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전 10시, 노량진 본동 4구역 골목에서 — 5월 첫 주말 셔터 내린 가게 아홉과 남은 분식집 둘

노량진역 2번 출구에서 한강 쪽으로 내려가면 본동 4구역 재개발 구역이 나온다. 토요일 오전 10시, 나는 그 골목을 한 바퀴 돌며 셔터 내린 가게 아홉을 세고, 아직 영업 중인 분식집 둘과 세탁소 하나를 적어 두었다. 사라지는 골목의 셈법을 한지후의 1인칭으로 기록한다.

노량진역 2번 출구에서 시작한 4월의 마지막 산책

토요일 아침 9시 47분에 노량진역 2번 출구로 나왔다. 한강대교 쪽을 등지고 본동 방향으로 비탈을 내려가면 좁은 도로 양쪽에 낮은 상가들이 줄지어 있다. 본동 4구역. 도로명으로는 노량진로4길과 노량진로6길 사이쯤이다. 5월 첫 주말의 토요일이라 노량진역 학원가 쪽은 이미 가방 멘 사람들로 분주했지만, 4구역 골목으로 한 블록만 들어가니 사람이 거의 없었다. 비탈은 내가 보기에 8도쯤. 한 번 내려가면 다시 올라오기 싫어지는 각도다.

나는 셔터 내린 가게를 아홉까지 셌다

10시 정각에 골목 입구에서부터 차례로 셔터를 셌다. 시작은 모서리의 옛 문구점 자리. 셔터가 회색에서 갈색으로 녹슨 정도가 다른 가게보다 두 배는 진해서, 적어도 1년 이상 닫혀 있었던 것 같다. 그 옆이 옛 슈퍼 자리 — 간판은 이미 떼어졌고 아크릴 자국만 남았다. 세 번째는 이발소, 네 번째는 인쇄소, 다섯 번째는 다시 슈퍼. 골목을 한 번 꺾으면 옛 비디오 가게 자리, 옛 분식집 자리, 옛 부동산. 마지막 아홉 번째는 모서리의 한약방 자리였는데, 셔터 위에 "이전 안내" 종이가 붙어 있었지만 종이가 너무 바래서 글자가 읽히지 않았다.

아홉 곳을 세는 동안 시간은 10시 17분까지 흘렀다. 17분 동안 사람을 다섯 명 만났다. 두 명은 어르신, 한 명은 등교 가방을 멘 학생, 두 명은 검은 봉지를 든 중년의 남자였다. 다섯 명 모두 골목 안쪽 어디로 들어갔지 골목을 빠져나가지 않았다.

아직 살아 있는 가게 셋 — 분식집 둘과 세탁소 하나

같은 골목 안에 영업 중인 가게도 있었다. 분식집 두 곳. 첫 번째는 비탈 중간의 김밥집인데, 토요일 오전이라 자리는 비어 있었지만 떡볶이 양념 끓는 냄새가 골목 끝까지 났다. 두 번째 분식집은 비탈 끝쪽의 우동집. 미닫이 유리문 너머로 사장님이 다시마를 손질하고 있었다. 셋째는 세탁소. 입구에 "세탁기 점검 중"이라는 손글씨 안내가 붙어 있었지만 안에서는 분명히 사람이 옷을 다리고 있었다. 다림질용 증기가 유리창에 김처럼 맺혀 있었다.

분식집과 세탁소. 골목이 사라지기 직전에 마지막까지 남는 업종이 무엇인지 나는 작년부터 메모해 두고 있다. 봉제골목에서는 재봉틀이었고, 을지로 공구상가에서는 30년 된 간판이었다. 노량진 본동 4구역에서는 떡볶이 양념과 다림질 증기였다.

벽에 붙은 종이들 — 이주 안내, 보상 일정, 그리고 바뀐 날짜

골목 끝쪽 전봇대마다 같은 양식의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A4 크기, 흰 바탕에 빨간 도장. 이주 일정, 감정평가 절차, 분쟁조정위원회 연락처. 가장 위에 붙은 종이는 가장자리가 비에 닳아 종이 결이 일어 있었고, 그 위에 새 종이가 두 장 더 덧대어 있었다. 가장 최근 종이의 일정 칸에는 지난 종이의 날짜에 두 번이나 빨간 펜이 그어져 있었다. 처음 적힌 일정에서 두 달 미뤄지고, 다시 두 달 미뤄진 흔적. 재개발 일정이 한 번에 깨끗이 진행되는 일은 거의 없다는 사실을, 종이 위의 빨간 줄은 잘 보여 준다.

비탈 중간 평상에서 만난 어르신의 한 마디

10시 38분쯤 비탈 중간 평상에 앉아 있던 어르신과 짧게 인사했다. 모자 챙을 깊게 누른, 일흔쯤 되어 보이는 분이었다. 묻기 전에 먼저 말을 거셨다. "저기 끝집은 작년 가을에 비웠어." 그러고는 한참을 말 없이 골목 끝을 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한 마디 더 보태셨다. "비어도 골목은 한참을 비어 있는 거여." 나는 그 문장을 평상 옆 전봇대에 잠깐 기대어 받아 적었다. 평상은 합판 위에 장판을 두 겹 깔아 만든 것이었고, 자리 양옆에는 누가 갖다 둔 종이박스가 둘 있었다. 박스 한 면에는 굵은 매직으로 "여기 앉지 마세요"가 적혀 있었지만, 글씨가 너무 정성스러워서 오히려 앉으라는 말처럼 보였다.

나는 골목을 한 번 더 돌고 11시에 비탈을 다시 올라왔다

10시 47분에 골목을 한 번 더 돌았다. 같은 셔터를 다시 세니 똑같이 아홉이었다. 사라진 가게의 수는 두 번 세도 같지만, 머리 안에 남는 잔상은 두 번째가 늘 더 진하다. 11시 02분에 노량진역 2번 출구로 다시 올라왔다. 비탈을 올라오는 8도가 내려갈 때보다 두 배는 가파르게 느껴졌다. 5월의 첫 주말 햇볕은 등에 직접 닿았고, 등 뒤로는 여전히 떡볶이 양념 냄새가 따라 올라왔다. 나는 노량진역 2번 출구 앞 정류장에서 5분쯤 서서, 골목 쪽 비탈을 한 번 더 내려다보았다. 셔터 아홉 너머 분식집 둘과 세탁소 하나가 아직 거기 있었다.

본동 4구역의 셔터 아홉을 세고 나서 분명해진 것 한 가지. 사라지는 골목에서 마지막까지 남는 가게는 사람의 끼니와 옷을 책임지는 곳이라는 사실. 떡볶이 양념과 다림질 증기는 통계가 아니라 골목의 체온이다. 다음 주말에는 이 골목이 어떻게 변했는지 한 번 더 들러볼 생각이다. 셔터의 수는 늘 같은 방향으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새로 닫히는 곳이 있고, 가끔은 새로 열리는 곳도 있다. 둘 다 기록할 가치가 있다.

댓글

가장 많이 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