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점심, 명동성당 계단 위에서 — 1898년 붉은 벽돌 첨두아치와 2026년의 점심 줄

나는 충무로4가에서 밥 먹을 곳을 찾다가 결국 명동성당 언덕까지 올라왔다. 정문 쪽 계단에 앉아 종탑을 한참 올려다봤고, 첨두아치 아래로 들어가 본당 통로 끝까지 걸었다. 12시 35분부터 1시 18분, 약 43분이었다.

충무로4가에서 명동성당까지 — 6분의 오르막

충무로역 4번 출구에서 명동성당 언덕까지 직선으로 약 450m, 걸어서 6분이 채 안 걸렸다. 점심시간이라 명동길 큰 도로 쪽은 줄이 길었지만, 나는 충무로 쪽 뒷길을 타고 올라갔다. 인쇄소들이 점심을 마치고 셔터를 반쯤 내린 모습이 골목마다 똑같았다. 그러다 갑자기 시야가 트이고 붉은 벽돌의 첨탑이 정면으로 들어온다. 이 동선은 100년 전에도 거의 같았을 것이다.

1898년 — 붉은 벽돌의 한국식 고딕

명동성당의 정식 이름은 천주교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 1892년에 착공해 1898년에 완공됐고, 설계는 파리외방전교회의 코스트(E. Coste) 신부가 맡았다. 그러니 올해로 만 128년째 자리를 지킨 건물이다. 양식은 라틴 십자형 평면에 첨두아치를 쓴 고딕 리바이벌인데, 유럽의 오리지널 고딕처럼 돌이 아니라 두 가지 색의 벽돌(붉은 벽돌과 회색 벽돌)을 정교하게 쌓아 무늬를 냈다. 본당 외벽을 가까이서 보면 붉은 벽돌 사이에 일정한 간격으로 회색 벽돌이 가로로 한 줄, 아치 둘레로는 또 다른 패턴이 들어가 있다. 한국식 재료로 번역한 고딕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종탑 아래에서 잰 숫자들

본당 정면, 종탑 부분에서 한참 올려다봤다. 자료에 따르면 종탑 높이가 약 46.7m, 본당 길이 약 68m, 폭 약 28m. 직접 서서 보면 그 숫자가 눈으로도 가늠된다. 첨두아치 입구 위 장미창은 지름이 사람 키의 두 배쯤, 아치 정점은 어림잡아 6m 가까이는 됐다. 부축벽(buttress)이 외벽에 일정한 간격으로 튀어나와 있는데, 본래 고딕의 플라잉 버트레스만큼 극적이지는 않고 부드러운 벽기둥에 가깝다.

본당 안쪽 — 통로 끝까지 16걸음

문을 열고 들어가니 바깥의 점심시간 소음이 한 번에 떨어진다. 천장이 굉장히 높아서, 발걸음 소리도 한 박자 늦게 돌아왔다. 통로 한가운데를 따라 제대 쪽까지 걸어가며 보폭으로 세 보니 정확히 16걸음 정도. 좌우 신랑(nave) 양쪽 기둥 사이로 스테인드글라스가 들어와 바닥에 푸르고 붉은 색 띠를 깔아 놓고 있었다. 평일 낮인데도 앉아 있는 사람이 스무 명 정도 됐고, 대부분 혼자 앉아 가만히 정면만 보고 있었다. 사진을 찍지는 않았다. 안에서 사진은 좀 아닌 것 같았다.

밖에서 보이지 않는 시간 — 지하 묘소와 1900년대 벽돌

본당 아래에는 지하 묘소가 있고, 1839년·1866년 박해 때의 순교자 유해가 모셔져 있다는 안내가 있었다. 들어가지는 않았다. 다만 본당 외벽을 한 바퀴 돌면서, 후면 벽 아래쪽에 다른 벽돌과 색이 살짝 다른 구역이 보였다. 보수공사로 갈아 끼운 부분일 것이다. 1898년의 벽돌과 1990년대, 2010년대 보수에 들어간 벽돌이 한 벽면 안에 같이 살아 있다. 가까이서 보면 줄눈 모르타르의 색도 다르다. 100년 넘게 같은 자리에 서 있는 건물에는 이렇게 시간의 결이 한 벽면에 쌓여 있다.

광장 계단 — 점심 줄과 비둘기와 카메라

다시 밖으로 나와 본당 정면 광장 계단에 앉았다. 정오를 막 지나서, 명동 쪽에서 점심을 마친 사람들이 성당 쪽으로 슬슬 올라오고 있었다. 본당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이 분당 4~5명, 비둘기는 발 밑에 일곱 마리. 동남아시아 쪽에서 온 것 같은 단체 관광객 한 무리가 가이드를 따라 멈춰 섰는데, 가이드가 한국어로 "1898년"이라고 말하는 부분만 알아들었다. 그 단어가 이 건물의 한 가지 정체성을 가장 짧게 요약한다. 128년째 광장 계단은 늘 누군가가 앉는 자리고, 종탑은 늘 누군가의 사진 배경이다. 그 동선만 그대로다.

오늘의 메모

점심도 안 먹고 43분을 여기 있었다. 안에서 16걸음, 밖에서 한 바퀴, 계단에서 15분. 명동에 갈 일이 있다면 쇼핑가 한복판이 아니라 이 언덕 위 계단을 한 번 들러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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