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후 3시 20분, 옛 서울역사 앞에서 — 1925년 붉은 벽돌과 비잔틴 돔의 101년

일요일 오후 3시 20분, 나는 서울역광장 한쪽에 서서 옛 서울역사를 다시 보았다. 새 역사의 유리 천장과 옛 역사의 붉은 벽돌이 같은 시야에 들어오는 자리에서, 1925년 9월에 준공된 이 건물이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한 시간쯤 적어 둔다.

1. 신역사 옆에서 다시 마주한 1925년

지하철 1호선 서울역 1번 출구로 올라오면 KTX 역이 먼저 보인다. 그 우측, 정확히는 중구 통일로 1번지에 옛 서울역사가 멈춰 서 있다. 1925년 9월에 준공된 르네상스 양식의 붉은 벽돌 건물이다. 나는 광장 분수대에서 약 30미터 떨어진 자리에 서서 정면 박공을 올려다봤다. 정면에서 바라본 길이는 어림잡아 80미터쯤 됐고, 가운데 비잔틴풍 청동 돔의 꼭대기는 25미터쯤 위에 있었다. 일요일 늦은 오후의 햇빛이 박공 아래 화강석 기단부에 비스듬히 떨어져, 흰 돌과 붉은 벽돌의 두 색이 따로따로 또렷해졌다.

2. 붉은 벽돌과 화강석 기단의 두 톤

가까이 가서 보면 외벽은 한 톤이 아니다. 1층 기단부는 약 1.8미터 높이까지 거친 화강석으로 마감했고, 그 위로 2층까지는 붉은 벽돌이 가지런히 쌓였다. 벽돌과 벽돌 사이의 줄눈은 흰색에 가깝고, 100년이 지난 지금도 줄눈선은 또렷이 살아 있었다. 모서리와 창 둘레만 다시 흰 돌로 둘러싸여 있어, 멀리서 보면 붉은 화면 위에 흰 사각형 액자가 일정한 간격으로 박힌 모양이다. 도쿄역을 설계한 다쓰노 긴고의 제자 쓰카모토 야스시가 이 건물을 그렸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도쿄역과 같은 두 톤 외장을 한국식 햇빛 속에서 다시 보는 셈이다.

3. 둥근 박공, 청동 돔, 그리고 비잔틴이라는 단어

정면 한가운데에는 삼각형이 아니라 둥글게 부풀어 오른 박공이 있다. 그 위에 비잔틴풍 청동 돔이 한 채 얹혀 있다. 돔의 표면은 시간이 만든 청록색 산화막으로 덮여 있었고, 한쪽 면에 작은 환기구처럼 보이는 창이 두 개 보였다. 예전에 본 도면 자료에는 돔의 직경이 약 9미터, 정면 박공의 폭이 약 13미터로 표기돼 있었다. 르네상스 양식이라고 부르지만, 둥근 박공과 모자이크풍 창대 장식은 사실 19세기 말 비잔틴 부흥의 어휘에 가깝다. 르네상스라는 한 단어로 묶기에는 양식이 한 겹 더 깊다.

4. 광장에서 본 비례 — 가로와 세로

광장 분수대에서 정면을 보면 비례가 또렷하게 잡힌다. 가로는 80미터쯤, 정중앙 박공의 높이는 약 22미터, 양 날개 끝의 처마 높이는 약 17미터다. 1 대 4 정도의 가로세로 비례에, 가운데가 살짝 부풀어 오른 형태다. 단순한 박스가 아니라, 가운데를 강조하기 위해 양 날개를 의도적으로 낮춘 구도다. 나는 이 비례가 마음에 들어 광장 가운데 벤치에 약 20분간 앉아, 사진을 4장 찍고 노트에 짧게 적었다.

5. 유실과 복원, 그리고 두 번째 1925

옛 서울역사는 2004년 KTX 개통과 함께 역의 기능을 새 역사로 넘겼고, 그 뒤 한동안 비어 있었다. 2009년부터 약 2년에 걸쳐 보존·복원 공사가 진행됐고, 2011년 8월에 '문화역서울284'라는 이름의 복합 문화 공간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사적 지정번호 284에서 따온 이름이다. 오늘 오후에는 1층 그랜드홀에서 열린 사진전이 마침 마지막 날이라 사람이 적당히 들어차 있었다. 나는 안으로는 들어가지 않고, 출입문 위 부조 장식을 한참 올려다봤다. 100년을 넘긴 건물인데, 부조 가장자리의 잎사귀 무늬는 지금 막 새로 깎은 듯 또렷했다.

6. 결론 메모

오늘 광장 한쪽에서 본 옛 서울역사는 '근대 건축의 유물'이라는 한 문장으로 정리하기에는 표정이 너무 많다. 도쿄역의 형제이자 1981년 사적 284호로 지정된 건물이고, 동시에 2011년 이후로는 전시장이라는 새로운 직업을 맡은 100년 된 노동자다. 다음 일요일에는 1층 그랜드홀 안에서 같은 돔을 천장 쪽에서 올려다보며 한 번 더 적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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