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 화요일 정오, 능동 어린이대공원 꿈마루에서 — 1970년 김중업의 캔틸레버와 2011년 조성룡의 빈 골조 사이를 걸었다
5월 5일 어린이날 화요일 정오, 능동 어린이대공원 정문에서 꿈마루까지 약 8분을 걸었다. 1970년 김중업이 그린 옛 서울컨트리클럽 클럽하우스가 2011년 조성룡의 손을 거쳐 골조와 계단만 남은 채 다시 열린 곳이다. 콘크리트 처마 아래에서 아이 둘이 뛰어가는 소리를 들으며 캔틸레버 끝을 한참 올려다봤다.
능동 정문에서 꿈마루까지, 약 8분
지하철 7호선 어린이대공원역 1번 출구로 나와 정문까지 도보 4분, 정문에서 분수광장을 지나 꿈마루까지 다시 약 4분이었다. 정오 12시 12분에 도착했고, 기온은 휴대폰 화면에 18도로 떠 있었다. 어린이날이라 풍선을 든 가족이 많았다. 아빠들은 회색 후드티 두 명, 검정 체크셔츠 한 명, 베이지 코듀로이 재킷 한 명을 1분 사이에 봤다. 정문 광장의 시계탑은 12시 13분을 가리켰고, 분수는 가동 중이었다. 분수 양옆 회양목 화단의 키는 무릎 정도, 약 50센티미터쯤 되어 보였다.
1970년의 컨트리클럽, 김중업의 손
지금 꿈마루라는 이름이 붙은 이 건물은 원래 1970년 김중업이 서울컨트리클럽(능동 골프장)의 클럽하우스로 설계한 것이다. 1973년 어린이대공원이 개장하면서 클럽은 사라졌고, 건물은 교양관과 식당 등으로 용도가 여러 번 바뀌면서 천천히 노후됐다. 한참 동안 폐쇄돼 있던 자리를 2011년 조성룡건축연구소가 리노베이션해 카페와 전시 공간을 둔 시민 휴게동으로 다시 열었다. 1970년대 김중업의 후기 모더니즘답게, 콘크리트 처마와 노출 골조가 외관을 지배한다. 김중업이 프랑스 시기 르 코르뷔지에 사무실에서 익힌 묵직한 캔틸레버가 그대로 남아 있다.
캔틸레버 약 5미터, 처마 아래의 그늘
건물 정면 캔틸레버 길이는 눈대중으로 약 5미터, 그늘 깊이는 4미터쯤 되어 보였다. 처마 끝의 에지는 두꺼울 줄 알았는데 막상 가까이서 보니 7~8센티미터 정도로 얇게 정리되어 있었다. 콘크리트 표면에는 거푸집의 나무 결이 그대로 찍혀 있었고, 한쪽 모서리엔 검은 곰팡이가 손바닥 두 개 크기로 번져 있었다. 처마 아래 벤치에는 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풍선을 안고 앉아 있었고, 그 옆에서 30대 후반쯤의 아빠가 무릎을 굽혀 신발 끈을 묶었다. 정오 빛이 처마 끝을 잘라 그늘과 양지의 경계가 손가락 하나 폭으로 또렷했다.
안으로 들어가서 — 2011년이 남긴 빈 골조
출입구는 정면 우측, 자동문이 아니라 미는 유리문 한 짝이었다. 안에 들어서면 1층 카페가 먼저 나오는데, 면적은 가늠해보면 60제곱미터쯤 되는 정도였다. 가운데에 콘크리트 기둥 두 개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고, 천장은 옛 슬래브의 골조가 보이는 부분과 새로 마감한 부분이 격자처럼 교차했다. 조성룡의 리노베이션은 무엇을 더하기보다 비우는 쪽이었다. 외벽 일부를 떼어내 외기와 통하게 만들고, 옛 계단과 바닥은 그대로 살려 마치 유적처럼 보이게 두었다. 카페 안쪽 벽에는 1973년 개장 당시 사진과 1970년대 클럽하우스 도면 한 장이 액자에 걸려 있었다. 도면 옆 캡션에 김중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2층 옥상 같은 자리, 어린이날 정오의 빛
왼쪽 외부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계단의 챌면 높이는 약 17센티미터, 디딤판 폭은 28센티미터 정도. 2층은 지붕이 일부만 남아 있어서 외기에 거의 노출된 옥상에 가까웠다. 콘크리트 바닥에 뚫린 옛 배수구 구멍에 빗물 자국이 남아 있었고, 한쪽 난간에 기댄 채 분수광장 쪽을 내려다봤다. 12시 30분, 회양목 너머로 풍선 다섯 개가 동시에 떠다녔다. 그중 하나가 1층 처마 아래로 천천히 흘러갔다. 아이 둘이 외부 계단을 뛰어 내려가는 소리가 콘크리트에 부딪혀 울렸다. 발소리에 묻혀 분수 모터 돌아가는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꿈마루를 떠나면서
다시 처마 아래로 내려와 정면 광장 쪽을 바라봤다. 1970년 김중업이 그린 캔틸레버는 그대로 거기에 있었고, 2011년 조성룡은 무엇을 더하기보다 비웠다. 꿈마루라는 이름은 좀 동화 같지만, 건물 자체는 동화보다 훨씬 단단하고 거칠었다. 어린이날 정오에 이런 콘크리트 유적 안을 가족들이 카페처럼 쓰고 있다는 게 묘하게 좋았다. 능동 정문 쪽으로 다시 걸으면서, 김중업이 처음 이 처마를 그렸을 때 발 아래는 골프공이 떨어지는 잔디였을 거라고 잠깐 생각했다.
한지후 메모
1) 김중업의 1970년 컨트리클럽 → 조성룡의 2011년 리노베이션은 "더하기보다 비우기"의 좋은 예다.
2) 어린이날 정오, 처마 아래 그늘은 약 4미터 깊이, 콘크리트 표면에는 거푸집의 나무 결이 살아 있었다.
3) 꿈마루는 이름은 동화 같지만, 건물은 분명히 콘크리트 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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