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 4시 30분, 동대문 DDP 광장에서 — 자하 하디드의 곡면 아래에 1시간을 머물렀다
토요일 오후, 평화시장 4층을 나와 DDP까지 걸었다.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이 건물은 곡면 외장 패널 4만 5천여 장으로 덮여 있고, 그 형태에는 'Metonymic Landscape'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나는 그 곡선 아래에 한 시간을 머물렀다.
평화시장에서 DDP까지, 도보로 7분
오후 3시 반, 평화시장 4층에서 흰 셔츠 다섯 벌을 보고 출구로 내려왔다. 청계천변을 따라 동쪽으로 걸으면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까지 빠른 걸음으로 7분쯤 걸린다. 거리계는 약 550미터. 4월 마지막 토요일의 햇볕은 길었고, 청계 9가 다리 위에서 바람이 가벼웠다. 평화시장의 붉고 어두운 외벽 색이 머리에 남아 있는 채로 DDP의 은빛 곡면을 마주보면, 두 건물 사이의 거리감이 단순히 도보 거리만은 아니라는 인상을 받는다. 1962년에 들어선 5층짜리 시장 건물에서, 2014년에 개관한 비정형 곡면 건물까지, 52년 사이의 서울이 청계천 한 줄을 따라 압축돼 있었다.
저 이상한 곡면은 수만 장의 패널이다
DDP 외장은 알루미늄 패널 약 4만 5천여 장으로 마감되어 있다. 자료에 따라 4만 5천 장에서 4만 5,133장까지 숫자가 조금씩 다르게 잡히는데, 어느 쪽이든 두 자릿수 만 단위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패널 한 장 한 장은 형태가 거의 다 다르다. 같은 장이 두 개 없도록 3차원 곡면을 BIM으로 분할해 떼낸 것이다. 두께는 4밀리미터쯤이고, 가까이 다가가면 표면에 거친 헤어라인 가공이 보인다. 빛의 각도에 따라 회색에서 은색까지 톤이 바뀐다. 오후 4시 50분, 서쪽 면이 가장 밝았고, 같은 면이 5시 20분에는 톤이 한 단계 가라앉았다.
자하 하디드가 남긴 'Metonymic Landscape'라는 말
설계자 자하 하디드는 이 건물의 콘셉트를 'Metonymic Landscape'라고 불렀다. '환유적 풍경'으로 옮길 수 있다. 부분이 전체를 대신해 부르는 환유처럼, 이 곡면 덩어리가 동대문이라는 도시 풍경 전체를 대신해 호명한다는 뜻으로 나는 이해했다. 2009년에 착공해 2014년 3월에 개관했으니 올해로 12년이 되었다. 자하 하디드 본인은 2016년에 세상을 떠났고, 그래서 DDP는 그가 살아서 본 한국 안의 마지막 작업이 되었다. 그는 비정형 건물을 종이 위 드로잉으로만 그리던 시기를 길게 거친 사람이고, 이 건물은 그 종이 위 곡선이 실재 도시의 표면이 된 사례다.
광장에 계단이 사라진 자리, 사람들이 멈춰 앉았다
DDP 광장 한쪽에는 길게 비탈진 잔디 마운드가 있다. 표면이 부드럽게 휘어져 들어가 콘크리트와 잔디가 교차하는 부근에 사람들이 자리잡았다. 아이를 데려온 부모가 일곱 팀, 사진을 찍는 커플이 네 쌍, 혼자 무언가를 보고 있는 사람이 둘. 광장에는 일반적인 직선 계단이 거의 없다. 자하 하디드의 설계가 직각의 계단을 흘러내리는 곡면으로 바꿔 놓은 결과다. 사람들은 그 곡면 위에 자기 몸의 각도를 맞춰 앉아 있었다. 의자가 따로 없는 광장에서 사람이 어디에 앉는지를 보면, 건축가의 의도가 사용자의 몸을 통해 어떻게 번역되는지가 보인다.
이 건물은 마을을 지운 자리에 섰다
그러나 DDP가 들어선 자리는 원래 동대문운동장이었다. 1925년에 경성운동장으로 지어져 80년 가까이 야구장과 축구장으로 쓰였고, 그 곁에 노점과 풍물시장이 길게 붙어 있었다. 운동장은 2008년에 철거되었다. 노점이 대거 이주한 것은 그 이후의 일이다. 그래서 나는 DDP의 곡면 외장을 좋아하면서도, 이 자리가 그 이전에 무엇이었는지를 함께 기록해 두고 싶다. 지하 1층의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이 그 흔적을 남겨 둔 공간이다. 발굴된 한양도성 성벽 일부와 이간수문 자리가 유리관 너머로 보인다. 곡면 아래에 직선 성벽이 누워 있는 셈이다.
20대인 내가 이 곡면을 보는 방식
나는 이 건물을 처음 본 게 고등학생 때였다. 그때는 신기했고, 두 번째 와서는 좀 부담스러웠고, 오늘 세 번째로 마주 서니 그제서야 차분히 보였다. 비정형 건물에 대한 호불호와 별개로, DDP는 한 도시가 자기 자리를 어떻게 갈아엎고 다시 짓는지를 가장 큰 부피로 보여 주는 사례다. 곡면이 멋진가, 라는 질문보다 더 무거운 질문은, 이 곡면이 무엇을 지우고 섰는가, 라는 쪽이라고 나는 적어 둔다.
결론 메모
오후 5시 반, 광장 마운드 위에서 패널의 색이 한 번 더 가라앉았다. 자하 하디드의 곡면은 그 자체로 완성된 풍경이지만, 이 풍경이 무엇을 지우고 섰는지를 기억하는 한, 그 곡면은 보다 무겁게 보인다. 다음번엔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지하층부터 다시 걸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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