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오전 8시 50분, 시청역 4번 출구에서 — 출근하는 20대 남성 재킷 6벌의 기록

4월 말 서울의 월요일 아침은 묘하게 어정쩡하다. 외투를 벗자니 바람이 쌀쌀하고, 다시 걸치자니 한낮이 부담스럽다. 나는 시청역 4번 출구 옆 가로수 밑에 서서 30분간 출근하는 또래 남성들의 어깨를 봤다. 6벌의 재킷이 머리에 남았다.

8시 47분, 첫 번째 — 라이트 그레이 와이드 셔츠 자켓

짧게 자른 머리에 라이트 그레이 와이드 셔츠 자켓. 안은 흰 티 한 장, 아래는 검정 와이드 슬랙스였다. 어깨선이 떨어지는 정도가 절묘했고 소매 단이 손등 첫 마디까지 살짝 가렸다. 어제까지는 트렌치였는데 오늘 갈아입은 사람의 표정이었다. 가방은 검정 토트, 신발은 굽이 거의 없는 흰 스니커즈. 4월 말의 가장 안전한 답 같았다.

8시 51분, 두 번째 — 네이비 블루종에 베이지 라운드 니트

네이비 나일론 블루종 안에 베이지 라운드넥 니트, 아래는 진청 데님. 12도 안팎의 아침에 가장 무난한 조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매 끝이 살짝 닳아 있어 작년부터 입은 옷처럼 보였다. 새것이 아닌 옷이 주는 신호가 좋았다. 출근 가방 대신 백팩이 어깨에 가볍게 걸려 있었고 발목엔 검정 양말이 짧게 보였다.

8시 54분, 세 번째 — 마지막 트렌치

이 사람만 트렌치였다. 베이지보다 한 톤 어두운 카키. 길이는 무릎 위 5cm쯤이라 걷는 폭이 자유로웠다. 시즌이 끝나가는 옷인데 본인은 끝까지 입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안에는 흰 셔츠와 회색 면바지, 신발은 갈색 더비. 옷의 합이 단단해서 오히려 트렌치가 늦봄까지 살아남는 이유를 보여주는 차림이었다.

8시 58분, 네 번째 — 검정 싱글 라이더

광이 살짝 죽은 검정 싱글 라이더. 카프스킨 같았다. 안에는 회색 무지 후드, 후드 끈은 묶지 않고 풀어둔 채였다. 라이더는 4월 말이면 두꺼우면 더운데, 가죽이 얇아서 가능한 조합이었다. 아래는 검정 슬림 슬랙스, 신발은 닳은 화이트 스니커즈. 이 사람만 등에 가방이 없었고 손에는 텀블러 하나가 들려 있었다.

9시 1분, 다섯 번째 — 라이트 베이지 가디건

오늘 본 유일한 가디건이었다. 굵은 핏의 라이트 베이지 가디건에 흰 티, 회색 슬랙스, 흰 스니커즈. 아침 햇살이 출구를 비스듬히 들어와서 가디건의 결을 잘 받았다. 봄 가디건은 아직도 어색하다는 인상이 있는데, 이 사람은 셔츠 자켓 자리를 가디건으로 대체한 모양새였다. 6명 중 가장 따뜻해 보였고 동시에 가장 가벼워 보였다.

9시 4분, 여섯 번째 — 후드집업과 그래픽 티

검정 후드집업 안에 흰 그래픽 티 한 장. 아래는 그레이 스웻팬츠, 신발은 회색 러닝화. 캐주얼이 아니라 거의 출근복에 가까웠는데, 동선이 시청 뒤편 IT 빌딩 쪽이라 어울렸다. 4월 말이라 후드 안 면적이 답답하지 않은 시즌, 그 경계의 마지막 즈음을 본 느낌이다. 가방은 메신저백 한 개.

30분이 정리해준 4월 말의 답

6명 중 4명이 가벼운 자켓류였고, 1명이 트렌치, 1명이 후드. 셔츠 자켓·블루종·가디건이 같은 자리를 두고 경합 중인 시즌이라는 게 분명히 보였다. 검정과 베이지, 회색이 압도적이었고 채도 있는 색은 한 명도 없었다. 신발은 6명 중 5명이 흰색 계열, 가방은 토트와 백팩이 반반. 출근 동선이 광화문 쪽으로 갈수록 셔츠 자켓이 늘었고, 시청 뒤편으로 빠질수록 후드가 늘었다. 동선이 옷을 정한다.

다음 주 같은 자리, 같은 시간

한 주 더 지나면 트렌치는 사라지고, 가디건과 셔츠 자켓이 절반쯤 자리를 잡을 것 같다. 5월 첫 주 월요일 같은 자리에 다시 서기로 메모해뒀다. 같은 시간 같은 출구는 도시의 옷 시즌을 가장 정직하게 보여주는 정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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