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아현3구역 북아현로13길 — 5월 넷째 금요일 오전 8시 27분, 이주 안내문 11장과 1973 시멘트 마당

나는 5월 22일 금요일 오전 8시 27분에 서대문구 북아현동 북아현로13길 초입에서 시작해 북아현로11길 막다른 골목까지 약 1.2km를 걸었다. 이주 안내문 11장을 셌고, 1973년쯤 시공된 것으로 보이는 시멘트 마당 한 채를 들여다봤다. 사라지는 골목의 마지막 봄을 기록한다.

아현역 4번 출구에서 북아현로13길까지의 7분

아침 8시 19분, 아현역 4번 출구에서 나와 충정로 방면이 아닌 굴레방다리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4번 출구에서 북아현로13길 초입까지는 도보로 정확히 7분 14초가 걸렸다. 굴레방다리 사거리에서 신호를 한 번 받았고, 그 외에는 신호 없이 골목으로 빨려 들어가는 동선이었다. 출구를 나서면 우측으로 ABC마트가 보이고, 그 길을 따라 60m쯤 가다가 좌측 골목으로 꺾으면 곧 북아현로13길 입구가 나온다. 입구 좌측 전봇대에는 누군가 손글씨로 "택배 여기 두지 마세요"라고 적은 종이가 청테이프로 붙어 있었다. 글씨가 굵고 검었다.

골목 초입의 1973년 시멘트 마당

북아현로13길로 들어선 지 약 80m 지점에서 좌측에 단독주택 한 채가 보였다. 대문이 열려 있었고, 마당 바닥은 회색 시멘트였다. 시멘트 표면에 새겨진 글자가 닳아 있었지만 "73.4" 세 글자는 또렷했다. 1973년 4월에 시공된 마당이라는 뜻일 것이다. 마당 한가운데에는 직경 60cm쯤 되는 둥근 화단이 있었고, 그 안에 키 90cm가량의 동백나무 한 그루가 심겨 있었다. 잎은 짙은 녹색이고 꽃은 이미 졌다. 화단 옆에는 옥색 플라스틱 대야 하나가 엎어져 있었는데, 바닥에 "정심슈퍼"라는 손글씨가 매직으로 적혀 있었다. 골목 어딘가에 그 슈퍼가 있었거나, 있었을 것이다. 검색해 보지 않았다. 검색하면 사라지는 이름이라는 사실이 더 분명해질 것 같았다.

이주 안내문 11장, 같은 종이 다른 문구

오전 8시 36분부터 약 14분 동안 골목을 천천히 걸으며 대문과 담벼락에 붙은 이주 안내문을 셌다. 정확히 11장이었다. 모두 A4 크기였고, 모두 흰 종이에 검은 잉크였다. 그러나 문구는 조금씩 달랐다. 어떤 집은 "이주 완료, 출입 금지", 어떤 집은 "5월 31일까지 이주 협조 부탁드립니다", 또 어떤 집은 그저 "비어 있음"이라고만 적혀 있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6번째 집, 빨간 벽돌 2층 단독주택 대문에 붙은 종이였다. "이주했습니다. 우편물 반송해 주세요." 펜으로 쓴 글씨가 정자체였고, 마지막에는 검은 볼펜으로 그은 한 줄짜리 밑줄이 있었다. 누군가 이 집을 떠나며 마지막으로 단정한 손글씨를 남겼다는 사실이, 11장 중 가장 오래 내 시선을 붙들었다.

북아현로11길 막다른 골목의 옥상 빨래

북아현로13길에서 우측으로 한 번 더 꺾어 북아현로11길로 들어섰다. 골목 끝은 막다른 곳이었고, 길이는 약 110m였다. 입구에서 직선으로 65m 지점에 2층 다세대주택 한 동이 서 있었는데, 옥상 빨랫줄에 흰 셔츠 세 벌, 검은 양말 다섯 켤레, 베이지색 수건 두 장이 걸려 있었다. 시각은 9시 02분. 골목 전체에서 살아 있는 흔적은 그 빨래뿐이었다. 길 끝까지 걸어 보았다. 막다른 벽 앞에는 폐기물 스티커가 붙은 갈색 장롱 한 짝과 흰색 냉장고 한 대가 놓여 있었다. 장롱 손잡이에는 누군가 노란색 비닐 끈으로 작은 매듭을 묶어 두었다. 왜 묶었는지는 알 수 없다. 매듭은 단단했다.

벽에 남은 1985 분양 광고와 우편함의 5월 14일자 청구서

골목을 돌아 나오는 길에 한 단독주택 외벽에서 옅게 남은 글씨를 발견했다. "북아현 연립 분양, 1985." 페인트로 직접 쓴 글씨였는데, 빨간색이 거의 분홍빛으로 바랜 상태였다. 41년 전의 분양 광고가 외벽에 남아 있다. 그 옆집 우편함에서는 노란 봉투 하나가 절반쯤 빠져 나와 있었다. 봉투 모서리에 적힌 날짜는 "2026.05.14". 8일 동안 우편함에서 그 자리에 있었다는 뜻이다. 봉투에 손을 대지는 않았다. 발신처는 한국전력으로 보였다. 청구서가 8일째 비어 있는 우편함에 꽂혀 있다는 사실은, 이 골목에 사람의 시간이 멈춰 가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걸으며 들은 소리, 두 가지

9시 14분쯤 골목 중간에서 잠시 멈춰 섰다. 들리는 소리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멀리서 들려오는 굴착기 엔진 소리. 굴레방다리 너머 충정로 쪽 공사 현장의 소리 같았다. 측정하지 않았지만 체감상 50데시벨 안팎. 다른 하나는 가까이서 들려오는 까치 한 마리의 울음. 까치는 폐가의 슬레이트 지붕 위에 앉아 있었다. 두 소리는 동시에 들렸고, 묘하게 균형이 맞았다. 하나는 골목을 지우는 소리고, 다른 하나는 골목이 아직 살아 있다는 소리였다. 둘이 한 자리에 겹쳐 있는 시간이 길지는 않을 것이다.

북아현3구역은 2026년 안에 본격 철거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고 알려져 있다. 내가 오늘 센 이주 안내문 11장 중 몇 장이 다음 주에도 그 자리에 남아 있을지 모르겠다. 다만 1973년 시멘트 마당, 1985년 분양 광고, 5월 14일자 청구서 — 이 세 가지 시간이 한 골목 안에 겹쳐 있는 풍경을 본 것은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다. 다음 방문은 6월 첫째 주로 잡았다. 그때 다시 11장이 몇 장으로 줄어 있는지 세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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