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 2시 30분, AI 세 개에게 '5월 첫 주말 효자동에서 청운동까지 3km 봄 산책'을 그려 달라 했다 — 직접 걸어 본 두 시간과 어긋난 여덟 지점
토요일 오후 2시 30분, 나는 효자동의 작은 카페에서 노트북을 열어 ChatGPT·Claude·Gemini 셋에게 같은 문장을 붙여넣었다. "5월 첫 주말 효자동에서 청운동까지 3km 봄 산책 코스를 그려 달라." 답이 나왔고 나는 그 답을 노트에 옮겨 적은 뒤 두 시간 동안 직접 걸었다. AI 셋 모두 빼먹은 78단의 계단 하나를 발견하기까지의 기록.
같은 질문을 셋에게 — 3km, 두 시간, 다섯 지점
점심을 거르고 매봉산에서 내려와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탄 참이라 다리가 조금 무거웠다. 효자로 안쪽 카페 창가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열었고, 세 개의 창을 띄워 같은 문장을 붙여넣었다. "5월 첫 주말, 20대 남자 한 명이 두 시간 안에 걸을 수 있는 효자동에서 청운동까지 3km 봄 산책 코스. 사진을 찍고 메모할 만한 다섯 지점을 골라 줘." 답이 거의 동시에 도착했다. 셋의 답을 합치면 지점은 열한 개였고, 그중 네 개는 겹쳤다. 나는 답을 노트에 옮긴 뒤 오후 2시 50분 카페를 나섰다.
ChatGPT가 추천한 통의동 한옥 골목 — 토요일 오후엔 사람이 너무 많았다
가장 먼저 권한 곳은 효자로 안쪽 통의동 한옥 거리였다. 골목 자체는 맞다. 폭 7m 안팎, 양쪽으로 1930년대 후반의 도시형 한옥이 늘어선다. 다만 토요일 오후 2시 50분의 통의동은 사람이 너무 많았다. 50m 구간에 어림잡아 마흔 명, 카메라를 든 사람이 그중 절반. 메모를 적기엔 어깨가 자꾸 부딪혔고, 사진은 늘 누군가의 뒷모습이 끼어들었다. AI는 "한적한 골목"이라고 적어 두었지만, 한적함은 시간대의 변수다. ChatGPT의 학습 데이터는 평일 낮의 통의동을 기억하고 있었다.
Claude가 추천한 백송터 — 다섯 줄로는 11분의 자리를 다 담지 못했다
두 번째로 향한 곳은 효자동 백송터. 청와대 동편, 천연기념물 4호 자리였던 흰 소나무가 1990년에 죽고 그 자리에 후계목 두 그루가 자라고 있다. Claude는 둘레와 수령, 후계목 식재 연도까지 정확히 적었다. 다만 다섯 줄로는 그 자리를 다 담지 못했다. 나는 11분을 머물렀고, 그동안 본 것은 후계목 두 그루의 키 차이(왼쪽이 30cm쯤 더 크다), 안내판에 묻은 새 똥 자국 두 개, 옆 벤치에서 노트북으로 일하는 30대 여성 한 명, 그리고 작은 잔디밭에 앉아 도시락을 먹는 부녀 한 쌍이었다.
Gemini의 청와대 앞길 — 4월 말에 일정이 바뀐 보행자 우선 구역
세 번째 추천은 Gemini가 적은 청와대 앞길이었다. "5월에는 매주 토요일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보행자 우선 구역으로 운영된다"는 설명이 함께 붙었다.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 보행자 우선 운영은 맞지만 4월 말부터 일요일로 옮겨졌다. 새로 붙은 안내판이 그것을 알려 주었고, 인근 주차요원에게 물으니 "지난주 토요일 항의가 좀 있어서 일정이 바뀌었다"고 했다. AI의 학습 데이터는 4월 둘째 주쯤에서 멈춰 있었고, 일주일 뒤의 행정 변경까지는 따라오지 못했다.
셋 다 빼먹은 78단의 계단 — 청운초등학교 뒤편
세 AI 모두 빼먹은 길이 하나 있었다. 청운초등학교 뒤편, 자하문터널 위 청운공원으로 올라가는 좁은 계단길이다. 폭 약 1.8m, 단 수 78개, 양쪽으로 1990년대에 쌓은 듯한 시멘트 담장이 이어진다. 담장에는 누군가 분필로 그린 화살표 셋과 "→ 윤동주문학관"이라는 글씨가 흐릿하게 남아 있었다. 78단을 다 오르면 인왕산이 정면으로 보이고, 5월 오후 3시 40분의 햇빛이 담장 위로 비스듬히 떨어진다. 단 위에 앉아 메모를 적는 동안 사람은 두 명만 지나갔다. AI 셋 중 누구도 이 계단을 추천하지 않았다. 학습 데이터에 없거나, 있어도 추천할 만큼의 가중치를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AI는 도구이고, 골목은 직접 걸어야 알 수 있다
오후 4시 30분, 나는 청운동의 다른 카페에서 노트북을 다시 열어 AI들에게 78단 계단의 좌표를 알려 주었다. "그곳을 알아 두겠습니다"라는 답이 돌아왔지만, 그 답이 다음 사용자에게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AI에게 골목을 가르치는 일은 빈 종이에 글씨를 쓰는 일과 비슷하다. 종이는 그대로 사라지고, 다음 사람은 다시 빈 종이를 받는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쓴다. 다음 사람이 검색했을 때, 적어도 78단의 계단 하나는 글로 남아 있도록. AI는 길의 윤곽을 그려 주지만, 골목의 폭과 햇빛의 각도와 토요일 오후의 사람 수까지 알지는 못한다. 그것은 직접 걸어야 알 수 있다. 오늘 어긋난 여덟 지점을 적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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