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오전 10시, 한국은행 화폐박물관 앞에서 — 1912년 본관 외벽의 화강암 줄눈을 따라 17분

회현역 5번 출구에서 124걸음을 걸으면 한국은행 화폐박물관 본관 시계탑이 보인다. 나는 수요일 오전 10시 12분부터 약 17분 동안 1912년에 준공된 본관 외벽을 한 바퀴 돌며, 화강암 줄눈의 두께와 시계탑의 비스듬한 자세, 뒤편 부속동 안마당의 유리 돔까지 천천히 살폈다. 113년이 된 돌담을 손등으로 만져 본 짧은 산책의 메모.

회현역 5번 출구에서 모서리까지 124걸음

회현역 5번 출구로 나오면 남대문로의 차로 폭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신호 한 번을 받고 횡단보도를 건너 124걸음, 휴대폰 만보기로 직접 셌다. 그 끝에 한국은행 본관의 시계탑이 정확히 정면이 아니라 살짝 비스듬하게 서 있었다. 정면이 남쪽을 향하지 않고, 남대문로와 남대문시장 입구 골목 사이의 사선을 가로지르는 자세다. 도로가 먼저였는지 건물이 먼저였는지 잠깐 헷갈렸지만, 모서리 화강암의 마모 정도를 보면 도로 쪽이 더 오래 지나간 것처럼 보였다. 도로가 먼저, 그 다음 1912년이 그 모서리 위에 비스듬히 얹힌 것이다.

외벽 화강암, 손가락 두 마디만 한 줄눈

본관 외벽은 회색 화강암 판으로 마감되어 있다. 돌 한 장의 가로 길이는 눈대중으로 70cm쯤, 세로는 35cm쯤. 줄눈은 손가락 두 마디 정도, 약 3cm 두께였다. 줄눈의 깊이는 1cm가 채 안 되고, 그 안쪽은 거친 회반죽 같은 것이 채워져 있다. 늦봄 오전 10시의 햇빛이 남쪽 외벽을 비스듬히 때리고 있었고, 줄눈 한 칸마다 가는 그늘이 하나씩 들어앉아 있었다. 멀리서 보면 외벽 전체가 격자무늬로 떠 보이는 이유였다. 손등을 댔더니 차갑고, 표면은 잘게 마모돼 까끌하지 않고 동그스름했다. 113년 동안 바람이 다듬은 결이라고 혼자 정리했다.

정면 페디먼트와 둥근 시계의 1분 차이

정면 가운데에는 삼각형 페디먼트가 얹혀 있고, 그 아래에 둥근 벽시계가 박혀 있다. 시계 지름은 어림잡아 1.8m, 숫자는 로마자, 시침과 분침은 검은색이다. 시계가 10시 13분을 가리키는 동안 휴대폰 화면은 10시 12분이었다. 1분 차이가 113년 된 시계 쪽으로 더 오래된 정확함처럼 느껴졌다. 시계탑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면 페디먼트의 음영이 정면 외벽과 한 톤 다르게 짙다. 햇빛이 직접 닿지 않는 자리만이 그늘의 깊이를 따로 갖는다는 걸 새삼 확인한다.

뒤편 부속동과 작은 안마당, 유리 돔의 빛

본관 뒤로 돌아가면 1980년대에 지어진 부속동이 붙어 있다. 본관과 다른 결의 콘크리트 외벽이고, 유리창의 비례도 다르다. 두 건물이 만나는 자리에 작은 안마당이 있는데, 그 위로 유리 돔이 얹혀 있다. 돔의 지름은 약 6m로 보였고, 가장자리로 떨어진 빛이 안마당 바닥의 회색 화강암 위에 동그란 빛 무늬를 만들고 있었다. 빛 무늬의 지름은 어림잡아 5m. 누구도 이 안마당을 광고하지 않는다는 게 좀 이상했다. 정문 광장만 외부에 알려지고, 본관과 부속동이 만든 이 작은 사잇공간은 모서리에 살짝 숨어 있다. 113년과 40년이 한 화면 안에 끼어 있는 자리. 안마당 한쪽 벽에는 본관 외벽과 같은 화강암이 조각조각 잘려 박혀 있고, 다른 한쪽은 1980년대 콘크리트 그대로다. 두 표면 사이의 색 차이는 한 톤 정도. 가까이 가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만큼 절제된 이음매다.

광장의 사람들, 113년이 끌어내는 자세

박물관 정문 앞 광장에는 외국인 관광객 셋, 직장인 한 명, 사진 찍는 부부 한 쌍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본관 시계탑을 정면으로 두고 한 번씩 위를 올려다본 뒤 사진을 찍었다. 그 자세 자체가 1912년 처음 이 건물 앞에 섰던 사람들의 자세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도로 폭은 넓어졌고 가로수 종류도 바뀌었지만, 정면 시계 아래에서 고개를 살짝 뒤로 젖히는 동작은 그대로 남는다. 오래 살아남는 건물은 그런 자세를 끌어내는 데 쓰임이 있다는 것을, 광장 가운데서 휴대폰을 꺼낸 직장인의 어깨 각도를 보면서 다시 한 번 적어 둔다.

모서리의 가로등, 1970년대의 끼어듦

본관 모서리에서 남대문로 쪽 인도 위에는 가로등 두 개가 서 있다. 하나는 1970년대 후반에 흔히 쓰던 곡선 형광등 기둥, 다른 하나는 최근 5년 안에 교체된 듯한 LED 직선 기둥이다. 두 기둥의 간격은 약 9m. 1912년 건물의 모서리 화강암을 배경으로 두 시대의 가로등이 9m 간격으로 박혀 있는 셈이다. 도시는 한 자리에 한 시대만 남기지 않는다. 1912년의 외벽, 1980년대의 부속동, 1970년대의 가로등, 5년 전의 LED. 네 시대가 한 모서리 안에 끼어들어 있고, 어느 하나도 다른 하나를 완전히 밀어내지 못했다.

오늘의 메모

본관 한 바퀴를 도는 데 17분 정도가 걸렸다. 외벽 줄눈, 시계탑, 부속동 안마당의 유리 돔, 모서리의 두 가로등. 네 가지 디테일은 모두 직접 가서 손등으로 만져 보거나 위를 올려다봐야 의미가 살아나는 자리다. 사진 한 장으로 줄어들지 않는 것들을 나는 오늘도 노트에 적어 둔다. 본관 정면을 한 번 더 돌아보고 회현역 쪽으로 걸어 나오는 동안, 광장에 새로 들어선 관광객 두 명이 같은 자세로 시계탑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113년의 자세가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옮겨 가는 짧은 순간이었다. 다음 수요일 오전 같은 시각에 한 번 더 와서, 이번엔 박물관 안쪽 화폐 전시실까지 들어가 본관 내부 계단의 화강암 결을 따라 걸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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