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김수근의 붉은 벽돌을 다시 걷다
일요일 오전, 혜화역 2번 출구에서 시작한 산책은 결국 김수근의 붉은 벽돌 앞에서 멈췄다. 아르코예술극장은 1979년 준공, 50년 가까이 같은 자리에서 다른 시대를 마중하고 있다. 벽돌 한 장마다 축적된 시간의 무게를 나는 다시 읽는다.
혜화역 2번 출구, 일요일 오전의 공기
오전 7시 반쯤 혜화역 2번 출구를 빠져나왔다. 봄의 초입이었다. 마로니에공원으로 이어지는 길엔 종이컵을 쥔 사람들이 드문드문 서 있었다. 나는 이날 아르코예술극장 한 채만 보고 돌아가기로 했다. 아침 산책의 목적은 길게 잡을수록 흐트러지는 법이다. 공원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붉은 벽돌 덩어리가 먼저 시야를 막아섰다. 김수근 건축이었다. 건물 앞에 설치된 철제 안내판에는 1979년 준공, 연면적 약 8,800㎡라고 적혀 있다.
김수근이 남긴 붉은 벽돌 — 대극장의 동쪽 입면
내가 가장 오래 멈춘 곳은 대극장 동쪽 입면이었다. 벽돌은 세로로 긴 장방형, 긴 변의 길이는 눈대중으로 재어봐도 21cm 안팎. 모르타르 줄눈이 얇아서 입면 전체가 하나의 큰 면처럼 읽힌다. 창은 놀랄 만큼 적다. 극장이라는 프로그램상 외광을 최소화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 무표정한 벽체가 도시에 대해 "들여다보지 않는 견고함"을 선언하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붉은 벽돌은 시간이 지날수록 얕은 검정 얼룩이 섞이면서 결이 생긴다. 오늘 아침 햇빛 속에서는 그 결이 유독 또렷했다.
계단과 플라자, 사람을 모으는 구조
건물 앞 플라자에는 낮은 계단 세 단이 걸쳐 있다. 단 하나의 높이는 약 15cm씩이어서 앉기에 적당하고, 공연이 끝나면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걸터앉아 담배나 대화를 나눈다. 김수근 건축에서 자주 반복되는 방식이다. 건물의 안과 밖을 계단으로 연결하고, 그 계단을 다시 도시의 거실로 내어주는 구조. 나는 왼쪽 모서리에 잠시 앉아 있었다. 등 뒤의 벽돌에서 섭씨 15도쯤 되는 미열이 느껴졌다. 오전 햇살이 동향 입면을 천천히 데우고 있었다. 관광객처럼 보이는 두 명이 휴대폰 카메라를 들고 입면을 올려다보았다. 한 사람은 벽돌의 결이 신기하다는 듯 손을 대보기도 했다. 플라자 한쪽의 느티나무는 이미 연두색 어린잎을 가볍게 피워 올리고 있었다.
50년 된 건축물이 오늘 관객을 맞는 방식
매표소 옆 유리문은 2010년대 이후 개·보수된 듯 보였다. 김수근의 원안과 달리 알루미늄 프로파일이 얇고, 손잡이는 스테인리스 바였다. 리노베이션의 흔적을 일률적으로 좋거나 나쁘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원형의 붉은 벽돌과 현대적 유리가 같은 입면에서 충돌하지 않고 나란히 놓인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아직 공연 시작 전이어서 로비는 비어 있었다. 바닥은 테라조 타일, 천장 높이는 약 4.2m. 안쪽에서 본 입면은 바깥만큼이나 단단했다. 로비 벽에는 이번 시즌 공연 포스터 세 장이 가로로 붙어 있었다. 글자는 큼직했지만 배경은 단색이라서 벽돌 입면과 묘하게 균형을 이뤘다.
20대인 내가 1970년대 건축을 다시 보는 이유
나는 김수근 세대가 아니다. 태어나기도 전에 준공된 건물이다. 그런데도 이 벽돌 앞에 서면 자꾸 묻게 된다. 지금 서울에서 새로 짓는 문화시설 중에 50년 뒤에도 이렇게 서 있을 것이 몇이나 될까. 유리 커튼월은 10년이면 실링이 늙고, 금속 패널은 20년이면 색이 바랜다. 반면 벽돌은 오히려 시간이 쌓일수록 자기 색을 찾아간다. 사라지는 것을 기록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사라지지 않고 버텨내는 것의 문법을 읽는 일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아르코는 내게 그 문법의 한 페이지였다.
결론 메모 — 벽돌은 늙지 않았다
다시 마로니에공원 벤치에 앉아 노트에 이 한 줄을 적었다. "벽돌은 늙지 않았다." 다음 산책은 같은 건축가의 경동교회로 잡을까 생각했다. 당장은 아니다. 오늘은 아르코 하나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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