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오후 3시 20분, 통의동 보안1942 좁은 계단 위에서 — 1942년 객실 자리가 갤러리가 되기까지
목요일 오후, 경복궁 영추문 옆 좁은 골목으로 들어갔다. 1942년에 문을 열었다는 옛 여관이 갤러리가 된 자리, 보안1942 계단 앞에서 약 30분을 보냈다. 보존과 개조 사이에서 옛 여관의 공간 감각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발걸음으로 직접 세어 봤다.
영추문 옆 골목, 보안1942 입구
3호선 경복궁역 4번 출구에서 영추문 쪽으로 6분쯤 걸으면 효자로 33번지에 닿는다. 큰길에서 한 블록 안쪽이라 처음 가는 사람은 한 번쯤 헤맨다. 나도 골목 입구에서 두 번 길을 되짚었다.
건물 외벽은 옅은 베이지의 시멘트 마감인데, 페인트가 새로 칠해진 부분과 빗물 자국이 그대로 남은 부분이 한눈에 구분된다. 정문 옆 작은 안내판에는 "통의동 보안여관 1942~2004"라는 문구가 지워질 듯 흐릿하게 남아 있다. 1942년부터 2004년까지 62년 동안 여관이었다는 사실을, 이 한 줄이 대신 말해 준다.
계단의 폭과 천장 높이
1층 카페 옆 작은 문으로 들어가면 곧장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다. 폭은 약 80cm. 키 175cm인 내가 어깨를 살짝 틀어야 다른 사람과 비껴 지나갈 수 있는 너비다. 옛 여관의 동선이 얼마나 좁은 곳을 지나 손님을 객실까지 데려갔는지, 첫 발을 올리자마자 알게 된다.
천장 높이는 약 2.4m. 손을 위로 뻗어 보면 끝에 닿을 듯 닿지 않는다. 요즘 새로 짓는 건물의 2.7m나 3m 천장에 익숙해진 눈에는 묵직하게 낮다. 그런데 그 낮은 천장 덕분에 계단 위쪽 공간이 작은 동굴처럼 사람을 감싼다. 페인트 냄새는 거의 없고, 오래된 회벽의 마른 분 냄새만 옅게 난다.
옛 객실 번호와 작은 창
2층 복도에 들어서면 객실 단위 전시 공간이 줄지어 있다. 객실 문 위에는 1, 2, 3 식의 번호가 검정 페인트로 다시 그려져 있었다. 글씨체는 또박또박하지만 어딘가 손으로 그은 균열이 보였다. 일부러 옛 느낌을 흉내 낸 건지, 진짜 옛 페인트 위에 덧칠한 건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객실 한 칸의 너비는 약 2.4m, 깊이는 약 3m였다. 일본식 다다미로 환산하면 4.5장 정도. 창은 가로 60cm, 세로 90cm의 작은 사각이다. 객실에 들어가 그 창을 마주하고 서면, 좁은 골목 건너편 다세대주택의 갈색 벽돌이 눈높이에 들어온다. 1942년에는 무엇이 보였을까 하는 상상이, 그 작은 창 한 장에서 자연스럽게 시작됐다.
객실이 갤러리가 되면서 바뀐 것
객실은 갤러리로 바뀌면서 벽지 대신 흰 회벽 마감으로 정리됐다. 다만 바닥의 마룻널은 옛것을 그대로 둔 듯 보였다. 한 객실의 천장 한가운데에는, 옛 전등이 매달려 있었던 자리가 동그란 자국으로 남아 있다. 지름은 약 12cm쯤. 지금은 그 자리에 아무것도 없고 천장 옆 모서리에 작은 LED 라인 조명이 붙어 있다.
전시 작품은 한 객실에 한두 점씩만 걸렸다. 작품 하나에 객실 한 칸을 통째로 내주는 셈이다. 좁은 칸이지만 그래서 오히려 작품과 단둘이 마주 보는 시간이 길어진다. 30분 동안 다섯 객실을 돌았는데, 마지막 객실에서는 다른 관람객 한 명과 약 1.5m 거리에서 서로 등을 돌리고 작품을 보고 있었다.
신관과 본관 사이 마당
본관 옆에는 노출콘크리트의 신관이 새로 들어서 있다. 4층 정도로, 본관 2층 건물보다 거의 두 배 높지만 두 건물 사이의 거리가 약 5m쯤이라 답답하지 않다. 신관의 외벽은 옅은 회색이고, 본관의 베이지 외벽과 만났을 때 너무 튀지 않도록 배합된 색이라는 인상이었다.
마당에는 의자 네 개가 일자로 놓여 있다. 30분 머무는 동안 앉아 있던 사람은 나 포함 두 명. 다른 한 명은 이어폰을 꽂은 30대 초반쯤의 여성으로, 노트에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마당의 바닥은 박석인지 옛 보도블록을 재활용한 것인지 헷갈리는 회색 돌이었고, 모서리가 둥글게 닳아 있었다.
결론 메모
옛 여관을 박물관처럼 박제하지 않고, 객실 단위 공간 감각을 그대로 작품 전시 공간으로 옮긴 점이 좋았다. 좁은 계단, 낮은 천장, 작은 창은 그대로 두고 회벽과 조명만 바꿔 놓았을 뿐이다. 보존이 꼭 못 박힌 유물이 아닐 수도 있다는 메모를 남기고 나왔다.
다음에 다시 올 일이 있다면, 옆 신관 4층 옥상에서 본관의 지붕선을 내려다보고 싶다. 보안1942의 진짜 모습은 거리에서가 아니라 같은 키에서 마주 봤을 때 가장 잘 보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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