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전 7시 40분, 청계천 광교에서 모전교까지 — 한지후의 일기 07: 비 그친 다리 셋과 백로 한 마리, 그리고 펼쳐지던 신문 두 장

일요일 새벽 비가 그친 청계천을 광교에서 거꾸로 거슬러 모전교까지 갔다가 다시 광교로 돌아오는 약 600미터를 22분쯤 걸었다. 다리 위에 발을 디딘 횟수는 다섯 번, 모전교 직전에서 백로 한 마리가 5분간 멈춰 있었다. 일찍 문을 연 신문 매점 두 곳에서 종이 신문이 펼쳐지던 소리도 같이 적어둔다.

1. 7시 40분, 광교 위에서 — 비 끝난 자리의 색

광교 위에 섰을 때 시계는 7시 40분이었다. 비는 새벽 세 시쯤 그친 모양이라, 다리 위 보도 블록은 아직 짙은 회색이었다. 마른 자리는 아주 좁게 가운데 한 줄만 나 있었다. 사람들이 그 한 줄로만 걸어서 닦여 있었던 셈이다. 나는 그 위로 걷지 않고, 일부러 옆 젖은 면을 골라 걸었다. 운동화 앞코가 0.5센티쯤 어두워지는 게 보였다. 이런 사소한 색 차이가, 일요일 새벽 청계천을 산책하는 가장 큰 보람 같다고 적어둔다.

2. 광교에서 모전교까지, 다리 위에 다섯 번 서다

청계천 상류 쪽 첫 다리 셋은 모전교, 광통교, 광교 순서다. 청계광장에서 가까운 순으로 모전교가 가장 먼저고, 이어 광통교, 그다음이 광교다. 오늘은 광교 위에서 시작해 거꾸로 거슬러 광통교를 지나 모전교 앞까지 올라갔다가, 같은 길을 되짚어 광교로 돌아왔다. 다리 위에 발을 디딘 순서로 적자면 광교 → 광통교 → 모전교 → 광통교 → 광교, 다섯 번이다. 거리로는 편도 약 300미터, 왕복 약 600미터. 시간은 22분이 걸렸다. 보폭이 평소보다 5센티쯤 짧았다는 뜻이다. 비 직후라 돌계단이 미끄러워서 그랬다.

3. 모전교 직전, 백로 한 마리

모전교 진입 직전 콘크리트 보 위에 백로 한 마리가 서 있었다. 다리 길이로 가늠하면 키가 80센티 남짓, 몸에서 다리까지 흰색이 거의 끊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부리 끝이 물에서 5센티쯤 떨어진 위치에 고정되어 있었고, 5분 동안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잉어 한 마리가 보 아래 천천히 도는 게 다리 위에서도 보였다. 백로의 시선은 그 잉어가 아니라, 잉어가 만들어 놓은 흙물 끝선에 닿아 있는 듯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없었다. 새벽 청계천에서 백로를 보는 일이 흔해진 모양이다. 나는 다리 손잡이에 팔꿈치를 대고 5분을 같이 서 있었다.

4. 매점 두 곳, 펼쳐지던 신문

광통교 위로 올라오는 길에 매점 두 곳이 셔터를 반쯤 올리고 있었다. 한 곳은 종이 신문을 진열대 가장 앞쪽에 펴 두는 중이었다. 1면 헤드라인 글자 크기가 손가락 두 마디 정도, 사진은 흑백이었다. 다른 매점은 아예 안 쪽 깊이까지 신문을 쌓아 두고 있었고, 점원이 새 묶음 끈을 가위 한 번에 끊어내는 소리가 짧게 났다. 종이 신문을 산 사람이 같은 5분 안에 두 명이었다. 한 명은 현금으로, 한 명은 카드로 계산했다. 이 풍경이 5년 뒤에도 그대로일지 잠시 생각하다 그만뒀다.

5. 무지개다리 자리, 광통교의 돌이음

광통교는 조선 시대 무지개다리(虹橋) 형식이 일부 남아 있는 자리다. 다리 아래 석축의 돌 이음을 한참 들여다봤다. 큰 돌 사이를 채운 작은 쐐기돌이 손가락 두 마디 너비로 들어가 있는데, 비 직후라 거기에 물이 가득 고여 표면이 거울처럼 매끈했다. 위에서 다리 아치 안쪽이 거꾸로 비치는 짧은 순간이 있었다. 나는 이걸 사진보다 글로 먼저 적어 두기로 했다. 사진이 가질 수 없는 5초 동안의 빛이었다.

6. 결론 메모

일요일 새벽 청계천은 평일과 다르게 사람보다 새와 돌과 종이가 먼저 보인다. 다리 셋, 백로 한 마리, 신문 두 장, 그리고 5초의 거울. 이 정도가 22분짜리 산책의 정량이라면 충분히 남는 장사 같다. 다음 일요일은 좀 더 일찍, 7시 전에 한 번 더 같은 코스를 걷고, 같은 백로가 같은 자리에 있는지 확인해 보고 싶다. 사라질 풍경을 미리 적어 두는 일이, 결국 내 일기의 본업이라는 걸 다시 메모해 둔다.

— 한지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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