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후의 일기 24 — 5월 넷째 화요일 저녁 7시 13분, 약수동 다산로25길 — 능선 노포 다섯과 1985 우편함
5월 26일 화요일 저녁 7시 13분, 약수역 4번 출구에서 동호로 능선을 따라 다산로25길로 걸었다. 신당역까지 약 34분, 능선 골목 한 켜를 따라가는 길에서 봄 끝자락의 평일 저녁 풍경을 봤다. 셔터 내린 노포 둘과 아직 불 켠 세 곳, 그리고 1985년이 새겨진 알루미늄 우편함 하나를 기록한다.
약수역 4번 출구에서, 봄 끝자락의 평일 저녁
저녁 7시 13분, 약수역 4번 출구로 올라오니 동호로의 가로등이 막 들어온 참이었다. 봄 끝자락의 평일 저녁은 다른 계절과 묘하게 다르다. 한낮의 빛은 늦봄답게 길었고, 해는 7시 25분쯤에야 완전히 떨어졌다. 출구 옆 지하철 환기구에서는 미지근한 바람이 올라왔다. 손등에 닿는 온도가 섭씨 19도쯤, 셔츠 한 장으로 충분한 저녁이다. 동호로 횡단보도를 건너 다산로25길로 들어서는 데까지는 3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다산로25길 능선 — 1970년대 다세대 일곱과 23도 경사
다산로25길은 약수동에서 신당동으로 넘어가는 능선의 한 켜다. 첫 80m 구간의 경사는 눈대중으로 23도 안팎, 자전거를 끌고 가는 사람이 잠시 멈춰 손등으로 이마를 닦는 정도였다. 길 양쪽으로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초에 지어진 듯한 다세대 일곱 채가 줄지어 섰다. 2층 또는 3층, 외벽은 베이지색 모자이크 타일이거나 적벽돌, 창은 알루미늄 새시로 한 번씩 교체된 흔적이 보였다. 다섯 번째 집의 대문 위에는 오래된 도시가스 배관이 외벽을 따라 굵게 늘어졌는데, 페인트 색이 시간에 따라 세 번 정도 덧칠된 듯 두께가 균일하지 않았다.
노포 다섯 — 닫힌 셔터 둘과 영업 중인 세 곳
능선의 중간 구간, 약 150m 안에 노포가 다섯 군데 있었다. 두 곳은 이미 셔터를 내렸다. 한 집은 간판이 떨어져 나간 자리에 ‘세탁’이라는 두 글자만 남았고, 다른 한 집은 알루미늄 셔터에 손글씨로 ‘임대’가 매직펜으로 적혀 있었다. 영업 중인 세 곳은 작은 슈퍼, 미용실 한 곳, 그리고 ‘분식’이라고만 적힌 노포였다. 분식집 안에서는 라디오 소리가 새어 나왔는데, 라디오는 7시 정각 뉴스가 끝나고 클래식 채널로 넘어가 있었다. 슈퍼의 입구에는 빈 박스 두 개가 쌓여 있고, 그 위에 ‘배달주문 받습니다’라는 손글씨가 종이박스 한 면을 잘라 끼워져 있었다. 미용실 유리창 너머로는 손님 한 명이 머리를 말리고 있었고, 사장으로 보이는 분이 거울 앞에서 다른 손님과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평일 저녁 7시 반에 손님이 한 명이라도 있다는 사실이, 이 골목에 아직 사람의 동선이 살아 있다는 의미로 읽혔다.
1985년 새겨진 알루미늄 우편함
능선의 정점에서 신당동 방향으로 막 꺾이는 자리, 다세대 한 채의 대문 옆에 알루미늄 우편함이 붙어 있었다. 우편함 안쪽 모서리에 작은 글씨로 ‘1985.07’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폭은 24cm 안팎, 높이는 32cm 안팎, 색은 본래 은회색이었을 것이 산화로 옅은 누런빛이 도는 회색이 되었다. 우편함 안에는 전단지 두 장과 노란색 봉투 하나가 끼여 있었는데, 봉투의 발신처가 ‘서울특별시 중구청’이었다. 노란색 봉투는 서울시가 행정문서를 보낼 때 자주 쓰는 색이라, 이 집에 아직 누군가 거주하고 있다는 신호로 봤다. 1985년의 우편함이 2026년의 행정문서를 받는 풍경. 41년 동안 같은 자리에 붙어 있었다는 사실이 무겁게 느껴졌다.
신당역으로 내려가는 길, 19시 47분
능선의 마지막 100m는 신당역 방향으로 완만하게 내려가는 길이다. 경사는 12도쯤으로 부드러워졌고, 길은 7시 47분쯤 신당역 9번 출구 옆 다산로 본도로와 만났다. 약수역에서 신당역까지 다산로25길 한 켜만 따라 걸으니 34분이 걸렸다. 능선을 빠져나오자 본도로의 차 소리가 갑자기 커졌다. 골목 안의 정적과 본도로의 소음 사이, 그 경계선이 능선의 마지막 30m에 명확히 그어져 있었다. 골목에서 나오는 순간 셔츠 위로 가벼운 땀기가 식는 것을 느꼈다. 외부 온도는 18도까지 떨어진 것 같다.
결론 메모
약수동에서 신당동으로 넘어가는 능선 한 켜는 1970년대 후반의 다세대와 1985년의 우편함, 그리고 노포 다섯이 아직 자리를 지키는 공간이다. 평일 저녁 7시 13분에서 7시 47분 사이, 34분이라는 짧은 시간에도 골목은 닫힌 곳과 열린 곳, 사라진 간판과 살아 있는 라디오 소리를 한꺼번에 보여줬다. 다음에 다시 이 능선을 걸을 때는 평일 아침 7시쯤 와 보고 싶다. 저녁의 셔터 내려진 풍경이 아침에는 어떻게 열려 있는지 비교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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