체에는 새로운 주택과 새로운 층고가 필요하다. 다만 나는 교체의 속도와 결을 기록하는 쪽에 서기로 했다. 2026년 4월 19일 일요일, 을지로 4가 뒷골목의 간판 다섯을 적어 둔다. 다음 달 다시 왔을 때 몇 개가 남아 있는지 세어 볼 것이다. 사라지는 것을 기록한다 — 그것이 내가 이 블로그에 적는 한 줄짜리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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