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현1구역 좁은 골목 일곱, AI 셋이 그린 2031년 — 화요일 오후 한 시간
나는 5월 5일 화요일 오후 2시쯤 마포구 아현동 1구역을 한 시간 걸었다. 좁은 골목 일곱을 사진과 메모로 남기고, 같은 날 저녁 ChatGPT·제미나이·클로드 셋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5년 뒤 이 자리에 무엇이 있을까. 셋의 답을 사람의 눈이 본 디테일과 나란히 적어둔다.
왜 아현1구역인가 — 사라진다는 말을 너무 자주 들었다
아현동 1구역은 충정로역 4번 출구에서 북쪽으로 직선 350미터쯤이면 닿는다. 인터넷 지도에서 재개발 정비구역 경계가 굵게 칠해진 곳, 그 안쪽이다. 나는 작년부터 이 동네를 네 번 다녀왔다. 처음 갔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골목 폭이었다. 가장 좁은 골목은 양손을 벌리면 손끝이 양쪽 담을 동시에 짚을 수 있을 정도. 어림 1.4미터쯤이다. 그런 골목이 한 구역 안에 일곱 개가 남아 있다. 정확히 말하면, 이번 답사에서 일곱 개를 셌다. 다음에 가면 몇 개일지 모르겠다.
한 시간 동안 걸은 일곱 골목 — 메모와 시간
오후 2시 12분, 첫 번째 골목은 아현초등학교 뒤편이었다. 시멘트 담장 위에 깨진 유리 조각을 박아 둔 자리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1980년대식 도난 방지. 두 번째는 그 골목에서 동쪽으로 두 집 건너. 빨간 벽돌 2층 다세대 사이로 폭 1.3미터 정도. 이 골목 끝에 외등 하나가 살아 있었다. 시간으로는 2시 31분, 햇빛이 외등 갓 위에 비스듬히 닿아 있었다. 셋째 골목은 바닥이 검정 아스팔트가 아니라 짙은 회색 시멘트. 양쪽 담 높이가 달랐고, 한쪽 담 위에 화분 다섯 개가 줄지어 있었다. 다육이 두 개, 빈 화분 셋. 넷째와 다섯째 골목은 한 블록 안에서 거의 평행으로 뻗어 있었다. 폭은 약 1.6미터와 1.8미터. 여섯째는 막다른 골목, 끝에 파란색 철문 한 짝이 비뚤게 닫혀 있었다. 일곱째는 가장 길었다. 직선으로 약 47걸음, 한 걸음을 60센티로 잡으면 28미터쯤이다. 끝까지 걸어가는 동안 사람을 두 명 마주쳤다. 한 사람은 수건을 어깨에 두른 60대 남자, 다른 한 사람은 카트를 끌고 가는 70대쯤 된 여자였다. 둘 다 나를 흘끗 보고 지나갔다.
AI 셋에게 던진 같은 질문 — 프롬프트 그대로
그날 저녁 책상 앞에서 셋에게 같은 문장을 붙여 넣었다. 한 글자도 바꾸지 않았다. "마포구 아현동 1구역, 충정로역 4번 출구 북쪽 350미터 일대. 좁은 골목 일곱 개가 남아 있는 상태. 2031년 5월에 같은 자리에 갔을 때 가장 가능성 높은 풍경 세 가지를 한국어로, 각 두 문장 이내로 적어 달라. 추측이라는 말은 빼고."
셋의 답이 갈린 지점 — 공통점과 차이
공통점은 분명했다. 셋 다 첫 번째로 "고층 아파트 단지의 외부 마감 공사가 끝나가는 풍경"을 적었다. 단지 이름까지 짚은 건 클로드뿐이었고, ChatGPT는 동수와 층수를, 제미나이는 단지 입구의 상가 동선을 묘사했다. 두 번째 답은 셋이 갈렸다. ChatGPT는 단지 내부의 보행로와 어린이놀이터 위치를 자세히 적었다. 제미나이는 충정로 쪽 지하철 출구가 새로 만들어지거나 확장될 가능성을 짚었다. 클로드는 단지 외곽의 카페와 베이커리 입점을 그렸다. 세 번째 답은 더 갈렸다. ChatGPT는 인근 학교의 학군 변화, 제미나이는 임대아파트 동의 위치, 클로드는 골목 흔적이 단지 안 산책로 한 구간에 모자이크 보도블록으로 살아남는 그림을 적었다. 마지막 답이 가장 인상적이었지만 가장 의심스럽기도 했다.
사람의 눈이 잡은 디테일, AI가 놓친 것
셋 모두 놓친 것이 있다. 화분 다섯 개가 놓인 담 위가 5년 뒤 어떻게 될지에 대한 답은 어디에도 없었다. 외등 갓에 비스듬히 닿던 햇빛도, 폭 1.3미터 골목에 떨어진 담배꽁초 두 개도, 70대 여자의 카트 바퀴가 시멘트 바닥을 끌고 가던 소리도, 셋의 문장 안에 없었다. 당연하다. 내가 그것을 묻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게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AI는 평균과 통계, 도시계획 보고서의 결과물을 잘 그린다. 골목 끝의 외등이 얼마나 더 켜질지는 그릴 수 없다. 그건 내가 직접 가서 셀 일이다.
5년 뒤 같은 자리에서 다시 걸으려면
2031년 5월에 다시 와서 같은 일곱 골목을 찾을 수 있을까. 못 찾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글에 좌표 대신 걸음 수를, 사진 대신 폭과 시간을 적어 둔다. 외등은 켜져 있었고, 화분은 다섯 개였고, 담배꽁초는 두 개였다. 이 숫자들이 5년 뒤 어떤 평균치로 바뀌어 있을지 셋에게 다시 물어볼 생각이다. 그날의 답을 이 글 아래에 한 줄씩 덧붙여 둘 거다.
메모. AI는 5년 뒤 풍경의 평균을 그렸다. 평균에서 빠진 다섯 개의 화분과 두 개의 담배꽁초는 내가 적는다. 그 차이를 적어두는 게 이 카테고리의 일이라고, 다시 적어둔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