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구역사 앞에 서서 — 100년 전 벽돌과 2026년 유리창이 만나는 자리
서울역 구역사(1925년 준공)와 신역사(2004년 준공) 사이의 150m. 그 짧은 거리에서 100년의 시간과 네 가지 건축 재료가 만난다. 일요일 아침 1시간 건축 산책의 기록.
서울역 광장, 두 개의 건물 사이에서
일요일 오전 9시 40분, 서울역 14번 출구에서 올라와 광장으로 나갔다. 정면엔 유리와 철로 된 신역사(2004년 준공, KTX 개통과 함께 열린 건물)가 있고, 왼쪽 대각선에는 붉은 벽돌의 구역사(1925년 준공,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르네상스 양식의 경성역)가 있다. 두 건물 사이의 직선 거리는 약 150m. 그러나 건축 재료로 보면 100년의 거리다.
나는 20대고, 서울역을 주로 KTX 게이트로 알고 컸다. 구역사는 대부분 옆으로 흘끗 보고 지나쳤다. 오늘은 일부러 구역사부터 갔다. 건축산책의 규칙이 하나 있다. "오래된 것부터 본다. 그래야 새 것의 용도가 보인다."
벽돌 한 장의 디테일
구역사 벽면 가까이 다가가면 벽돌이 특이하다는 걸 알 수 있다. 한 장의 크기가 약 23cm × 11cm × 6cm. 지금 쓰는 표준 규격(19cm × 9cm × 5.7cm)보다 크다. 이건 일본 제국 시대의 적벽돌 규격이다. 벽의 모서리 처리에는 화강암을 끼워 넣었고, 상부에는 르네상스 양식 특유의 코니스(cornice, 수평 장식 띠)가 한 줄 둘러져 있다.
건물 정면 위쪽에는 돔이 하나 있다. 녹색 구리판으로 덮여 있는데, 구리는 원래 붉은색이었다가 공기 중의 황화수소와 반응해 검푸르게 변한다. 100년 동안 이 돔이 머금은 비와 바람이 이 색을 만들었다. 나는 이런 디테일을 볼 때마다 "건물은 시간의 결과물"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네 가지 재료, 네 개의 시대
광장을 한 바퀴 돌면서 건축 재료를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었다.
첫째, 1925년의 적벽돌과 화강암. 구역사의 뼈대. 무겁고 느리고 오래 간다. 한 장씩 손으로 쌓은 흔적이 가까이서 보면 보인다.
둘째, 1970년대의 노출 콘크리트. 광장 한쪽의 지하철 환기구와 계단참 난간. 이 시대는 "빨리 만드는 것"이 미덕이었다. 표면이 거칠고 균열이 가 있지만, 그 거칢 자체가 시대의 증거다.
셋째, 2004년의 유리와 철. 신역사의 외피. 투명함과 경량성을 자랑한다. 다만 여름이면 이 유리벽이 광장 복사열을 1.5배로 키운다는 논문을 본 적 있다. 투명함의 대가다.
넷째, 2020년대의 섬유강화 패널과 금속 루버. 최근 설치된 광장 벤치와 캐노피. 가볍고 곡선이 자유롭고 조명을 품을 수 있다. 나는 이 네 번째가 내 세대의 재료라는 생각을 잠깐 했다. 50년쯤 뒤에 누가 이걸 "2020년대 시대 재료"라고 부를지도 모른다.
구역사 내부 — 지금은 '문화역서울284'
구역사는 2011년 문화공간 '문화역서울284'로 리모델링됐다. 284는 이 건물의 사적 지정 번호다. 내부에 들어서면 2층 천장의 반구형 돔이 거대한 무게감으로 눈에 들어온다. 천장 높이가 중앙부 기준 약 12m. 아치형 창에는 스테인드글라스가 남아 있고, 바닥은 원래의 타일 패턴을 복원한 자리와 교체된 자리가 번갈아 있어서, 가까이 보면 "진짜 100년 된 바닥"과 "최근 복원한 바닥"이 구분된다.
이 건물이 철거되지 않고 남은 건 1981년 사적 지정 덕분이라는 기록이 있다. 80년대 초 서울은 여의도·강남 개발에 몰입하면서 낡은 건물을 마구 허물었지만, 구역사는 사적 지정이라는 한 줄 덕에 살아남았다. 한 줄이 건물을 100년 연장시켰다는 사실, 그게 오늘의 가장 묵직한 문장이었다.
20대 건축 산책가의 결론
집에 돌아와 적어둔 메모 세 줄.
1. 건축은 재료다. 재료는 시대다.
2. "보존"이라는 한 줄이 100년을 바꾼다.
3. 다음 세대가 "2020년대의 재료"라고 부를 것을 우리는 지금 짓고 있다.
다음 주 건축산책 후보는 두 곳이다. 용산의 1965년 아파트 단지 리모델링 현장, 그리고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내 20대의 저축통장이 아니라 관찰 노트가 두꺼워지는 일이 더 오래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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