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 1시, 매봉산 자락 문화비축기지 — 41년 잠겨 있던 탱크 여섯 자리에서 23분
토요일 오후 1시 4분, 6호선 월드컵경기장역 쪽으로 나와 증산로를 끼고 매봉산 자락까지 약 8분을 걸었다. 1976년에 자리 잡아 2017년에야 문이 열린 옛 마포석유비축기지 — 지금의 문화비축기지 T1부터 T6까지 한 바퀴를 돌며 23분을 머물렀다. 사라질 뻔한 산업시설이 어떤 방식으로 다시 열리는지를 한지후의 시선으로 적어둔다.
월드컵경기장역에서 증산로를 따라 매봉산 자락까지
월드컵경기장역에서 매봉산 쪽 출구로 나오면 한강 방향으로 매봉산이 짧게 솟아 있다. 5월 2일 토요일 오후 1시 4분, 기온은 22도 부근, 햇빛은 거의 직각으로 떨어졌다. 증산로를 끼고 동쪽으로 약 600미터 — 가벼운 걸음으로 8분이 걸렸다. 입구에 닿았을 때 시계는 1시 12분, 매표소가 따로 없는 입구를 지나 첫 번째 표지판 앞에 멈췄다. 표지판에는 "문화비축기지 1976—2017"이라는 두 개의 연도가 한 줄로 적혀 있었다. 한 시설이 자리를 잡고 다시 열리기까지 41년이 걸렸다는 사실이, 두 숫자 사이의 짧은 줄표 하나에 담겨 있었다.
T1 유리 파빌리온 — 41년 동안 닫혀 있던 외피의 안쪽
오른쪽으로 돌아 가장 먼저 닿는 자리가 T1이다. 본래는 휘발유 보관 탱크였다. 탱크의 위쪽 절반을 잘라내고 그 자리에 유리로 된 파빌리온을 얹어 두었다. 지름은 눈대중으로 약 15미터, 유리 박스 천장 높이는 약 5미터쯤. 콘크리트 옹벽이 둥글게 한 바퀴를 둘러 서 있고, 그 안쪽에 유리 박스 한 채가 들어앉아 있다. 41년 동안 바깥 햇빛을 본 적이 없던 옹벽 안쪽 면에 오후 1시의 빛이 직접 떨어졌다. 옹벽 콘크리트의 두께는 한눈에도 두꺼워 보였다 — 손바닥 두 개가 들어갈 만한 깊이의 음영이 옹벽 표면에 길게 남아 있었다. 잠겨 있던 표면이 어떤 색을 입고 있었는지 보려고 옹벽을 따라 한 바퀴를 천천히 돌았다. 옅은 회색 위로 시간이 만들어낸 얇은 갈색이 군데군데 깔려 있었다.
T2 야외공연장 — 탱크가 비워진 자리의 원형 무대
T1에서 동쪽으로 약 80미터를 걸어가면 T2가 보인다. 본래 탱크의 윗부분을 모두 들어내고, 지면을 한 단 낮춰 원형 객석을 깎아둔 모습이다. 지름은 눈대중으로 약 30미터, 객석 단은 일곱 단 정도. 원형 객석의 가장 낮은 자리에 무대가 놓여 있고, 객석의 가장 높은 자리에서 보면 한쪽으로 매봉산 능선이 그대로 따라 들어왔다. 토요일 오후 1시 21분, 객석에 앉아 있는 사람은 다섯 명이었다. 한 가족이 가운데 단에 앉아 있었고, 두 사람은 가장 위쪽 단에 등을 기대고 누워 있었다. 무대는 비어 있었다. 비어 있는 원형 무대 한가운데로 햇빛이 정확히 둥근 원의 중심에 떨어지고 있었다.
T6 커뮤니티센터 — T1과 T2의 철판을 다시 짠 외벽
T2 뒤편으로 한 바퀴를 더 돌면 T6 — 가장 새 건물이 보인다. 본래의 비축기지에는 없던 건물이다. T1과 T2를 다시 손볼 때 잘라낸 철판을 그대로 이어 붙여 외벽으로 사용했다고 안내판에 적혀 있었다. 외벽에 가까이 다가가 보면 철판 한 장 한 장의 두께가 조금씩 다르다는 것이 손에 닿는다. 어떤 자리는 페인트가 거의 다 벗겨져 갈색에 가까운 산화 표면이 그대로 드러나 있고, 어떤 자리는 옅은 회녹색 페인트가 절반쯤 남아 있다. 1976년에 칠해진 페인트와 2017년에 다시 봉합된 자리가 한 면 위에 함께 보였다. 철판과 철판의 이음매에는 굵은 용접 비드가 손가락 두 마디 굵기로 솟아 있었다. 41년 동안 휘발유와 등유와 경유를 견딘 두 탱크의 외피가, 새 건물의 한 면을 짜는 재료가 된 셈이다.
T3 원형 보존 — 옹벽만 남기고 비워둔 자리
T6에서 다시 매봉산 자락 쪽으로 두 길을 더 들어가면 T3이 보인다. 여섯 탱크 중 손을 가장 적게 댄 자리다. 탱크 본체는 그대로 두고, 옹벽 안쪽 공간을 거의 비워두었다. 지름은 눈대중으로 약 25미터. 안쪽으로 한 발을 들여놓는 순간, 봄날 오후 1시인데도 그늘의 톤이 한 단 짙어졌다. 머리 위로 둥근 옹벽 끝이 하늘을 정확히 둥근 원으로 잘라내고 있었다. 그 둥근 하늘 안쪽으로 매봉산 위에서 떨어진 마른 잎 한 장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비워둔 옹벽 한 채가 그대로 한 채의 건축으로 서 있는 자리였다.
한지후의 결론 메모: 잠겨 있던 자리가 열리는 방식
건축산책 메모는 두 줄이면 된다. 첫째, 41년 동안 닫혀 있던 콘크리트 옹벽 여섯 채는 그 자체가 이미 한 채의 건축이었다 — 손을 덜 댄 T3에서 그 사실이 가장 강하게 보였다. 둘째, 사라질 뻔한 산업시설은 외피와 흔적을 그대로 두는 방식으로 가장 잘 다시 열린다. T6 외벽의 철판 이음매에서 그 결정의 이유가 손에 닿았다. 5월 2일 토요일 오후 1시 35분, 매봉산 자락 옆 여섯 자리는 그날 그대로 그 자리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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