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오후, 광희동 중앙아시아 거리에서 — 키릴 간판 47개와 사라진 식당 네 곳
평일 오후 두 시 반,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5번 출구에서 광희동 1가 쪽 비탈을 다시 걸었다. 4년 전 처음 이 골목을 적었을 때보다 간판 수는 줄었고, 그래도 살아남은 가게의 메뉴판은 더 길어졌다. 사라지는 식당과 새로 생긴 환전소를 한자리에 적어둔다.
5번 출구에서 광희동 1가 입구까지 — 8분
오후 두 시 반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5번 출구로 나오면 마장로 쪽 인도가 한산하다. 평일 한낮의 광희동은 동대문시장의 새벽과는 다른 시간대로 흐른다. 출구에서 동쪽으로 약 250m, 천천히 걸어 8분이면 골목 입구 첫 키릴 간판이 보인다. 4년 전에는 같은 위치에 한국어와 키릴이 같이 적힌 작은 식당이 있었는데, 지금은 1층이 휴대폰 가게로 바뀌어 있다. 2층 창문에는 여전히 한 자리, ‘Самса’라고만 적힌 종이가 붙어 있다.
간판 47개 — 그 중 우즈벡어 22개, 카자흐어 8개, 러시아어 17개
광희동 1가 일대 골목 두 줄을 따라 걸으며 손에 잡히는 대로 키릴 간판을 셌다. 식당, 환전소, 슈퍼, 이미용실, 여행사까지 합쳐 47개. 이 중 우즈벡어가 22개로 가장 많고, 카자흐어 표기가 8개, 그 외 러시아어 단독 간판이 17개였다. 4년 전 메모에는 같은 구간에 64개를 적어두었으니 17개가 사라진 셈이다. 사라진 자리에는 한국어 부동산 간판, 보안업체 로고, 24시 무인 셀프 빨래방이 들어섰다.
사라진 식당 네 곳 — 작년 메모와의 대조
작년 봄에 적어둔 노트를 펴고 한 곳씩 다시 찾아봤다. 골목 안쪽 ‘Тошкент кафе’ 자리는 비어 임대 표지가 붙어 있었고, 길 건너 양고기 케밥집은 셔터가 내려진 채 ‘이전’ 안내가 한국어로만 붙어 있었다. 우즈벡 빵집 한 곳은 자리는 그대로인데 간판이 한국어 ‘OO베이커리’로 바뀌어 있었다. 가장 의외였던 건 4년 전 처음 와서 라그만을 처음 먹었던 식당 자리. 1층은 그대로 식당인데, 메뉴판에서 우즈벡 음식 이름은 사라지고 ‘양고기 칼국수’ 같은 한국어 번역만 남아 있었다.
살아남은 식당의 메뉴판 — 한국어 표기가 더 짧아졌다
그래도 골목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키릴 메뉴판이 그대로 살아 있는 식당이 다섯 곳쯤 남아 있다. 그중 두 곳에서 메뉴판을 빌려 사진을 찍었다. ‘플롭’, ‘만티’, ‘라그만’, ‘삼사’, ‘쇼르파’ 같은 단어들 옆 한국어 설명이 4년 전보다 짧아졌다. 예전에는 ‘양고기와 양파, 당근을 넣어 기름에 볶은 우즈베키스탄식 볶음밥’이라고 두 줄로 적혀 있던 자리에, 지금은 ‘양고기 볶음밥 11,000원’ 한 줄만 남아 있는 식이다. 단골이 늘면 설명이 줄어든다는 가설을, 이 골목이 작게 증명하고 있었다.
골목 끝 환전소와 1만 원 환율
골목 동쪽 끝 작은 환전소에 들어가 시세표를 봤다. 한국 돈 1만 원당 우즈벡 숨 약 96,000숨, 카자흐스탄 텡게는 약 3,650텡게로 적혀 있었다. 시세표 아래 손글씨로 ‘송금 가능, 우즈베키스탄 모든 도시’라고 한국어와 우즈벡어가 같이 적혀 있다. 4년 전 메모에는 같은 환전소가 ‘송금 8개국’이라고 적어두었으니, 송금 범위가 더 좁아지면서 깊어진 셈이다. 단순히 줄어든 게 아니라, 가장 자주 쓰는 길이 굵어진 거였다.
결론 메모
광희동 1가의 키릴 간판은 분명 4년 전보다 줄었다. 그러나 살아남은 가게들은 메뉴판이 짧아지고, 환전·송금 동선이 굵어지고, 단골이 두꺼워지는 쪽으로 깊어지고 있다. 사라지는 것을 기록한다고 자주 적어왔지만, 동시에 ‘얇게 흩어지는 대신 두꺼워지는’ 골목도 같이 적어둘 만하다. 다음 번에는 평일 저녁 일곱 시쯤 다시 와서, 같은 골목의 식사 시간 풍경을 한 번 더 세어 두려고 한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