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경3구역, 외대 후문 뒤 화랑로32나길 — AI 셋에게 2031년의 골목 셋과 1980 우편함을 물었다
2026년 5월 16일 토요일 오후 4시 22분, 외대 후문에서 화랑로32나길로 들어가는 입구에 섰다. 휘경3구역은 정비구역으로 지정된 지 9년째이고 관리처분인가가 작년 가을에 났다. 골목 셋과 1980년 우편함 하나를 사진 없이 글로만 묘사해서 GPT, Claude, Gemini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다. "이 골목은 2031년에 어떤 모습일까."
1. 내가 본 휘경3구역, 5월 16일 오후 4시 22분
외대 후문에서 횡단보도 하나 건너 화랑로32나길로 들어서면, 차 한 대 겨우 지나는 좁은 길이 200m쯤 이어진다. 양옆은 2층 다세대와 적벽돌 단독주택이 섞여 있다. 골목 입구 첫 번째 집은 1979년에 지은 빨간 벽돌 2층집인데, 1층 셔터에는 손글씨로 '미용실 폐업'이라 적혀 있고 그 위에 청테이프로 가린 '운영중'이 비친다. 두 번째 골목은 화랑로32나길 17번지 안쪽, 막다른 끝에 평상이 하나 놓여 있고 그 옆 담장 위에 1980년 우편함이 있다. 세 번째 골목은 17길과 19길이 만나는 작은 삼각형 공터, 길고양이 세 마리가 자리잡고 있고 1984년 우편함이 비스듬히 박혀 있다. 오후의 햇빛은 서쪽에서 비스듬히 들어와 골목 안쪽 5m까지만 닿는다. 그 너머는 5월인데도 서늘하다.
2. 우편함 하나의 디테일
화랑로32나길 17번지 끝 평상 옆 우편함은 회색 도장이 두 번쯤 덧칠된 흔적이 있고, 글자 부분은 거의 지워졌지만 '17-4'라는 숫자만 또렷하다. 함 옆구리에 새겨진 '1980. 4.'라는 글자는 시멘트 벽에 묻혀 거의 안 보인다. 우편함 위쪽 담장에는 '주차금지'라고 빨간 페인트로 쓴 글씨가 비뚤어져 있다. 함 안에는 광고 전단 두 장과 우유 주문 영수증 한 장이 들어 있고, 함 아래 시멘트 바닥에는 담배꽁초 다섯 개와 검은 비닐봉지 끄트머리가 보였다. 이 우편함은 분명히 아직 누군가가 쓰고 있다.
3. 같은 질문, AI 셋의 2031년
나는 사진을 첨부하지 않고 위 두 문단의 묘사만으로 같은 프롬프트를 GPT-5, Claude Sonnet 4.6, Gemini 2.5에 보냈다. 질문은 단순했다. "이 골목 셋과 1980년 우편함은 2031년에 어떤 모습일까. 정비구역 지정·관리처분인가가 있었다는 사실까지 포함해서 추정해 달라."
GPT-5는 "2029년 착공, 2031년에는 25층 아파트 두 개 동의 골조가 올라가 있는 상태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답했다. "골목 셋의 동선은 완전히 사라지고, 1980년 우편함은 철거 과정에서 제거되거나, 운이 좋으면 단지 내 작은 산책로의 옛터 표지석 옆에 옮겨져 있을 수 있다. 다만 실제로 그렇게 보존되는 비율은 서울 정비구역 평균 4% 안팎"이라며 출처는 서울시 정비사업 통계라 했다.
Claude는 신중했다. "관리처분인가 이후 평균 착공 지연 기간이 22개월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2031년 5월 시점에는 철거가 막 끝나고 터파기 공사가 시작된 상태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골목 셋 중 17길과 19길이 만나는 삼각형 공터는 단지 내 보행자 통로의 일부로 흔적이 남을 수 있다. 1980년 우편함은 보존 가능성 낮음. 단, 외대 학생회나 지역 사진동아리가 사전 기록을 남겼다면 디지털 아카이브로는 살아남는다." 그러면서 마지막 줄에 "사라지는 것 자체를 기록하는 일이 사라지는 것 다음으로 중요하다"는 문장을 덧붙였다.
Gemini는 비교적 낙관적이었다. "최근 동대문구 정비사업이 단지 내 '옛 골목 산책로' 콘셉트를 도입한 사례가 늘었기 때문에, 2031년에는 골목 셋 중 적어도 하나의 동선이 단지 내 산책로로 재현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1980년 우편함은 단지 입구의 '옛 휘경 기억' 코너에 옮겨져 안내문과 함께 놓여 있을 수 있다." 다만 Gemini도 "이는 베스트 시나리오이며, 평균적으로는 흔적이 거의 남지 않는다"고 단서를 달았다.
4. 세 답을 옆에 두고 다시 골목을 걸었다
외대 후문에서 우편함까지 다시 한 번 천천히 걸었다. 시계를 보니 오후 4시 41분. 골목 안쪽 평상에는 60대 정도 되어 보이는 분이 앉아 휴대전화를 보고 있었다. 나는 인사만 짧게 하고 지나갔다. 평상 옆 우편함 사진을 다섯 장 찍고, 17번지 1층 옛 미용실 셔터를 한 장, 19길과 만나는 삼각형 공터의 길고양이 세 마리를 두 장 찍었다. AI 세 개의 답을 정리하면 골목 셋의 동선은 사라지고, 우편함은 보존 가능성 4~30% 사이의 어디쯤이다. 나는 그 4~30% 안에 들어가 보려고 사진을 찍는다.
5. 결론 메모
AI에게 같은 묘사를 주고 2031년을 물으면 세 모델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답한다. GPT는 통계 평균, Claude는 가능성의 폭, Gemini는 베스트 시나리오. 셋 중 어느 답이 맞는지는 5년 뒤에 확인할 수 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화랑로32나길 17번지 평상 옆 1980년 우편함의 글자 '17-4' 한 줄을 사진과 함께 남겨두는 일이다. 사라지는 것 옆에서 사라지는 속도를 늦추는 일은 못 한다. 다만 사라지기 전의 모양은 남길 수 있다.
— 한지후, 외대 후문 화랑로32나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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