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오후, 정동길 덕수궁 돌담에서 구 러시아공사관 탑까지 — 1890년대 벽돌과 2026년 유리 사이

월요일 오후 2시, 나는 정동극장 앞에서 시작했다. 덕수궁 돌담을 왼쪽에 끼고 중명전을 지나, 구 러시아공사관 탑 앞에서 멈춰 섰다. 500m 남짓한 길에 1890년대의 돌, 1948년의 여백, 2026년의 유리가 그대로 붙어 있었다.

정동극장 앞, 오후 2시의 빛

지하철 1호선 시청역 1번 출구를 나와 덕수궁 대한문을 등지고 왼쪽으로 돌면 정동극장이 나온다. 월요일 오후 2시, 햇빛은 북서쪽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극장 앞 낮은 화단에 철쭉이 막 피었고, 나무 벤치 하나에 60대쯤 되어 보이는 두 분이 앉아 종이컵 커피를 들고 있었다.

정동극장 외벽은 밝은 미색 콘크리트와 좁은 세로 창으로 이루어져 있다. 찾아보니 2021년에 리모델링을 거쳤고, 저층부를 유리로 바꿔서 길에서도 내부 로비가 살짝 보이게 했다. 길과 건물 사이의 그 얇은 유리 한 장이, 오후 2시의 빛을 안으로 한 번 더 끌어들이고 있었다.

덕수궁 돌담길 왼쪽 — 석조전, 그리고 중명전

정동극장을 지나 30m쯤 걸으면 덕수궁 돌담이 시작된다. 돌담은 생각보다 낮다. 내 키(180cm)로 재 보면 어깨보다 조금 높은 정도, 실측으로는 약 1.8~1.9m쯤 되는 것 같다. 돌은 화강암이고, 한 장 한 장 크기가 제각각이다. 요즘 아파트 외장재처럼 규격으로 잘린 돌과는 결이 완전히 다르다.

돌담을 따라 왼쪽으로 꺾으면 정동공원이 나오고, 그 안쪽에 중명전이 있다. 1901년 완공, 을사늑약이 체결된 공간. 붉은 벽돌에 회색 돌로 창틀을 두른 르네상스식 2층 건물인데, 지붕 모서리가 생각보다 예리하게 떨어진다. 벽돌 줄눈은 약 1cm, 벽돌 한 장은 폭 21cm 정도로 보였다. 요즘 쓰이는 치장벽돌보다 살짝 길고 두껍다. 1세기가 넘는 시간이 그 벽돌 줄눈 사이에 끼어 있다는 생각을 한다.

구 러시아공사관 탑 앞 — 1890, 1948, 2026

정동공원에서 언덕을 조금 오르면 구 러시아공사관의 탑이 보인다. 지금은 본 건물이 거의 사라지고 탑 부분만 복원·보존된 상태다. 높이는 눈대중으로 약 15m, 꼭대기 돌출부까지 합치면 더 올라간다. 1890년 완공, 1896년 아관파천의 배경이 되었던 공간. 한국전쟁 때 대부분 파괴되고, 이후 오랫동안 폐허처럼 남아 있었다고 한다.

탑 바로 옆에 서서 고개를 돌리면, 세 가지 시간이 동시에 보인다. 1890년의 벽돌 탑, 1970~80년대에 지어진 주변 저층 주택 몇 채, 그리고 언덕 너머로 솟은 2020년대 오피스 빌딩의 유리 커튼월. 한 프레임 안에 130년이 겹쳐 있다. 나는 그 장면을 휴대폰 카메라로 세로 한 장, 가로 한 장 찍었다. 세로로 찍을 때는 탑이 서울 도심의 유리 건물 위로 떠 보였고, 가로로 찍을 때는 유리 건물이 탑을 둘러싸는 것처럼 보였다. 같은 장소, 프레임만 바꿨을 뿐인데 주인공이 달라진다.

배재학당 벽돌 vs 인근 신축 유리 — 같은 필지, 다른 세대

언덕에서 내려와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쪽으로 내려갔다. 1916년에 지어진 붉은 벽돌 본관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 바로 길 건너에 2020년대에 완공된 사무용 빌딩이 있다. 10층쯤 되어 보이는 유리와 금속 패널 건물. 저층부는 투명 유리, 위로 갈수록 어두운 반사 유리.

두 건물을 나란히 놓고 보면 재미있다. 배재학당 본관은 1층 천장 높이가 약 4m, 창문은 세로로 길고 위쪽이 아치형이다. 반면 맞은편 신축 빌딩은 층고 약 3m, 가로로 길게 이어지는 띠창. 같은 필지 근처에서 같은 사무 공간이라는 기능을 수행하지만, 사람과 빛을 다루는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 오래된 건물은 높이로 권위를 만들고, 새 건물은 폭으로 개방감을 만든다.

20대 내가 이 길에서 배운 것

정동길을 한 바퀴 돌며 내가 계속 곱씹은 단어는 컨텍스트였다. 건축은 단독으로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시간과 길과 빛 속에 놓인다. 1890년대 벽돌 탑은 혼자 있을 때보다 2026년 유리 빌딩 옆에 있을 때 더 선명해진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새 유리 빌딩도 혼자 있었다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오피스였을 텐데, 돌담과 탑 옆에 있어서 정동의 유리 빌딩이 된다.

20대로서 내가 이 길에서 배운 건, 새것을 무조건 밀어내지도 옛것을 무조건 보존하지도 않는 감각이었다. 필요한 건 두 시간을 같은 프레임에 놓고 오래 바라보는 일이다. 어느 쪽이 주인공인지 정하지 않고, 계절마다 한 번씩 다시 와서 확인하는 일. 500m 안에 담긴 이 이야기를, 나는 아마 올해 안에 두 번쯤은 더 걸을 것 같다.

산책 메모

코스: 시청역 1번 출구 → 정동극장 → 덕수궁 돌담길 → 정동공원·중명전 → 구 러시아공사관 탑 →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 시청역. 총 약 1.5km, 천천히 걸어 1시간 10분. 오후 2시~3시 10분, 2026년 4월 20일 기준. 돌담 높이와 벽돌 치수는 육안 실측이므로 참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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