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오전 9시 40분, 충무로4가 인쇄골목에서 — 사라지는 활판과 잉크 냄새를 따라 35분

충무로역 8번 출구에서 인현동 골목으로 들어가면 아직도 인쇄소 간판이 100개 가까이 붙어 있다. 월요일 오전, 셔터가 반쯤 올라간 가게들과 활판 글자판이 남은 한 칸을 천천히 걸으며 적었다.

0. 들어가며 — 인현동을 다시 가는 이유

나는 충무로를 지하철로만 지나가는 곳으로 두었던 적이 많다. 4호선과 3호선이 교차하는 환승역, 명동·남산으로 가는 통로 정도. 그런데 지난주 평일 점심에 인현동1가의 한 인쇄소 간판이 떼어져 있는 걸 보고 이 골목 전체를 한 번 정리해 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늘 오전 9시 40분쯤 8번 출구에서 출발했고, 약 35분 동안 인현동1가와 충무로4가 사이를 한 바퀴 돌며 본 것을 기록한다.

1. 8번 출구에서 인현동1가까지 — 간판이 먼저 말을 건다

8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오른쪽으로 인쇄소 간판이 줄지어 보인다. 내가 헤아린 것만 첫 50m 안에 19개. 활판인쇄, 옵셋, 마스타, 도무송, 박, 코팅 같은 단어가 1.5m × 0.4m쯤 되는 함석 간판에 빨강·파랑으로 인쇄돼 있다. 글자체가 1980~90년대 견출명조에 가깝고, 어떤 간판은 글자 가장자리가 녹슬어 윤곽선이 두 겹으로 번져 있다. 이 골목은 간판이 가게보다 먼저 손님을 맞이하는 구조다.

2. 셔터가 반쯤 올라간 가게들 — 월요일의 리듬

월요일 오전이라 절반쯤은 셔터가 닫혀 있고, 열린 가게는 대개 셔터를 1m쯤만 올려둔 상태였다. 안쪽으로 형광등 하나가 켜져 있고, 50대 후반쯤 보이는 사장님이 종이 더미를 옮기거나 인쇄기 앞에 앉아 신문을 보고 있다. 거리에서 보이는 인쇄기는 대부분 옵셋이고, 한 가게에는 활판 활자판이 벽 한 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가로 약 2.4m, 세로 약 1.8m. 활자가 모두 거꾸로 식자돼 있어 글자 윤곽이 거울처럼 뒤집혀 있다. 그 앞 좁은 작업대 위에는 활자 핀셋과 둥근 자석 트레이가 놓여 있었고, 트레이 안에는 6호·8호로 보이는 작은 활자 수십 개가 글자 면을 위로 향한 채 정리되어 있었다. 사장님은 안쪽에서 라디오 대신 KBS 1AM 뉴스 같은 말소리를 작게 틀어두었고, 인쇄기 옆 벽시계는 9시 47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3. 잉크 냄새와 종이 먼지 — 골목의 공기

인쇄골목의 공기는 다른 동네와 분명히 다르다. 잉크 냄새는 휘발성 시너처럼 매캐한 것이 아니라, 종이 위에 마른 잉크가 다시 미세하게 올라오는 식의 냄새다. 코끝이 찡하기보다는 입천장 안쪽이 살짝 무거워지는 느낌. 거기에 종이 먼지가 섞이면 햇빛이 비스듬히 들어오는 자리에서 공기가 약간 뿌옇게 보인다. 오늘 골목 한가운데서 잰 체감 기온은 섭씨 16도쯤, 바람은 거의 없었고, 인쇄기 돌아가는 소리는 평균 두 가게 건너 한 곳에서 들렸다.

4. 사라진 자리 — 떼어진 간판과 빈 셔터 다섯

35분 동안 골목을 돌며 "지난번엔 여기 인쇄소가 있었던 자리"가 다섯 곳 있었다. 두 곳은 셔터에 임대 문의 번호만 붙어 있고, 한 곳은 셔터를 떼어내고 통유리로 바꾸었으며 안쪽이 비어 있었다. 두 곳은 카페 공사 중이었고, 한 곳은 가벽으로 막아놓고 "철거 후 신축 예정"이라고 적힌 작은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인쇄골목이 사라지는 속도가 한 달에 한두 칸씩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오늘 적은 다섯 곳 중 두 곳은 이름을 메모해 두었다. 다음 달에 같은 자리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할 생각이다.

5. 충무로4가 안쪽 — 종이가게와 출판사 사이

인현동에서 충무로4가 쪽으로 한 블록 더 들어가면 인쇄소 비중이 줄고, 종이 도매상과 1인 출판사가 섞여 나타난다. 종이가게 입구에는 A4·A3 묶음 종이가 발목 높이로 쌓여 있고, 가격표가 흰 종이에 매직으로 적혀 있다. 어떤 가게는 종이 결을 보여주려는 듯 한 묶음을 반쯤 풀어두었고, 그 위로 햇빛이 비스듬히 떨어지면서 종이 단면이 결결이 빛났다. 한 출판사 문 옆에는 신간 표지를 코팅해 붙여 두었는데, 인쇄골목과 출판사가 한 골목 안에서 손이 닿는 거리에 있다는 점이 이 동네의 마지막 강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동선이 깨지면, 인쇄골목은 단순히 "낡은 가게가 사라지는 곳"이 아니라 출판이라는 한 산업의 작업 흐름 한 마디가 끊기는 자리가 된다. 인쇄와 종이와 출판이 한 골목 안에 모여 있다는 것은 도시의 산업 지리에서 흔치 않은 형태다.

6. 다음에 적어둘 메모 두 가지

한 가지는 활판 활자판을 벽에 걸어둔 그 가게의 사장님께 다음 평일에 양해를 구해 사진을 한 장 남겨두는 것. 또 한 가지는 사라진 다섯 칸의 위치를 지도에 점으로 찍어 두는 일이다. 두 점, 세 점이 모이면 그 자체로 골목의 변화 속도를 보여주는 작은 도면이 된다. 이 두 가지는 다음 산책에서 가져올 것. 가능하다면 같은 자리에서 같은 시간대(평일 오전 9시 40분 전후)에 한 달 간격으로 사진과 메모를 남겨, 변화의 속도가 체감보다 빠른지 느린지 한 해 동안 비교해보고 싶다.

결론 메모

인쇄골목은 한 달 단위로 한두 칸씩 줄어들고 있다. 월 단위 관찰이 필요하다. 활판 활자판이 남은 가게는 골목 안쪽에만 있고 큰길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인쇄와 출판이 같은 골목 안에 있는 동선이, 이 동네가 가진 마지막 산업적 의미다.

— 한지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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