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후의 일기 21 — 5월 넷째 토요일 오전 11시 47분, 공덕역 5번 출구에서 청파로 87번길까지 걸으며 본 토요일 정오의 골목

토요일 오전 11시 47분, 공덕역 5번 출구에서 청파로 87번길까지 약 1.4km를 천천히 걸었다. 도화동 도시락집 앞에는 12명이 줄을 섰고, 청파동 시멘트 골목의 그늘은 4.5m쯤 길게 누워 있었다. 7층 신축과 단층 주택이 한 골목에서 어깨를 맞대는 그 자리에서, 토요일의 정오는 평일과는 다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공덕역 5번 출구, 오전 11시 47분 — 출발의 한 장면

공덕역 5번 출구 계단을 올라오니 햇빛이 정수리에 직각으로 떨어졌다. 5월 넷째 토요일, 기온은 21도쯤이라 셔츠 한 장이 딱 좋았다. 출구 앞 횡단보도에는 자전거를 끌고 선 사람이 셋, 유아차를 미는 부부가 하나, 단지 운동복 차림으로 빵집 봉투를 손목에 건 사람이 둘이었다. 공덕로의 차선은 평일 출근 시간보다 적어 보였고, 신호가 두 번 바뀌는 동안 버스가 단 두 대만 지나갔다. 토요일의 정오 직전은 도로의 표면보다 사람의 손목에 더 많은 것을 매달고 있다 — 빵집 봉투, 마트 비닐, 운동가방. 출구에서 도화동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도화동 도시락집 앞 — 11시 51분, 12명의 행렬

공덕역에서 도보로 4분쯤 걸어가니 도화동의 작은 도시락집이 보였다. 가게 폭은 약 3.6m, 간판은 흰 바탕에 검은 고딕체로 가게 이름이 적혀 있고, 모서리에 그날의 메뉴 일곱 가지가 손글씨로 붙어 있었다. 가게 앞에는 정확히 12명이 줄을 서 있었고, 그중 일곱 명은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고, 다섯 명은 그냥 앞사람의 등을 보고 있었다. 줄의 길이는 약 6.8m, 가게 문에서 골목 모퉁이까지 닿아 있었다. 가장 앞에 선 사람은 노란 종이봉투를 두 손으로 받아 든 채 뒤로 돌아 나왔다. 가게 안에서 흘러나오는 기름 끓는 소리는 일정한 리듬을 가졌고, 그 리듬이 줄의 사람들에게 한 사람씩 차례를 넘기는 메트로놈처럼 들렸다. 평일이라면 이 줄은 30대 직장인이 압도적이었을 것이다. 토요일 정오의 줄은 가족 단위가 더 많았다.

청파로 87번길 — 시멘트 골목의 그늘이 4.5m쯤 누운 자리

도화동에서 청파동으로 넘어가는 짧은 경사를 따라 5분쯤 더 걸으니 청파로 87번길의 입구가 나왔다. 골목 폭은 약 3.2m, 양옆으로는 2층 시멘트 건물이 4m쯤의 높이로 마주 보고 서 있다. 정오에 가까운 햇빛이 골목의 동쪽 벽을 비스듬히 때리면서 서쪽 벽에 4.5m쯤 되는 긴 그늘을 만들었다. 그늘의 끝자락은 골목 입구의 작은 화분에 닿아 있었고, 화분 안에는 누군가 옮겨 심은 듯한 키 작은 산세베리아가 두 그루 있었다. 골목 한가운데에서 자전거 한 대가 천천히 지나갔고, 자전거 안장 뒤에는 검은 비닐봉지가 묶여 있었다.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자 시멘트 벽에서 묵직한 냉기가 흘러나왔다. 이런 골목의 시멘트는 한낮이 되어도 정오 즈음에는 차가운 상태를 끝까지 붙들고 있다.

신축 7층과 단층 적산가옥의 경계 — 한 골목 안의 두 시대

청파로 87번길 안쪽으로 70m쯤 들어가니 골목의 왼편에는 작년쯤 올라간 듯한 7층짜리 도시형 생활주택이, 오른편에는 단층 적산가옥 한 채가 마주 보고 있었다. 신축 건물의 외벽은 회벽돌 무광 패널이고, 1층은 도로보다 25cm쯤 들어 올린 필로티 구조다. 맞은편 적산가옥은 지붕이 검은 슬레이트, 처마 끝에 양철 빗물받이가 한 줄로 늘어져 있다. 두 건물의 어깨 사이에는 약 3.2m의 골목이 끼어 있고, 그 좁은 틈으로 토요일 정오의 햇빛이 한 줄기 떨어졌다. 신축은 햇빛을 반사하고, 적산가옥은 햇빛을 흡수한다. 그 차이가 한 골목 안에서 두 시대의 온도를 다르게 만들었다. 적산가옥의 마당에는 키 큰 감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고, 그 가지가 신축 건물의 2층 창문 쪽으로 약 1.2m 뻗어 있다. 그 가지가 다음 봄까지 살아남을지는 모르겠다.

토요일 정오, 동네 자전거방의 한 장면

청파동4가의 작은 자전거 수리방 앞을 지나갔다. 가게 폭은 2.4m쯤, 셔터를 절반쯤 올린 채 주인이 의자에 앉아 신문을 보고 있었다. 가게 앞에는 수리를 기다리는 자전거 세 대가 비스듬히 기대 서 있었고, 그중 한 대는 안장이 빠져 있었다. 가게 위쪽으로 노란 천막이 1.8m쯤의 폭으로 펼쳐져 골목에 작은 그늘을 더했다. 평일이라면 이 가게는 오후 2시쯤이 가장 바쁘다고 들었다. 토요일은 아침부터 손님이 한 시간에 한 명씩 들어오는, 다른 종류의 박자를 가진다고 했다. 주인은 신문을 한 페이지 넘기고, 다시 한 페이지를 넘기며, 골목 끝으로 누군가 자전거를 끌고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기다림이 토요일의 정오와 가장 잘 어울리는 자세였다.

결론 메모 — 토요일 정오의 속도

다시 청파로 큰길로 빠져나오니 오후 12시 24분이었다. 약 37분 동안 걸어 본 거리는 1.4km, 본 것은 도시락집의 행렬과 시멘트 골목의 그늘, 그리고 두 시대를 마주 세운 한 골목이었다. 토요일 정오는 평일과 같은 시간이지만 같은 시간이 아니다. 사람의 손목에 빵집 봉투가 매달리고, 신문은 한 페이지씩 천천히 넘어가며, 시멘트의 냉기는 정오를 한참 지나도록 빠져나가지 못한다. 다음 주 토요일에도 같은 시간에 같은 출구로 올라와 다른 방향으로 1.4km를 걸어 볼 생각이다. 같은 정오가 다른 골목 안에서는 또 다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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