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후 3시 5분, 성북동 길상사 마당에서 — 5월 첫 일요일, 신발 벗는 사람 열한 명과 종소리 한 번 — 한지후의 일기 15

5월 첫 일요일 오후, 성북동 길상사에 다녀왔다. 일주문에서 마당까지 짧게 오르는 길이지만 빛과 그림자가 짝을 이루는 자리가 여러 곳이었다. 사람들이 신발을 벗고 법당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한참 앉아서 보았다.

일주문 앞에서 — 신발 벗는 사람 열한 명을 셌다

길상사는 성북로26길 중턱에 있다. 한성대입구역에서 마을버스 2번을 타고 다섯 정거장 지나 내리면 일주문이 보인다. 오늘은 일요일, 5월 첫 주말, 오후 3시 5분이었다. 햇빛은 여전히 강했지만 일주문을 지나는 순간 바람의 온도가 한 단계 낮아지는 것 같았다. 일주문을 지나 오르막을 짧게 올라가면 좌측에 적묵당, 정면에 극락전이 보인다. 극락전 처마 아래 신발장 앞에서 사람들이 신발을 벗고 있었다. 나는 그 옆 돌의자에 앉아 시간을 보았다. 오후 3시 5분부터 3시 18분 사이에 신발을 벗고 법당으로 들어간 사람을 셌다. 열한 명. 흰 운동화 다섯, 검정 단화 셋, 갈색 로퍼 둘, 샌들 하나. 운동화가 가장 많았다. 모두 신발을 벗는 동작이 천천히 이뤄졌다. 굽이 낮은 신발일수록 더 천천히였다. 발끝을 바닥에 누르며 뒤꿈치를 살짝 들어 빼는 동작.

침묵의 집 옆 그늘 — 5월 첫 일요일의 바람 방향

법당 우측을 돌아가면 '침묵의 집'이라는 작은 건물이 있다. 문은 닫혀 있었다. 그 옆 등나무 그늘 아래 벤치가 둘. 하나는 비어 있어서 앉았다. 바람이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일정하게 흐르고 있었다. 등나무 잎이 한 방향으로 천천히 흔들렸다. 그늘 안 온도와 바깥 온도의 차이가 체감으로 섭씨 4도쯤이었다. 핸드폰 날씨 앱은 26도라고 했지만 등나무 그늘 아래에서는 22도쯤으로 느껴졌다. 마당 쪽에서 이따금 사람들이 합장하고 지나갔고, 그때마다 옷자락이 짧게 흔들렸다. 옆 벤치에는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있었다. 한 사람은 손에 작은 노트를, 다른 한 사람은 종이컵을 들고 있었다. 두 사람은 거의 말하지 않았고 5분에 한 번쯤 짧게 한 마디씩만 주고받았다. 침묵의 집이라는 이름이 그 건물 안쪽이 아니라 옆 벤치까지 와 있는 것 같았다.

종 한 번이 마당을 가로지르는 시간 — 약 8초

오후 3시 22분에 종 한 번이 울렸다. 정확히 한 번. 종소리가 마당을 가로지르고 일주문 쪽으로 빠져나가는 데 약 8초가 걸렸다. 마지막 1초쯤은 거의 떨림으로만 남아 있었다. 그 사이 마당의 사람들은 동작을 잠깐 멈췄다. 사진 찍던 사람도, 걷던 사람도. 종소리가 사라지고 다시 발자국 소리가 들리기까지 1초의 정지가 있었다. 종소리는 절 바깥의 무엇인가를 잠시 안으로 끌어당겼다가 다시 풀어주는 것 같았다. 마당 한가운데에는 작은 연못이 있다. 종이 울리는 동안 연못의 수면이 1cm 정도 떨리는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 떨렸을 리는 없겠지만 그렇게 보였다는 것이 중요했다. 종소리가 끝나자 연못 위로 다시 잠자리 한 마리가 낮게 지나갔다.

적묵당 마루 끝에서 본 풍경 — 흰 운동화와 검정 단화의 비율

적묵당 마루는 길게 뻗어 있다. 끝에 앉으니 신발장이 정면으로 보였다. 신발장에는 그 시각 서른다섯 켤레쯤이 있었다. 흰 운동화 열여덟, 검정 단화 아홉, 갈색 로퍼 넷, 샌들 셋, 부츠 하나. 흰 운동화가 절반 이상이었다. 5월의 신발이라는 게 있다면 아마 흰 운동화일 것이다. 5월의 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그리고 7월의 장마 직전까지의 짧은 기간에 흰 운동화는 가장 깨끗한 상태로 보일 수 있다. 그 짧은 시기를 노린 듯 흰 운동화가 마루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신발장 옆에 신발 솔이 두 개 걸려 있었다. 누가 두고 간 것인지는 모른다.

내려오는 길 — 성북로26길의 그늘 자리 세 곳

3시 50분쯤 일주문을 다시 나왔다. 내려오는 길에 그늘이 깊게 깔린 자리가 세 곳 있었다. 첫째는 길상사 일주문에서 100m쯤 내려온 골목 모퉁이. 오래된 단독주택 담장과 은행나무 한 그루가 만드는 그늘이었다. 둘째는 성북동 양옥 한 채의 대문 앞. 처마가 길어서 보행자 한 명이 잠시 비를 피할 수 있을 만한 깊이였다. 셋째는 성북초등학교 후문 쪽 담장 옆. 벚나무 가지가 길 쪽으로 길게 뻗어 있었다. 세 자리 모두 사람이 한 명씩 서 있었다. 약속을 기다리는 듯한 자세였다. 그늘 자리는 일요일 오후의 도시에서 잠시 사람을 멈추게 한다. 빛이 아니라 그늘이 사람을 멈춘다는 점이 매번 새삼스럽다.

결론 메모 — 일요일 오후 3시 5분의 길상사

5월 첫 일요일 오후의 빛은 길상사 마당에서 가장 뚜렷하게 느껴졌다. 빛 아래보다 그늘 안에서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는 점이 오늘의 작은 발견이었다. 다음 주에는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 다시 와봐야 할 것 같다. 한 주 사이에 신발의 비율이 어떻게 바뀌는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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