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오후 1시 50분, 회현시장 골목 — 한지후의 일기 09: 점심 후의 셔터, 라디오 한 대, 종이상자 위 도시락 통
명동성당 계단에서 내려와 회현역 1번 출구 옆 회현시장 안쪽 골목으로 들어섰다. 시간은 13시 47분. 점심을 넘긴 가게들의 셔터가 절반쯤 내려와 있었고, 라디오 한 대가 골목 전체의 음량을 정해 놓고 있었다. 30분 동안 앉아 적은 네 줄을, 4월 끝자락의 월요일이 어떤 표면이었는지 다음 4월의 내가 다시 읽을 수 있도록 그대로 옮겨 둔다.
명동성당 계단에서 회현시장까지 — 7분의 내리막
명동성당 정면 계단에서 회현역 1번 출구 옆 회현시장 안쪽 골목까지 직선으로 약 520m, 걸어서 7분 정도 걸렸다. 명동성당 광장에서 점심 인파에 밀리듯이 빠져나오면 명동9길이 좁고 가파르게 회현 쪽으로 내려간다. 이 길은 차도 사람도 오후 한 시 반쯤이면 한 번 숨을 고르는 구간이다. 출근 시간의 긴장이 빠진 자리에 점심 뒤의 나른함이 들어와 있었다. 시장 입구 아치 위에 붙은 작은 안내판에는 "1962년 조성"이라고 적혀 있었다. 64년째 같은 자리에 같은 이름으로 서 있는 시장이라는 뜻이다.
첫째 줄 — 셔터 반쯤 내린 가게 다섯
골목 50m 안에 셔터가 절반 정도 내려와 있는 가게가 정확히 다섯 곳이었다. 정수리쯤 높이까지만 내려놓고, 그 아래로 사람이 앉아 도시락을 먹거나 손을 씻고 있었다. 셔터의 아래쪽 도장은 다섯 곳 모두 비슷하게 벗겨져 있었다. 손이 매일 한 번씩 닿는 위치가 가게마다 거의 같은 높이라는 뜻일 것이다. 셔터를 완전히 내리면 휴업이고, 절반쯤 내리면 "잠깐 자리 비웠다"가 된다. 도시의 가게가 갖는 이 두 단계 사이에, 점심 뒤 30분이라는 정확한 시간이 끼어 있다.
둘째 줄 — 라디오 한 대가 정해 놓은 골목의 음량
골목 한가운데, 어느 가게 앞에 놓인 작은 트랜지스터 라디오 한 대가 골목 전체의 배경 음량을 만들고 있었다. 음량은 옆 가게에서도, 그 옆 가게에서도 또렷이 들리는 정도. 휴대폰으로 음량 측정 앱을 켜서 가만히 들고 있어 봤더니 평균 58 데시벨, 라디오 사이로 사람들의 짧은 대화가 끼어들 때만 잠깐 65 데시벨까지 올라갔다. 라디오에서는 1990년대 한국 가요와 7080 계열 노래가 번갈아 흘렀다. 가게 주인 입장에서는 손님을 끄는 음악이 아니라 자기 시간을 견디는 음악인 것 같았다. 점심 뒤의 골목은 손님이 아니라 가게 주인 본인을 위한 BGM이 깔리는 시간대다.
셋째 줄 — 종이상자 한 개와 그 위에 놓인 도시락 통
한 가게 앞에 사과 박스 크기의 종이상자 한 개가 거꾸로 놓여 있고, 그 위에 빈 도시락 통과 보온병이 올라가 있었다. 도시락 통은 스테인리스 2단, 보온병은 어두운 녹색의 0.5리터짜리. 도시락 안쪽에는 김치 국물 자국이 둥글게 한 줄, 가운데에 밥알 두 알이 붙어 있었다. 가게 주인은 그 옆 의자에서 휴대폰을 보며 이를 쑤시고 있었다. 식사를 막 끝낸 시간이라는 신호가 종이상자 위에 정확하게 정렬돼 있었다. 시장의 점심은 식당이 아니라 자기 가게 앞에서 끝난다. 그 짧은 정물 한 컷이, 4월 끝자락 회현시장의 월요일 오후 한 시 반을 가장 솔직하게 보여 주는 장면이었다.
넷째 줄 — 4월 끝자락 월요일의 빛 길이
회현시장 골목은 양쪽이 2~3층 건물로 둘러싸여 있어 햇빛이 정수리에서 떨어지는 시간이 짧다. 13시 50분 기준, 골목 바닥에 직접 닿는 햇빛 폭은 가게 두 칸 너비, 약 4.8m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한 시간 뒤면 이 빛은 골목 끝까지 그림자에 묻힐 것이다. 4월 27일 서울의 일몰 시각은 19시 03분쯤이지만, 시장 안쪽에서 체감하는 일몰은 두 시간 빠른 17시쯤이다. 도시 안의 작은 골목은 도시의 일몰과 따로 움직이는 자기 시계를 가지고 있다. 64년 된 시장이라는 말은, 64년 동안 자기 시계를 자기 손목에 차고 살아왔다는 말이기도 하다.
결론 메모 — 점심 후 30분이 도시에서 가장 솔직한 시간
13시 47분에 들어와 14시 17분에 골목을 빠져나왔다. 30분 동안 적은 키워드는 정확히 22개. 셔터 다섯, 라디오 한 대, 종이상자 한 개, 도시락 두 단, 빛 폭 4.8m, 그리고 나머지는 사람의 표정과 손의 위치 같은 것들이었다. 도시는 출근 시간에 가장 단정하고, 점심 시간에 가장 시끄럽고, 점심 뒤 30분에 가장 솔직하다고 적어 둔다. 가게 주인이 자기 의자에 잠시 다리를 펴는 시간, 라디오가 손님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들리는 시간. 그 시간을 한 번이라도 같이 앉아 있어 봐야, 동네라는 단어를 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골목을 나오면서 셔터 다섯 개의 위치를 다시 한 번 머리에 새겼다. 다음 달 같은 시간에 또 와서, 같은 셔터들이 같은 높이로 내려와 있는지 확인하고 싶다.
— 한지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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