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후 2시, 연남동 동진시장 골목에서 — 5월 첫 일요일, 20대 남자 봄 옷차림 열두 벌
5월 첫 일요일, 나는 연남동 동진시장 골목으로 들어갔다. 경의선숲길에서 한 블록 안쪽, 천천히 걷는 사람만 모이는 길이다. 오후 2시 정각부터 약 한 시간 동안 그 안을 두 바퀴 돌면서 20대 또래 남자 열두 명의 옷차림을 손바닥 메모지에 적었다. 5월 첫 주 서울 거리의 부피와 색을 한지후의 시선으로 기록한다.
오후 2시, 동진시장 골목 안의 부피감
나는 홍대입구역 3번 출구로 나와 경의선숲길을 따라 걷다가 동진시장 정문 쪽으로 꺾어 들어갔다. 골목은 좁다. 양옆 가게 사이 거리가 어림잡아 3.2미터쯤이고, 사람이 한 줄로만 지나갈 만큼 가운데가 비좁아진다. 햇살은 골목 안까지 깊이 들어오지 못하고 가게 차양 위쪽에서 비스듬히 끊긴다. 그래서 옷의 부피가 평소보다 더 커 보인다. 어깨선이 두꺼우면 두꺼운 대로, 셔츠가 헐렁하면 헐렁한 대로, 몸 전체가 한층 부풀려진 채 골목을 지나간다. 나도 오버사이즈 셔츠를 입고 왔는데 그 좁은 통로에서 한 번 옆으로 비켜설 때마다 어깨가 가게 차양에 슥 닿았다. 5월 첫 주의 서울은 낮 최고 약 22도, 오후 2시 골목 안 체감온도는 그보다 한두 도 낮았다.
열두 벌의 손바닥 메모
오후 2시 5분, 키 175 정도의 남자. 짙은 카키색 면 셔츠 위에 같은 톤의 얇은 니트 베스트를 겹쳤다. 셔츠 소매는 두 번 접어 팔꿈치 위까지 올렸고, 베스트의 V넥 안쪽으로 흰 티셔츠 라운드넥이 1cm쯤 살짝 보였다. 하의는 짙은 회색 와이드 면바지, 신발은 흰색 메시 운동화. 가방은 들지 않았다.
오후 2시 9분, 두 번째. 베이지 톤 코듀로이 셔츠 자켓을 단추 두 개만 잠그고 걸쳤다. 안에 받쳐 입은 것은 검정 반팔 티셔츠, 그 아래로 아이보리 면바지가 발목을 살짝 덮을 정도 길이였다. 손목엔 검은 가죽 시계, 신발은 갈색 스웨이드 로퍼. 봄 자켓 중에서 오늘 본 가장 차분한 조합이었다.
오후 2시 14분, 세 번째. 라이트 그레이 후디 위에 검정 나일론 코치 자켓. 후디 끈은 매듭 없이 그냥 늘어뜨렸고, 코치 자켓은 단추를 다 풀어 둔 채였다. 데님은 살짝 컷오프 처리된 연한 블루, 발목 위로 4cm쯤 올라왔다. 발에는 회색 캔버스화. 후디·자켓·데님이 모두 색온도가 비슷한 차가운 회색 계열로 모여 있었다.
오후 2시 17분, 네 번째. 흰 옥스퍼드 셔츠를 단추 끝까지 잠그고, 위에는 짙은 네이비 니트 가디건. 가디건은 단추를 다 채우지 않고 두 번째까지만 잠갔다. 하의는 베이지 와이드 슬랙스, 신발은 흰색 가죽 단화. 셔츠 옷깃이 가디건 V 사이로 빳빳하게 올라와 있었다.
오후 2시 22분, 다섯 번째. 아이보리 라운드 반팔 티셔츠 한 장에 데님 셔츠를 허리에 묶었다. 청바지는 살짝 빨려 들어간 느낌의 컷, 검정 캔버스 신발. 가장 가벼운 차림이었지만 셔츠 한 장을 허리에 더해 부피를 만들어 두었다.
오후 2시 26분, 여섯 번째. 하늘색 옥스퍼드 셔츠를 그대로 입고, 그 위에 회색 가디건도 자켓도 아닌 셔츠 자켓 — 셔츠보다는 두껍고 자켓보다는 얇은 한 겹을 더 걸쳤다. 팔의 넓이가 두 단계로 보이는 효과가 났다. 하의는 회색 슬랙스, 신발은 검정 더비. 메신저백을 사선으로 멨다.
