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 3시, 동대문 평화시장 4층에서 — 한지후의 일기 06: 30분 동안 든 흰 셔츠 다섯 벌과 사지 않은 이유

2026년 4월 25일 토요일 오후 3시. 4호선을 타고 동대문역에서 내려 평화시장 4층 남성복 코너를 한 바퀴 돌았다. 30분 동안 흰 셔츠 다섯 벌을 만져 보고 결국 한 벌도 사지 않았다. 안 산 이유를 다섯 줄로 적어 두면, 다음에 또 흔들릴 때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일기로 남긴다.

왜 평화시장 4층이었나

오늘 점심을 인사동에서 먹고 종로5가 쪽으로 천천히 내려왔다. 평화시장에 처음 가 본 건 군대 가기 전 스무 살 봄이었고, 그 뒤로 일 년에 두세 번씩 들른다. 오늘은 흰색 옥스퍼드 셔츠 한 벌이 필요해서 들렀다. 가격은 보통 1만 5천 원에서 2만 5천 원 사이, 백화점 대비 3분의 1쯤 한다. 4층은 남성복이 모여 있고 토요일 오후엔 통로 폭이 1.2미터 정도까지 좁아진다. 손님 절반은 50대 이상 남자, 나머지는 나처럼 셔츠 한 벌 사러 온 20대다.

첫 번째 셔츠 — 1만 8천 원, 면 100% 라벨

입구에서 셋째 가게에서 봤다. 옷걸이 가격표에 1만 8천 원이라고 적혀 있고, 라벨엔 면 100%라고 찍혀 있었다. 손에 잡으니 가볍고 평직 결이 살아 있었다. 그런데 안 단에서 단추 사이 박음질 두 곳이 살짝 어긋났다. 1밀리미터쯤. 1만 8천 원짜리에 그걸 따지는 게 맞나 싶었지만, 한 번 보고 나면 그 자리가 계속 보일 것 같아 다시 걸어 두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 손에 묻는 기름기

다음 가게에서 두 벌을 한꺼번에 들었다. 사이즈 95와 100. 둘 다 가격 2만 1천 원. 면 60% 폴리에스터 40% 혼방이었다. 문제는 옷감이 아니라 손에 묻는 기름기였다. 보관할 때 비닐 안에서 시간이 오래 지난 옷에서 가끔 나는 그 미세한 끈적임. 새 옷이지만 1년 넘게 진열돼 있었던 셔츠에서 자주 잡힌다. 두 벌 다 그래서 내려놨다.

네 번째 셔츠 — 사이즈 95에서 멈췄다

네 번째 가게는 한 칸 안쪽이었다. 옥스퍼드 두꺼운 결, 1만 9천 원, 단추는 자개. 이건 좋다 싶어서 사이즈를 봤다. 95 한 벌, 100 세 벌, 105 두 벌. 95는 단 한 벌 남은 게 진열대 위쪽에 걸려 있었다. 사장님이 사다리를 안 쓰고 옷걸이 막대로 끌어내리는데, 끌어내리면서 어깨선이 살짝 구겨졌다. 그 구김을 다림질로 폈다고 해도 며칠 가지 않을 것 같았다. 이건 95가 아니라 100을 사야 했지만, 100은 어깨가 2센티 남는다. 결국 안 샀다.

다섯 번째 셔츠 — 거의 사려다 멈춘 이유

마지막은 통로 끝 모퉁이 가게였다. 주인 아저씨가 60대쯤 보였고, 셔츠 한 벌을 다림판 위에 올려 놓고 다리고 계셨다. 가격 2만 4천 원. 면 100%, 옥스퍼드보다 한 끗 얇은 평직, 칼라가 약간 짧은 세미와이드. 정확히 내가 찾던 셔츠였다. 그런데 사장님이 지금 다리는 게 그 셔츠와 같은 모델이라 지금 사면 손님 거에 다림질을 다시 해 드린다고 하셨다. 좋다고 했다. 그러다 옷을 들고 매장 안 거울 앞에 섰는데, 흰색이 너무 밝았다. 내가 쓰는 베이지 면바지·검은 슬랙스·짙은 청바지 모두에 흰색이 한 톤만 더 가라앉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프화이트나 아이보리. 평화시장 4층에서 오프화이트 옥스퍼드는 본 적이 없다. 5분쯤 망설이다 다시 걸어 두었다.

30분 뒤, 빈손으로 4호선을 다시 탔다

나오면서 보니 시계가 오후 3시 32분. 들어간 게 3시 1분이었으니 정확히 31분을 보냈다. 동대문역 4번 출구로 다시 들어가면서 오늘 안 산 이유 다섯 가지를 다시 세었다. 박음질 어긋남 1밀리미터, 보관 기름기, 진열 위치 어깨 구김, 어깨 사이즈 2센티, 흰색 톤. 다섯 가지를 다 통과해야 사는 거라면 평화시장에서 흰 셔츠를 사는 일은 앞으로도 쉽지 않겠다. 그런데도 다음 토요일에 또 올 것 같다. 사지 않아도 30분 만져 보는 일이 글감이 되니까. 오늘 일기는 여기까지.

결론 메모

평화시장 4층 남성복은 토요일 오후 통로 폭이 1.2미터까지 좁아진다. 사람이 많아서가 아니라 행거가 통로 쪽으로 한 뼘씩 나와 있어서 그렇다. 셔츠를 살 때 내가 거르는 다섯 기준이 오늘 정리됐다. 박음질의 1밀리미터, 보관 중 옷에 묻는 기름기, 진열 손상으로 생긴 어깨 구김, 사이즈 어깨선 2센티 차이, 흰색의 톤이 너무 밝은가. 이 다섯 줄은 다음 방문에서도 그대로 적용해 본다. 다음에는 오프화이트 칼라가 약간 짧은 옥스퍼드를 일부러 찾아본다. 평화시장에서 안 보이면 광장시장 쪽 노포 한두 곳도 같은 날 묶어서 들러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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