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낮 12시 40분, 사간동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마당에서 — 붉은 벽돌과 2013년 콘크리트가 만나는 이음매를 걸어 본 78걸음
나는 토요일 점심을 거르고 사간동까지 걸어갔다. 안국역 1번 출구에서 종친부 마당을 지나 미술관 정문까지, 정확히 12분 걸렸다. 마당 한가운데에 서서 옛 기무사 자리의 붉은 벽돌과 2013년에 들어선 새 콘크리트 매스가 어떻게 이어 붙어 있는지를 천천히 따라 걸었다.
안국역에서 사간동까지, 12분의 걸음
안국역 1번 출구를 나오면 바로 윤보선길이다. 토요일 낮 12시 40분, 햇빛은 아직 부드럽고 가로수의 그늘이 보도블록 위에 좁고 길게 누워 있다. 나는 종친부 표석을 지나 사간동 골목으로 꺾어 들어갔다. 이 길은 평일 출근시간에 와 본 적이 있는데, 그때와는 온도도 사람의 밀도도 달랐다. 정문에 다다르기까지 걸린 시간은 12분, 카운트한 걸음은 약 1,040보. 이 동네는 평지인데도 묘하게 다리에 무게가 실리는 길이다.
붉은 벽돌과 새 콘크리트의 이음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가장 오래 보게 되는 자리는 출입구 정면이 아니라, 옛 건물과 새 건물이 만나는 이음매다. 마당 동쪽에 남아 있는 붉은 벽돌 외관과, 그 옆으로 미끄러지듯 붙은 회색 콘크리트 매스. 두 재료가 서로의 면을 침범하지 않고 약 5센티미터쯤의 그림자선을 두고 떨어져 있다. 나는 그 줄눈 앞에 한참 서 있었다. 시멘트 모르타르가 새것이라기에는 이미 회색이 한 톤 더 짙어졌고, 붉은 벽돌은 모서리가 닳아 볕이 닿으면 살짝 갈색에 가깝게 보인다. 100년이 좀 안 되는 시간차가, 손가락 한 마디만 한 그림자선 안에 압축되어 있는 셈이었다.
마당의 보폭 78걸음, 그리고 천창
나는 마당의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곧게 걸어 보았다. 보폭을 평소보다 살짝 좁혀 78걸음. 평소 내 걸음으로 환산하면 한 60미터쯤이다. 그 짧은 거리 안에 시대가 세 번쯤 바뀐다. 옛 종친부의 한옥 기단이 마당의 한쪽 끝에 잔잔하게 놓여 있고, 가운데에는 2013년에 새로 지어진 미술관의 유리 천창이 비스듬히 빛을 떨군다. 나는 천창 아래 그늘과 햇빛의 경계에 서서 위를 올려다 보았다. 천장 높이는 어림잡아 4미터 조금 안 되어 보였고, 알루미늄 멀리언이 약 90센티 간격으로 반복되며 빛을 잘게 쪼개고 있었다.
옛 기무사 본관, 그리고 그 앞의 의자 두 개
마당 동쪽의 붉은 벽돌 건물은 옛 국군기무사령부 본관으로 알려진 자리다. 그 앞에는 나무로 된 긴 벤치 두 개가 놓여 있는데, 토요일 낮인데도 의자 한쪽 끝에 앉아 책을 읽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나는 반대쪽 끝에 앉아 잠깐 다리를 쉬었다. 벽돌의 표면은 손바닥으로 가만히 짚으면 바깥의 햇빛 온도보다 한두 도쯤 따뜻했다. 같은 마당에 서 있는 새 콘크리트 매스의 벽면을 짚었을 때는 오히려 한 도쯤 더 차가웠다. 내가 알지 못하는 시간 동안 햇볕을 더 많이 받아 온 건 분명히 벽돌 쪽이었다.
미술관 옆 카페, 그리고 사간동 골목의 4월
나는 입장은 하지 않고 마당과 외부 회랑만 걸었다. 매표소 줄은 오늘 살짝 길었고, 굳이 줄을 서지 않아도 이번 산책의 목적은 충분히 달성된 셈이었다. 마당을 빠져 나와 건너편 사간동 골목으로 들어가니, 작은 갤러리 두 곳과 한적한 카페가 줄지어 있다. 나는 두 번째 카페에 들어가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켰다. 가격은 4,800원, 컵의 온도는 손에 쥐었을 때 살짝 따끔할 정도였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광화문이나 인사동과는 또 다른 결이다. 차가 거의 없고, 가끔 자전거 한 대가 천천히 지나간다.
사라지는 것을 기록한다는 일
마당의 붉은 벽돌은 언젠가 더 닳을 것이고, 새 콘크리트는 언젠가 새것이 아닌 것이 될 것이다. 두 시대가 이렇게 가까이 붙어 있는 자리는 서울 안에 그렇게 많지 않다. 나는 카페에서 노트를 펴고 보폭 78걸음, 줄눈 5센티, 천장 4미터, 아메리카노 4,800원을 적었다. 이런 숫자들은 시간이 지나면 결국 다 변할 텐데, 변하기 전의 오늘을 적어 두는 일 자체가 내 산책의 절반쯤은 차지하는 것 같다. 다음에 이 마당에 다시 올 때, 나는 78걸음이 그대로일지 다시 한 번 세어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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