오후 2시 31분, 일곱 번째. 검정 라운드 티셔츠 위에 카키색 셔츠 자켓 — 하지만 이번엔 단추를 끝까지 잠가 두꺼운 셔츠 한 벌처럼 보였다. 데님은 짙은 인디고, 발목까지 떨어지는 스트레이트. 신발은 갈색 부츠. 가장 단단한 실루엣이었다.
오후 2시 36분, 여덟 번째. 오버사이즈 흰 반팔 티셔츠 한 장에 카고 팬츠. 카고 주머니 두 개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옆선이 살짝 부풀어 있었다. 신발은 검정 메시 러닝화. 자켓도 셔츠도 없이, 5월 첫 주의 한낮을 가장 가볍게 끊어 입은 사람.
오후 2시 41분, 아홉 번째. 짙은 그린 크루넥 니트 위에 베이지 트렌치코트, 단추는 잠그지 않았다. 트렌치 자락이 걸을 때마다 살짝 펄럭였다. 하의는 흰색에 가까운 아이보리 면바지, 신발은 흰 가죽 스니커즈. 연남동 골목에 트렌치코트는 이 한 명뿐이었다.
오후 2시 45분, 열 번째. 회색 후드 집업을 끝까지 잠그고, 그 위에 다시 가벼운 검정 바람막이를 한 겹 더했다. 하의는 검정 트레이닝 팬츠, 신발은 검정 러닝화. 가장 운동복에 가까운 차림이었지만 바람막이 옷깃 끝의 흰색 라벨이 멀리서 한 번 더 눈에 띄었다.
오후 2시 49분, 열한 번째. 라이트 베이지 셔츠 위에 흰색 반팔 티셔츠를 겉에 한 번 더 겹쳐 입었다 — 셔츠 위에 티셔츠. 셔츠 소매가 티셔츠 밑단 아래로 한 뼘쯤 더 길게 떨어졌다. 하의는 짙은 회색 와이드 슬랙스, 신발은 흰 가죽 단화. 가장 실험적인 한 벌.
오후 2시 54분, 열두 번째. 짙은 네이비 폴로 셔츠를 단추 두 개 풀고 입었다. 하의는 아이보리 치노, 신발은 갈색 스웨이드 로퍼. 폴로의 옷깃이 햇살에 살짝 빳빳하게 섰다. 가장 단정한 한 벌로 메모를 닫았다.
5월 첫 주말 골목의 색온도와 겹침
열두 명의 옷에서 가장 자주 본 색은 짙은 회색이었다. 메모지에서 회색 계열이 다섯 번, 베이지 계열이 네 번, 카키와 그린이 두 번, 검정이 한 번. 흰색은 단독 베이스로 셋, 안에 받쳐 입은 사람이 다섯. 채도 높은 색은 한 명도 없었다. 옷을 두 겹 이상 겹친 사람이 아홉, 한 겹으로 끝낸 사람은 셋. 22도의 한낮인데도 사람들은 자꾸 한 겹을 더 얹었다. 셔츠 위에 가디건, 티셔츠 위에 셔츠 자켓, 후디 위에 코치 자켓 — 이름은 달라도 결국 부피를 한 번 더 만드는 일이다.
밑단과 신발 사이의 거리
또 하나의 공통점은 바지 밑단과 신발 사이의 거리였다. 열두 명 중 일곱 명이 발목을 1~4cm 정도 드러냈다. 와이드 면바지든 데님이든 슬랙스든, 길이는 길지 않게 끊는 쪽이 더 흔했다. 발목이 보이면 신발의 색이 바지와 따로 떨어져 한 칸 더 메모할 거리가 생긴다.
결론 메모
5월 첫 일요일 오후 2시 연남동 동진시장 골목, 20대 남자 열두 벌의 옷에서 가장 자주 본 것은 회색·베이지의 차분한 색조와 한 겹의 덧입음, 그리고 발목 1~4cm의 노출이었다. 자켓 한 벌의 무게보다, 그 자켓을 한 번 더 걸쳤다는 사실이 더 자주 보였다. 다음 일요일 같은 시간에 다시 와서 같은 길을 두 바퀴 돌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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