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전 11시 27분, 보광동 우사단로10길에서 — 한지후의 일기 13: 5월 첫 주말 그늘 자리 셋과 손수레 한 대

토요일 오전 11시 27분쯤, 보광동 우사단로10길의 비탈에서 한 시간 남짓 서 있었다. 5월 첫 주말의 해는 이상하리만큼 정수리 위에 떠 있었고, 그 사이로 사람들은 그늘만 골라 걸었다. 사라지는 동네라는 말은 거창하지만, 토요일 늦아침의 그늘 자리 세 곳을 적어 두는 일은 그것대로 기록이 된다.

이태원역 대신 한강진역 쪽으로 올라간 이유

오늘은 이태원역 4번 출구가 아니라 한강진역 2번 출구로 나왔다. 토요일 오전의 우사단로10길은 이태원 본선의 소음이 닿기 직전, 그러니까 한 걸음 비스듬히 비켜선 자리에 있다. 이태원로27가길에서 우사단로10길로 꺾어 들어가면 갑자기 차도가 비좁아지고, 양옆으로 늘어선 빌라의 1층이 거의 다 셔터를 내리고 있었다. 5월 2일, 5월의 첫 주말 토요일이라는 사실이 그제야 체감됐다. 평일이면 점심 메뉴를 적어 둔 종이가 셔터 옆에 붙어 있을 자리에, 오늘은 흰 A4 한 장이 휘갈긴 글씨로 “토 휴무, 월부터”라고만 쓰여 있었다.

비탈은 짧지만 가팔랐다. 평지를 100미터쯤 걷는 동안 한 층 반은 올라간 느낌이었다. 그 비탈을 따라 토요일 늦아침의 보광동은 사람보다 비둘기가 먼저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늘 자리 1: 우사단로10길 27번지 앞 평상

첫 번째 그늘은 우사단로10길 27번지로 보이는 옛 슈퍼 앞이었다. 슈퍼 간판은 이미 떼어 냈고, 자리에는 “임대” 종이가 붙어 있었다. 다만 그 앞의 작은 평상은 아직 살아 있었다. 가로 1.6미터, 세로 0.7미터쯤 되는 평상에 70대로 보이는 어르신 두 분이 정확히 한 분당 한 변씩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한 분은 라디오를 들고 있었고, 다른 분은 그저 비스듬히 다리를 내려놓고 있었다. 내가 지나갈 때 라디오에서는 1980년대 가요 같은 음이 흘렀다. 멜로디만 알고 제목은 모르겠는 그런 노래.

평상 아래에는 신문지 두 장이 깔려 있었고, 그 위에 검은 봉지가 한 개 놓여 있었다. 봉지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는 묻지 못했다. 다만 평상 옆 슈퍼 셔터에 “재건축 동의 78%”라고 작게 적힌 스티커가 붙어 있었던 것은 분명했다. 사라질 것을 기록한다는 말의 의미는, 이런 평상이 어느 토요일 늦아침에는 그늘 한 자리를 만들고 있었다는 사실을 한 줄로 남겨 두는 일이라고, 나는 늘 그렇게 정리해 둔다.

그늘 자리 2: 골목 안 미용실 차양 아래

두 번째 그늘은 5미터쯤 더 올라간 자리였다. 1층 미용실의 차양이 골목 쪽으로 1.2미터쯤 튀어나와 있었고, 그 아래로 길이 2미터가 안 되는 좁은 그늘이 만들어졌다. 거기에는 손수레 한 대가 세워져 있었다. 검정 손잡이, 회색 바퀴, 짐칸에 종이 박스 네 개. 박스 옆구리에는 어딘가 약국 이름이 붙어 있었지만 글자는 닳아서 두 글자만 읽혔다.

주인은 보이지 않았다. 차양 아래 의자도 없었다. 토요일 오전 11시 27분의 보광동에서 손수레는 그렇게 잠깐 그늘에 들어가 쉬고 있었다. 미용실 유리문 안을 슬쩍 보니 손님은 없었고, 머리 감기는 의자만 두 대가 비스듬히 놓여 있었다. 미용실 입구의 손글씨 안내문은 “토요일 12시 오픈”. 그러니 11시 27분의 차양은 정확히 미용실의 영업시간 바깥에서 손수레의 그늘이 되고 있었던 셈이다.

그늘 자리 3: 적산가옥처럼 보이는 집의 처마

세 번째 그늘은 비탈을 거의 다 올라간 곳에 있었다. 1층 외벽이 회색 시멘트인데 처마만 일본식 기와로 깊게 뻗어 나와 있는 집이었다. 처마가 만든 그늘은 폭 0.8미터, 길이는 4미터쯤. 그 아래로 어르신 한 분이 서 계셨다. 휴대전화를 한 손에 든 채로, 누군가에게 길을 설명하는 듯한 말투였다. “여기서 위로 두 골목 더 올라와서, 응, 그 미용실 보이지, 그 위에….”

집의 문패에는 페인트가 두 번쯤 덧칠된 흔적이 있었다. 처음 이름과 두 번째 이름과 지금의 이름이 미세하게 어긋나 있었다. 적산가옥인지 아닌지 단정하지는 못하겠지만, 처마의 깊이가 1.1미터쯤 되어 보이는 집은 보광동에서도 흔한 풍경은 아니다. 5월의 정오 직전 햇빛에서 그 처마는 정확하게 “지나가는 사람도 1분쯤 서 있을 수 있게 만든” 길이만큼만 그늘을 만들고 있었다. 사람이 살았던 집이 사람을 막아 주고 있었다는 말을, 그날의 메모에는 그대로 적어 두었다.

그늘 사이를 잇는 토요일의 동선

그늘 셋을 잇고 보니 비탈 100미터에 그늘 자리가 정확히 셋, 평균 33미터에 한 자리꼴이었다. 그 사이를 어르신들과 비둘기와 손수레가 번갈아 가며 차지하고 있었다. 5월의 첫 주말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느린 풍경이지만, 사실 토요일 늦아침의 보광동은 늘 이런 속도였을 것이다. 다만 셔터를 내린 가게가 한두 곳씩 늘어가는 동안, 그 그늘들이 언제까지 같은 자리에 있을지는 아무도 보장해 주지 않는다.

나는 우사단로10길 끝까지 올라가지 않고 중간에 골목을 한 번 더 꺾어 빠져나왔다. 한강진역으로 다시 내려오는 동안 셔터를 내린 1층 가게가 일곱 곳, 영업 중인 곳이 두 곳이었다. 두 곳 다 카페였다. 카페 한 곳의 입간판에는 “5월 한정 자몽 에이드”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늘 셋과 카페 둘. 그게 오늘의 보광동에서 내가 본 5월 첫 주말의 무게였다.

결론 메모

토요일 11시 27분의 보광동은 셔터와 그늘과 어르신과 손수레로 이루어진 동네였다. 사라질 것 같다는 단정은 하지 않겠다. 다만 그늘이 사라지면 그 위의 손수레와 어르신과 평상이 어디로 옮겨 갈지를, 5월의 첫 주말에는 한 번쯤 적어 두고 싶었다. 다음 주 토요일에는 우사단로10길 27번지 평상이 그대로 있는지 확인하러 다시 한번 올라갈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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