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후 2시, 정동제일교회 벧엘예배당 앞에서 — 1897년 붉은 벽돌과 첨탑 하나의 129년
일요일 오후 두 시, 나는 시청역 1번 출구에서 내려 정동길로 들어섰다. 벧엘예배당 앞 붉은 벽돌 외벽을 천천히 한 바퀴 돌고, 1897년에 올라간 첨탑 하나를 30분 동안 올려다보았다. 사라지지 않고 남은 129년의 표면을 직접 만져 본 일요일 오후의 메모.
시청역 1번 출구에서 정동길까지 — 6분의 짧은 진입
일요일 오후 두 시 정각, 시청역 1번 출구에서 나와 덕수궁 돌담을 끼고 왼쪽으로 걸었다. 정동제일교회 벧엘예배당까지는 정확히 6분, 약 480걸음. 돌담길 끝에서 길이 살짝 꺾이는 지점에서 붉은 벽돌의 첨탑이 먼저 보였다. 일요일이지만 오전 예배가 끝난 뒤라 길은 한산했고, 가족 단위 산책객 셋과 카메라를 든 60대 남성 한 명만 마주쳤다. 정동길 양옆의 벚꽃은 이미 졌고, 길 위에는 작은 잎이 막 펴진 상태였다.
벧엘예배당 외벽 — 직접 만져 본 1897년의 붉은 벽돌
벧엘예배당은 1897년 12월에 봉헌되었다고 입구 안내판에 적혀 있었다. 정확히 129년 전. 외벽 벽돌은 손바닥으로 쓸었을 때 미세하게 거칠었고, 벽돌과 벽돌 사이의 모르타르 줄눈이 안쪽으로 약 5밀리미터 정도 들어가 있었다. 한국 최초의 개신교 예배당, 그리고 한국 개신교 건축의 첫 사례라는 표현이 안내판에 함께 적혀 있다. 외벽을 한 바퀴 도는 데 약 4분이 걸렸고, 그동안 벽돌 색이 한 종류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동쪽 면은 햇빛을 더 많이 받아 살짝 옅은 갈색을 띠고 있었다.
첨탑의 높이를 헤아리며 — 약 17미터의 고딕 윤곽
첨탑은 본당 서쪽 끝에 한 개가 솟아 있다. 정확한 높이는 자료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대략 17미터 안팎으로 적혀 있다. 한 층을 3미터로 잡으면 약 5층 반 높이. 첨탑 끝의 십자가는 단순한 라틴 십자형이고, 첨탑 본체는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사각뿔 형태다. 전형적인 영국식 고딕 리바이벌의 단정한 단면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첨탑 옆면에는 좁고 긴 첨두형 창이 한 면에 두 개씩 들어가 있고, 그 안쪽으로 종이 매달려 있었다.
예배당 안 — 일요일 오후, 비어 있던 30분
오후 두 시 30분, 예배당 본당 문이 열려 있어 안으로 들어갔다. 천장 높이는 어림잡아 약 8미터쯤 되어 보였고, 양쪽 측랑 위로 작은 첨두 아치 창이 일곱 개씩 균등하게 배열되어 있었다. 의자 끝에 앉아 30분 정도 머물렀는데, 그 사이 들어온 사람은 단 두 명. 한 명은 카메라를 든 60대 남성, 한 명은 혼자 자리에 앉아 기도하던 여성이었다. 그 30분 동안 햇빛 한 줄이 본당 정중앙 통로 위로 아주 천천히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동했다. 나무 의자에 손을 대고 있으면 차가운 쪽과 햇빛이 닿는 따뜻한 쪽이 손바닥 안에서 분명히 구분되었다.
옛 본당과 신축관 — 1979년과 1897년이 등을 맞댄 자리
벧엘예배당 바로 옆에는 1979년에 지어진 정동제일교회의 신축관이 붙어 있다. 두 건물이 등을 맞댄 외벽 사이를 지나며 양쪽을 동시에 보면, 한쪽은 갈색이 도는 1979년의 콘크리트와 타일, 다른 한쪽은 1897년의 붉은 벽돌이다. 같은 교회가 두 번 다른 시대의 재료로 자기를 표현한 흔적이 한 자리에서 보이는 셈이다. 신축관 쪽은 4층, 옛 본당은 한 층이지만 천장이 높아 외부 처마 라인이 거의 비슷한 높이로 나란히 서 있다. 두 시대의 외벽이 만나는 줄눈을 내려다보면, 콘크리트와 벽돌 사이가 약 2센티미터의 신축 줄눈으로 처리되어 있었다.
정동길의 다음 건물 — 중명전과 정동극장까지 도보 4분
벧엘예배당 정문에서 다시 정동길로 나와 서쪽으로 걸으면, 약 4분 거리에 덕수궁 중명전이 있고, 그 길 건너에 정동극장이 있다. 일요일 오후 세 시 즈음 그 길을 따라 걷는 사람들은 대부분 가벼운 카디건이나 셔츠 차림이었고, 손에 카페 잔이나 작은 책을 든 경우가 많았다. 정동길 자체가 도시 한가운데에서 속도를 한 박자 늦추는 길이라는 인상은 다섯 번째 방문에도 변하지 않았다. 차도는 좁고, 보도블록은 큰 판석이라 발걸음 소리가 평소보다 더 또렷하게 들렸다.
오늘의 메모
1897년에 올라간 벽돌과 첨탑 한 개가 도심 한가운데서 129년을 그대로 서 있다는 사실은, 매번 직접 외벽을 만져 봐야만 새로 실감이 된다. 사라지지 않고 남은 것의 표면은 사진보다 훨씬 거칠고 따뜻하다. 오늘 일요일 오후의 30분은 그 거친 따뜻함을 다시 한 번 손바닥에 새겨 넣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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