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후의 일기 19: 5월 셋째 수요일 오전 8시 32분, 후암동 후암로40길 — 평일 아침의 노포 다섯과 1978 우편함
5월 셋째 수요일 오전 8시 32분, 나는 남산 서쪽 자락에 매달린 후암동 후암로40길에 들어섰다. 폭 3미터쯤 되는 골목 한 줄에 평일 아침의 노포 다섯이 차례로 셔터를 올리고 있었다. 23분 동안 본 떡집의 김, 세탁소의 미싱 소리, 골목 끝에 박힌 1978 우편함을 기록한다.
후암로40길에 닿는 13분
나는 숙대입구역 8번 출구에서 후암동 방향으로 13분쯤 걸었다. 후암로 본길에서 동쪽으로 한 번 꺾이면 후암로40길이 시작된다. 입구의 슬레이트 지붕은 약 2.7m 높이로 낮게 처져 있었고, 그 아래로 한 사람 반쯤 들어가는 폭의 골목이 남산 산복까지 약 220m 이어졌다. 골목 양쪽으로는 1970년대 후반에 올린 2층 시멘트 블록집과 그 사이에 끼어든 1980년대 초의 다세대가 번갈아 서 있었다. 외장은 거의 회색이고, 어떤 집은 모래 섞인 분홍색 시멘트 미장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5월의 아침 8시 32분. 기온은 섭씨 14도쯤. 골목 안에는 햇빛이 아직 한 줄밖에 닿지 않았다. 그 한 줄은 정확히 골목 동쪽 벽 2층 창틀 아래에서 멈췄고, 바닥에는 비스듬한 그림자 다섯이 잘려 있었다. 출근하는 사람 셋이 나를 스쳐 지나갔다. 모두 회색 또는 검정 옷이었다.
8시 32분의 첫 모퉁이 — 떡집과 김
골목 입구에서 일곱 걸음쯤 들어가면 오른쪽에 무명의 떡집이 있다. 간판은 손글씨 '떡' 한 글자뿐. 미닫이 알루미늄 문은 절반쯤 열려 있었고, 안에서 시루의 김이 사람 키 높이까지 곧장 올라왔다. 김의 폭은 약 60cm. 떡집 안쪽의 라디오는 일기예보를 읽고 있었다. '오늘 낮 최고기온 23도, 자외선 보통.'
좌판에 올라온 떡은 모시잎송편 두 줄, 콩설기 한 판, 인절미 한 모. 가격표는 색이 바랜 종이에 검정 매직으로 '3,000'만 적혀 있었다. 내가 잠깐 서 있는 사이 동네 어르신 한 분이 들어가서 콩설기 한 봉지를 들고 나왔다. 인사를 따로 하지 않았다. 두 분 다 매일 같은 자리, 같은 시각에 같은 떡을 사고파는 사람들 같았다.
세탁소 셋과 미싱 한 대
골목 중간 60m 구간에 세탁소가 셋이나 있었다. 거리는 가까웠다. 첫 번째 세탁소에서 두 번째까지가 28걸음, 두 번째에서 세 번째까지가 22걸음. 같은 골목에 세탁소 셋이 살아남아 있다는 사실이 나는 좀 이상하게 느껴졌다.
가운데 세탁소의 미닫이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안쪽에서 미싱 한 대가 또각또각, 8박자쯤의 간격으로 돌고 있었다. 주인은 50대 후반쯤 되는 분이었고, 셔츠 단추 옆을 박는 중이었다. 천장에는 다림질된 와이셔츠가 옷걸이에 줄지어 매달려 있었다. 색은 거의 흰색 12, 옅은 하늘색 4, 베이지 2, 그 외 1. 다림질 풀 냄새가 골목으로 흘러나왔다.
나는 잠깐 멈춰 서서 다림질된 셔츠 19벌을 셌다. 셔츠가 19벌이라는 사실은 이 골목에 매일 와이셔츠를 입고 출근하는 사람이 적어도 19명 이상은 산다는 의미일 것이다. 다음 주에 다시 와서 같은 시각에 다시 세어 볼 생각이다.
골목 안쪽 1978 우편함의 자리
골목 안쪽 끝, 그러니까 입구에서 약 180m 들어간 자리. 왼쪽 시멘트 블록집의 대문 옆에 1978년산으로 보이는 우편함이 박혀 있었다. 가로 22cm, 세로 30cm쯤. 짙은 녹색 페인트는 절반쯤 벗겨졌고, 그 아래에서 1978이라는 연도 각인이 흐릿하게 드러나 있었다. 우편함 입구에는 어제 들어온 듯한 흰 봉투 한 통이 비스듬히 꽂혀 있었다.
이 우편함은 후암동이 아직 '후암지구 주택개량 1차'로 호명되기도 전, 그러니까 적어도 47년 동안 같은 자리에 박혀 있었다. 같은 골목 안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물 같았다. 나는 우편함 앞에 1분쯤 서 있었다. 그 사이 누구도 우편함을 열지 않았다. 다만 옆집 1층 창문의 흰 커튼이 한 번 약간 움직였다.
철물점과 미용실, 다섯 번째 가게
골목 끝 모퉁이에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후암로42길로 이어진다. 그 모퉁이 한 칸에 1980년대식 철물점이 있었다. 셔터는 절반만 올라가 있었고, 그 안으로 못, 경첩, 호스 끄트머리, 도장용 붓 같은 것이 쌓여 있었다. 셔터 옆 손글씨 간판은 '만물' 두 글자. 가격은 적혀 있지 않았다.
철물점 맞은편에는 '미용실 1985'라는 작은 간판의 1층 가게가 있었다. 유리창 안쪽 거울 두 개에 헤어롤 다섯과 가위 두 개가 비쳤다. 8시 32분에는 아직 손님이 없었다. 주인은 빗자루로 가게 앞을 쓸고 있었고, 빗자루가 닿는 곳까지가 그 가게의 영역 같았다.
나는 23분 동안 이 골목에서 노포 다섯을 셌다. 떡집, 세탁소, 철물점, 미용실, 그리고 골목 입구에 다시 돌아와서 본 작은 만두집. 만두집의 종이 차림표에는 '찐만두 4,000 / 김치만두 4,500'이 적혀 있었다.
결론: 사라지기 전에 좌표를 박아두는 일
후암동 후암로40길은 '노후주택 정비' 후보지의 가장자리에 걸쳐 있다. 언젠가 이 골목이 통째로 비워지고 나면, 1978 우편함도 시멘트 블록집의 분홍 미장도 떡집의 김도 함께 사라질 것이다. 나는 그날을 받아들이는 대신, 사라지기 전에 좌표를 박아두는 일을 한다.
오늘의 좌표 다섯. 첫 모퉁이 무명 떡집의 김 60cm. 가운데 세탁소 천장의 와이셔츠 19벌. 골목 끝 1978 우편함. 모퉁이 만물철물점의 셔터 절반. 미용실 1985 거울 속 헤어롤 다섯. 다음 주 수요일 같은 시각에 같은 골목을 다시 걸을 생각이다. 그때 셔츠가 몇 벌이고 우편함에 봉투가 남아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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