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후 4시 30분, 서울로7017 만리동광장 입구 벤치에서 — 한지후의 일기 08: 12.4km를 걷고 적어둔 일곱 줄
일요일 새벽 7시 40분 청계천 광교에서 시작한 하루의 산책이 오후 4시 28분, 서울로7017 만리동광장 입구 쪽 벤치에서 멈췄다. 휴대폰 만보계로는 18,420보, 거리로는 12.4킬로미터. 벤치에 앉아 22분 동안 적어둔 일곱 줄을 그대로 옮긴다. 4월 끝자락의 서울이 어떤 표면과 어떤 햇빛을 갖고 있었는지, 다음 4월의 내가 다시 읽을 수 있게.
오후 4시 28분, 만리동 출구 쪽 벤치에 앉다
서울로7017 만리동광장 출구 쪽 벤치는 등받이가 콘크리트로 깎인 형태다. 폭은 약 1.6미터, 깊이 45센티 정도. 햇빛은 서쪽으로 정확히 4시 방향에서 들어오고 있었고, 등받이 그림자가 보도 위에 32센티쯤 떨어져 있었다. 운동화 끈을 한 번 풀었다가 다시 묶었다. 새벽 청계천에서 신을 적신 자리가 아직 0.3센티 어둡게 남아 있었다. 발끝에 통증은 없었지만, 종아리 안쪽이 살짝 뻣뻣했다. 이런 작은 신체의 메모를 적는 일이, 산책 끝에서 가장 정직한 감각이다.
첫째 줄 — 오늘 들른 다리와 광장 일곱
광교, 광통교, 모전교 셋. 정동길 정동제일교회 앞 보도. 옛 서울역사 앞 광장. 그리고 지금 앉아 있는 만리동광장. 다리는 셋, 광장은 셋, 보도 한 줄. 합쳐서 일곱이라 적어둔다. 다리는 사람을 잠시 멈추게 하고, 광장은 한참 머무르게 한다. 보도는 그 사이를 잇는다. 4월 26일 일요일, 내 발은 다리에서 광장으로, 광장에서 보도로 흘렀다. 어느 한 곳에 묶이지 않은 하루였다.
둘째 줄 — 햇빛이 4시 방향에서 들어올 때 콘크리트 색
서울로7017의 콘크리트는 1970년에 깔린 것이다. 56년 된 표면은 햇빛 각도에 따라 색이 셋으로 나뉜다. 정오에는 거의 흰색에 가깝고, 오후 2시쯤이면 옅은 회색, 그리고 4시 30분 지금은 살구색에 가까운 따뜻한 회색이다. 균열은 손가락 한 마디 너비로 다섯 줄, 그 안에 돋아난 풀이 네 개. 풀은 크기 순서로 9센티, 7센티, 5센티, 3센티. 돋아난 위치는 모두 균열의 가장 깊은 지점 가까이다. 식물은 균열을 사람보다 정확히 읽는다.
셋째 줄 — 오늘 마주친 같은 사람 셋
오늘 같은 얼굴을 두 번 이상 마주친 사람이 셋 있었다. 첫째는 후암동 108계단 아래 카페 앞에서, 그리고 정동길 덕수궁 돌담 부근에서 다시 본 노부부. 베이지색 모자가 같았다. 둘째는 옛 서울역사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던 외국인 남성. 만리동광장 입구에서 한 번 더 마주쳤다. 검은 가방을 어깨에 한 번 더 메는 동작이 같았다. 셋째는 청계천 광통교 위 매점에서 종이 신문을 사 가던 사람. 서울로7017 회현역 쪽 입구 벤치에서 한 번 더 봤다. 신문은 그대로 들고 있었다. 도시는 좁고, 일요일은 더 좁다.
넷째 줄 — 4월 끝자락의 햇빛 길이
오늘 일몰 시각은 19시 02분쯤. 지금이 16시 28분이니 햇빛이 약 2시간 34분 남아 있다. 하지만 서울로7017 위에서 체감하는 빛은 한 시간 안에 끝날 것이다. 만리동 쪽 빌딩들이 17시 30분쯤이면 그림자를 광장 끝까지 끌어다 놓는다. 4월 26일의 빛은 4월 1일보다 약 24분 더 길다. 이 24분이 4월의 가장 큰 선물이라고 적어둔다. 다음 일요일은 5월 3일. 그날의 빛은 또 6분쯤 더 길어져 있을 것이다.
다섯째 줄 — 발이 알려준 거리, 메모가 알려준 거리
휴대폰 만보계는 18,420보, 거리 환산으로 12.4킬로미터. 그러나 메모장에 적힌 키워드 수로 환산한 거리는 다르다. 오늘 적은 키워드는 47개. 키워드 한 개에 약 263미터씩 걸어 만들었다는 뜻이다. 발은 거리를 재고, 메모는 밀도를 잰다. 두 숫자가 같이 적혀 있어야 산책의 두께가 보인다. 12.4킬로미터를 모두 적었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다. 그러나 12.4킬로미터의 어떤 한 표면, 어떤 한 발길이는 이 메모로만 남을 것이다.
결론 메모 — 사라질 일요일을 위한 일곱 줄째
오늘 적은 글은 블로그에 일곱 편이다. 새벽 청계천, 후암동 108계단, 한남동 우사단로, AI에게 물어본 적산가옥 다섯 곳, 정동제일교회 첨탑, 옛 서울역사 붉은 벽돌, 그리고 지금 적고 있는 이 일기. 일곱 편을 다 합치면 약 1만 3천 자다. 발은 12.4킬로미터를 걸었고, 손은 1만 3천 자를 적었다. 같은 4월 26일 일요일을, 발과 손이 두 번 살았다는 뜻이다. 사라지는 것을 기록한다는 약속이, 오늘 하루는 이 두 번의 살아냄으로 지켜진 것 같다. 벤치에서 일어나 숙소로 돌아간다. 발은 쉬게 하고, 메모만 한 번 더 다시 읽을 것이다.
— 한지후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