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후의 일기 27 — 5월 넷째 수요일 오전 11시 47분, 보문동6가 보문로13길 — 평일 오전 골목의 빨래 일곱 줄과 그늘 자리 두 곳
보문동6가 보문로13길 골목 한 줄을 오전 11시 47분에 걸었다. 평일 오전의 골목은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았고, 옥상마다 빨래가 줄별로 매달려 있었다. 빨래 일곱 줄과 그늘이 진하게 떨어지는 자리 두 곳을 차례로 메모했고, 25분 동안 골목 안에서 마주친 사람 셋과 사물 하나도 같이 적어 두었다.
빨래 일곱 줄, 옥상마다 다른 색
빨래는 옥상마다 다른 색으로 매달려 있었다. 첫 번째 옥상에는 흰 셔츠 네 벌과 회색 수건 두 장, 두 번째는 아이옷으로 보이는 작은 분홍 티셔츠 다섯 장, 세 번째는 청바지 한 벌과 검은 양말 여덟 짝, 네 번째는 베이지 면 시트 한 장이 통째로 펼쳐져 있었다. 다섯, 여섯, 일곱 번째 옥상은 비교적 단조롭게 회색 수건과 흰 속옷이 섞여 있었다. 빨래 줄에 매달린 옷의 수를 세는 동안 5월 끝의 미세하게 마른 바람이 옥상 사이를 가로질렀고, 네 번째 옥상의 시트가 살짝 부풀었다 가라앉기를 두 번쯤 반복했다. 옥상 사이의 거리는 짧게는 4m, 길게는 9m쯤 떨어져 있었지만 빨래의 색감만큼은 골목 한 줄 위에서 한 화면으로 잡혔다. 그 화면 안에서 가장 눈에 들어온 색은 두 번째 옥상의 분홍이었다. 5월 끝의 빛 아래 분홍은 노랗지도 빨갛지도 않게, 그 둘의 정확한 가운데 어디쯤에서 잠시 머물러 있었다.
그늘 자리 두 곳, 햇빛이 빠진 길의 폭
골목의 그늘은 두 곳에서 진하게 떨어졌다. 첫 번째 그늘은 보문로13길 시작 지점에서 약 8m 들어간 자리, 양쪽 집의 처마와 처마가 약 1.4m 간격으로 마주 보는 구간이었다. 빛이 들어오지 못해 11시 47분인데도 골목 바닥의 색이 가로등 켜기 직전쯤으로 짙었다. 두 번째 그늘은 그보다 25m 더 안쪽, 골목이 한 번 꺾이는 모서리 안쪽이었다. 햇빛이 닿는 구간과 닿지 않는 구간의 경계가 한 줄로 끊겨 있어서, 발끝을 그 선에 맞춰 멈춰 보니 왼쪽 발등은 따뜻하고 오른쪽 발등은 서늘했다. 5월 끝의 그늘은 한여름의 그늘보다 0.5초쯤 빠르게 식는 느낌이었다.
평일 오전, 골목에 남은 사람 셋
골목 안에서 마주친 사람은 세 명이었다. 한 명은 비닐 우산통을 든 60대 후반 여성, 또 한 명은 손에 우편물 한 묶음을 들고 있던 50대 초반 남성, 마지막 한 명은 빨간 종이 가방을 들고 있던 30대 초반 여성이었다. 셋 다 같은 골목 안의 다른 집으로 들어갔다. 누구도 서로를 알아본 듯한 인사를 하지 않았다. 평일 오전 11시 47분은 이 골목 사람들에게 가장 조용한 시간대 같았다. 라디오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텔레비전 소리도 새 나오지 않았다. 바람 소리와 시트가 부풀었다 가라앉는 소리뿐이었다.
1980년대 우편함과 2020년대 택배 박스
세 번째 집 외벽에 1985년쯤 만들어진 듯한 철제 우편함이 하나 붙어 있었다. 옆에는 같은 외벽에 검은색 플라스틱 택배 박스가 못으로 박혀 있었다. 두 사물의 시간 차이는 약 40년이지만, 같은 벽 위 30cm 안에 나란히 놓여 있다는 점이 묘했다. 우편함 안은 비어 있었고, 택배 박스 안에는 갈색 종이 봉투 하나가 들어 있었다. 우편함 하단에 작은 자물쇠가 달려 있었지만 부식되어 더 이상 잠기지 않는 상태로 보였다. 택배 박스 입구에는 비밀번호 패드가 네 자리로 달려 있었다. 40년 차이의 두 보안 장치가 같은 벽에 같이 살아가고 있었다.
5월 끝의 마른 공기, 옥상 너머 산자락
골목의 끝에서 한 번 더 멈춰 섰을 때 옥상 너머로 정릉 자락이 멀리 보였다. 5월 끝의 공기는 마른 편이었고, 산자락의 녹음은 살짝 진해진 단계였다. 보문동6가에서 정릉 자락까지의 시선은 옥상 두 줄, 골목 네 칸, 작은 공원 하나를 지나야 닿는다. 그 시선의 길이 안에 빨래 일곱 줄과 사람 셋과 우편함 하나가 동시에 있었다. 25분 동안 걸은 오전이었고, 골목 폭은 평균 2m 남짓이었다.
평일 오전의 골목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11시 47분의 그늘 자리가 다음 달이면 얼마나 줄어들지, 빨래 일곱 줄이 같은 일곱 줄로 매달려 있을지를 다음에 또 와서 확인하고 싶었다. 보문동6가의 평일 오전이 다음 여름이 시작될 무렵에도 같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지는 아직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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