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새벽 6시 12분, 4월의 마지막 골목 한 바퀴 — 한지후의 일기 12
4월의 마지막 목요일 새벽, 평소보다 일찍 깨서 우리 동네 골목을 한 바퀴 걸었다. 한 달 동안 서울 곳곳을 다닌 끝에, 마지막 새벽은 가장 익숙한 골목에서 보내고 싶었다. 6시 12분에 현관을 나섰고, 7시 04분에 다시 들어왔다. 그 52분 동안 본 것을 적는다.
6시 12분, 현관 앞
나는 신발을 신고 나오면서 휴대전화 시계를 봤다. 6시 12분. 4월의 마지막 목요일. 어제 일찍 잠든 덕에 알람보다 18분 먼저 눈이 떠졌고, 다시 누우면 출근까지 못 일어날 것 같아서 그냥 나왔다. 현관문을 닫는 소리가 평소보다 크게 들렸다. 복도 형광등은 아직 노란 야간 조명이었고, 1층 우편함 앞 매트는 누군가가 어제 미리 털어놓았는지 비스듬히 놓여 있었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코끝에 묵직한 공기가 닿았다. 4월 말의 새벽 공기는 차갑지 않다. 차가움 대신 무거움이다. 봄 끝과 여름 초입 사이에 끼어 있는 공기는 마시면 폐 안쪽에 잠깐 머문다. 휴대전화 날씨 앱은 14도라고 했지만 체감은 그보다 한두 도 낮았다.
골목 첫 모퉁이까지 걸린 시간
우리 집에서 큰길로 나가기까지 걸린 시간은 정확히 4분 48초였다. 골목 폭은 두 사람이 어깨를 비키며 지나갈 정도. 양쪽으로 1980년대에 지어진 4층짜리 다세대주택이 줄지어 서 있고, 외벽 타일은 초록색과 분홍색 두 색깔이 번갈아 박혀 있다. 작년 봄에 한 집이 외벽 일부를 새 페인트로 덮었는데, 새로 칠한 베이지색이 나머지 타일과 묘하게 어긋나 있다. 그 어긋남을 볼 때마다 도시읽기 라벨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우리 동네는 글로 잘 쓰지 않는다.
모퉁이를 돌자 24시간 편의점 앞에 노란 박스가 일곱 개 쌓여 있었다. 새벽 배송 차량이 막 떠난 직후였다. 박스 위에 적힌 시간 도장은 5시 47분. 점주가 곧 박스를 들고 들어갈 것이다. 나는 그 박스 더미 옆을 지나면서, 한 달 전쯤 이 자리에서 비슷한 풍경을 본 기억을 떠올렸다.
새벽 6시 30분, 골목 안쪽
큰길에서 다시 다른 골목으로 들어갔다. 이 골목은 차 한 대만 들어올 수 있는 폭이고, 양쪽에는 오래된 1층 집과 2~3층짜리 빨간 벽돌 다세대가 섞여 있다. 6시 30분쯤 한 집의 부엌 창문에서 흰 김이 올라왔다. 누군가 국을 끓이고 있었다. 김이 창틀 위로 천천히 올라가다가 아래쪽으로 흩어졌다. 그 집 앞을 지나면서 미역국 냄새가 났다. 4월 말이지만 누군가의 생일이거나, 그냥 평일 아침 미역국이거나.
골목 끝에는 작은 공터가 있고, 거기 평상에 할아버지 두 분이 앉아 계셨다. 한 분은 회색 점퍼, 한 분은 갈색 카디건. 두 분 모두 손에 종이컵을 들고 있었고, 평상 가운데에 자판기 커피 봉지가 놓여 있었다. 내가 지나가자 한 분이 고개를 살짝 끄덕여 주셨다. 나는 인사를 받고 지나갔다. 이 평상은 작년 가을에 누가 새로 깔아 둔 것이다. 누가 깔았는지 나는 모르지만, 누군가가 매일 아침 거기서 커피를 마신다는 사실은 안다.
한 달 동안 걸은 길의 잔상
걸으면서 한 달 동안 다닌 골목들이 머릿속에서 차례로 지나갔다. 성수동 연무장길, 후암동 108계단, 영등포 대선제분 유리블록 담장, 익선동 한옥 사이 좁은 길, 광희동 중앙아시아 거리. 각자 다른 도시 같지만, 새벽에 우리 동네 골목을 걷고 있는 지금 보니 닮은 점이 있다. 모든 골목에는 누군가가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자리에 앉아 있다. 후암동 평상의 할아버지, 광희동 키릴 간판 식당의 여주인, 영등포 공장 지대 새벽 출근 트럭 기사. 그리고 우리 동네 평상의 두 분.
이 사람들은 도시 가이드북에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이 사람들이 매일 같은 자리에 있어서 골목이 골목으로 유지된다. 외벽이 새로 칠해지든, 한 집이 헐리고 신축 빌라가 들어서든, 같은 자리에 같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한 동네를 한 동네로 묶는다. 한 달 동안 다른 동네들을 다니면서 본 것을 굳이 정리하자면 이 한 줄이다.
아침 7시, 우리 집 앞
다시 우리 집 골목으로 돌아왔다. 해가 동쪽 하늘 절반쯤 올라와 있었다. 6시 12분에 나갈 때는 어두웠는데, 7시 04분에 들어올 때는 햇빛이 골목 한쪽 벽을 비스듬히 비추고 있었다. 그 벽에 1층 집 화분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있었다. 길이는 어림잡아 2.4미터쯤. 4월 말의 새벽 그림자는 길고 얇다.
현관 앞에서 신발을 벗기 전에 한 번 뒤돌아 봤다. 골목 끝까지 시야가 트여 있었고, 그 끝에 큰길 가로등이 막 꺼지는 중이었다. 가로등이 꺼지는 정확한 순간을 본 것은 오랜만이었다.
5월의 첫 산책 메모
내일이면 5월이다. 5월에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동네 한 곳을 새로 걸어보려고 한다. 후보는 셋이다. 응봉동 산기슭 주택가, 사당동 까치산 아래 골목, 그리고 합정에서 망원으로 넘어가는 한강 옆 작은 길. 한 군데 가서 두 시간 정도 걷고, 그 자리에서 본 것 위주로 글을 쓸 생각이다.
한 달 동안 외부 동네만 다녔다는 사실을 오늘에야 알았다. 정작 우리 동네는 한 번도 일기로 쓴 적이 없다. 4월의 마지막 새벽 산책이 그것을 알려주었다. 5월에는 한 주에 한 번씩 우리 동네 골목도 걸어볼 것 같다.
오늘의 메모: 새벽 6시 12분에 나가서 7시 04분에 들어왔다. 거리 약 2.1킬로미터. 지나친 사람 일곱 명. 본 가로등 꺼지는 순간 한 번. 미역국 냄새 한 번. 4월의 마지막 목요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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