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전 10시, 후암동 108계단에서 — 적산가옥 두 채와 카페 한 곳 사이

어제까지 내린 비가 갠 일요일 아침, 나는 용산구 후암동 108계단 아래에 섰다. 남산타워가 가까워질수록 1층 처마와 2층 미닫이의 흔적이 늘어나는 동네에서, 막 영업을 시작한 카페 셔터의 알루미늄 광택과 70년 묵은 함석지붕이 같은 햇볕을 받고 있었다. 사라지는 것을 기록한다는 원칙으로, 나는 두 시간 동안 이 일대를 천천히 걸었다.

108계단의 첫 칸, 9시 52분

나는 용산구 후암동 200-1번지쯤, 108계단의 가장 아래 칸에 섰다. 시각은 9시 52분. 어제 새벽까지 내린 비가 시멘트 계단의 깊은 홈에 작은 웅덩이를 만들어 두었고, 그 위로 나뭇잎 두세 장이 떠 있었다. 계단의 폭은 대략 2m 80cm 정도. 양쪽으로 빨간 손잡이 봉이 길게 이어진다. 첫 칸에 발을 올리면 정면 윗부분으로 N서울타워의 흰 기둥이 보인다. 초입의 안내판에는 1962년 무허가 정비, 1972년 콘크리트 재시공이라는 한 줄이 적혀 있었다. 60년 가까이 한 자리를 지킨 계단이다.

적산가옥 두 채 — 미닫이와 빨간 우편함

40번째 칸쯤에서 왼쪽으로 좁은 골목 하나가 갈라진다. 거기 적산가옥 두 채가 어깨를 맞대고 서 있다. 1934년경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동네 어르신이 일러 주었다. 1층 처마 높이는 어림잡아 2m 30cm 안팎, 2층은 미닫이 흔적이 그대로다. 한 채는 외벽을 회색 페인트로 덧칠했지만 창틀은 여전히 나무다. 또 한 채는 빨간 우편함이 대문 옆에 붙어 있고, 그 우편함 표면에 1986이라는 숫자가 거의 지워진 채로 남아 있다. 이 두 채가 한 줄로 서서 골목을 막은 듯한 풍경은 후암동에서 점점 보기 힘든 모양이 되어 간다.

새로 들어선 카페와 옛 함석지붕의 만남

적산가옥 골목을 빠져나오자마자, 105번째 칸 옆으로 카페 한 곳이 나타났다. 간판도 작고 입구 폭은 1m 60cm 남짓. 셔터에 알루미늄 가루가 옅게 묻은 채로 막 영업을 시작한 모양이다. 안에서는 에스프레소 머신이 막 켜졌는지, 짧은 압축기 소음이 도로 쪽으로 새어 나왔다. 그 카페의 바로 옆 건물 지붕은 함석으로 덮인 채 70년쯤 묵은 듯한 색을 갖고 있었다. 새 카페의 콘크리트 벽과, 옛 함석의 갈라진 가장자리가 같은 햇볕 아래에서 같은 그림자 길이를 만들고 있는 모습이 나는 한참 좋았다. 두 시간 다른 풍경이 한 면에 겹쳐 있는 셈이다.

골목 안쪽, 셔터에 적힌 1973이라는 숫자

108계단의 정상 부근 오른쪽으로 한 발자국만 들어가면 작은 공구상이 두 곳 남아 있다. 한 곳은 셔터에 흰 페인트로 1973이라는 숫자가, 그 옆에 김씨라는 성씨가 적혀 있었다. 셔터는 절반쯤 내려진 채로 안쪽에서 라디오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안쪽 천장 높이는 어림잡아 2m 50cm. 선풍기 한 대가 천천히 돌고 있었다. 다른 한 곳은 셔터가 완전히 내려져 있었고, 입구 옆에는 임대 문의라는 손글씨 종이가 붙어 있었다. 손글씨는 굵은 매직펜이었고, 전화번호는 010으로 시작했다. 50년 한 자리를 지킨 가게가 임대로 나오기까지의 거리는 셔터 한 장만큼 짧다.

남산 자락에서 들리는 일요일 소리

108계단 정상에 오르니 시각은 11시 18분. 발치 아래로는 후암로의 이층 상가들이 줄지어 있고, 정면 위로는 남산타워가 바로 다가온다. 일요일 한낮의 동네 소리는 의외로 조용했다. 멀리서 교회 종소리 한 번, 가까운 골목에서 자전거 벨 소리 두 번, 그 사이에 공구상의 라디오 소리가 한 줄로 이어졌다. 차 소리는 후암로 본도로에서만 끊기듯 들렸고, 골목 안에서는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가장 크게 들렸다. 이 동네에서 가장 큰 소리가 발자국이라는 사실이, 나는 좀 부럽고 또 좀 두려웠다. 옆 벤치에 앉은 어르신 한 분은 라디오를 작은 볼륨으로 켜 두고 정상 부근의 단풍나무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결론 메모

108계단 일대는 정비 계획이 2027년 상반기에 다시 논의된다고 한다. 적산가옥 두 채와 50년 공구상의 셔터, 그리고 이번에 새로 문을 연 카페가 그때까지 같은 자리에 남아 있을지는 아무도 자신하지 못한다. 나는 한 달 뒤 같은 일요일 오전에 다시 와서, 같은 시각, 같은 첫 칸에 서기로 했다. 사라지는 것을 기록하는 일은, 같은 자리에 매번 다시 서는 일에서 시작된다. 그날의 사진 두 장과 손바닥의 콘크리트 감촉을 다시 비교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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