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일 노동절 정오, 문래동 4가 철공소 골목에서 — 셔터 내린 12개와 건너편 카페의 라떼 거품
5월 1일 노동절 정오, 문래동 4가 철공소 골목을 걸었다. 셔터 내린 작업장 12개를 셌고, 같은 골목 끝에 자리한 LP카페에서 라떼 거품 위로 햇살이 떨어지는 걸 봤다. 사라지는 일터와 새로 들어온 가게 사이, 이 골목의 5월 첫 금요일을 기록한다.
문래역 7번 출구에서 시작한 정오의 그림자
문래역 7번 출구로 나오자 도림천 방향에서 미지근한 바람이 불었다. 정오 12시 7분, 휴대폰 온도계는 21도를 가리켰다. 골목 입구 콘크리트 바닥에 그림자가 짧게 떨어졌고, 그 위에 머물러 있던 비둘기 두 마리가 사람 발자국을 따라 자리를 옮겼다. 노동절이라고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골목 초입에서부터 평소와 다른 정적이 들어왔다. 평일 오전이면 쇠 깎는 소리, 그라인더 돌아가는 소리, 산소절단기의 짧은 폭발음이 번갈아 들려야 할 시간이었다. 오늘은 그 자리를 비둘기 발걸음과 멀리 도림천 너머의 자전거 벨소리가 채우고 있었다.
좁은 골목, 셔터 내린 12개의 작업장
문래동 4가 일대는 폭이 넓어야 4미터, 좁은 곳은 2.5미터쯤 되는 골목들이 격자처럼 얽혀 있다. 한쪽 골목을 따라 250미터쯤 걸으며 셔터 내린 가게를 셌다. 정확히 열두 개. ‘○○정밀’, ‘○○산업’, ‘○○공업사’ 같은 두 글자짜리 상호가 붙은 회색 셔터들이 연이어 닫혀 있었다. 그중 일곱 곳은 CLOSED 종이가 아닌 빨간 매직으로 직접 쓴 ‘5월 1일 휴무’가 붙어 있었다. 글씨는 굵고 짧았다. 미사여구 없이 날짜만 적힌 그 한 줄이, 이 동네 사람들의 노동절 인사처럼 읽혔다.
건너편 LP카페와 라떼 한 잔의 온도
골목 끝, 셔터 내린 작업장 바로 맞은편에 갈색 차양이 달린 LP카페가 있었다. 카운터 위 온도계는 섭씨 22도를 표시했고, 라떼 잔 표면의 거품 위로 12시 24분의 햇살이 6도쯤 비스듬히 떨어졌다. 잔 가격은 5,500원. 공간 안에는 이 동네 토박이로 보이는 60대 남성과 노트북을 펼친 30대 여성이 사선으로 앉아 있었다. 음악은 70년대 한국 포크가 낮게 흘렀다. 같은 골목 안에서 셔터 내린 작업장과 영업 중인 카페가 마주 보고 있는 풍경은 사실 새롭지 않다. 다만 노동절 정오에 그 마주봄을 다시 보면, 무게의 분배가 평소와 달라 보인다.
남아 있는 글자들 — 문래동 4가의 간판 아카이브
골목을 천천히 되짚으며 간판 다섯 개만 따로 옮겨 적었다. ‘대성정밀공업사’, ‘한일기계’, ‘동아연마’, ‘신광스텐레스’, ‘○○특수강(앞 두 글자 페인트 벗겨짐)’. 글자들의 폰트는 1980~90년대 출력 글꼴 그대로다. 어떤 간판은 페인트가 벗겨져 회색 바탕만 남았고, 또 어떤 간판은 새로 칠한 듯 검정 글자가 선명했다. 같은 골목 안에서 떠난 사람과 남은 사람의 시간이 글자 두께로 갈라져 있었다. 이 두께는 사진에는 잘 잡히지 않고, 손가락으로 쓸어봐야 알 수 있다.
도시는 어떤 자리에서부터 옷을 갈아입는가
문래동 4가는 10년 넘게 ‘예술촌’이라는 이름과 ‘재정비촉진지구’라는 이름을 동시에 짊어진 동네다. 작업복을 입은 사람과 스튜디오 열쇠를 든 사람이 같은 골목에서 서로를 비껴간다. 노동절 휴무 종이가 붙은 셔터 옆에 ‘오늘도 영업합니다’라고 손글씨로 쓴 카페 입간판이 함께 서 있다. 사라질 가게가 어디인지, 남을 사람이 누구인지, 골목 한복판에서는 단정할 수 없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이 골목에서 가장 먼저 옷을 갈아입는 건 셔터의 색이 아니라, 그 셔터를 매일 여닫는 사람의 얼굴이라는 것.
메모 — 다음에 다시 와 봐야 할 것들
오늘은 정오 한 시간만 머물렀으니 다음 방문에서는 새벽 7시쯤, 셔터가 막 올라가는 시간을 보고 싶다. 그라인더 첫 소리가 어떻게 골목을 깨우는지. 카페 점주가 출근 전 같은 길을 어떤 표정으로 지나는지. 5월 1일의 정적과 5월 2일의 소음이 같은 골목에서 어떻게 이어지는지. 이 동네의 온전한 하루는 한 번쯤 통째로 기록해 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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