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암동 두텁바위로36길 1938년 즈음 적산가옥 한 채 — 5월 넷째 토요일 오후 3시 12분, 처마 그늘 안의 서늘함
공덕에서 청파동까지 걷고, 다시 4호선을 타고 서울역까지 와서, 거기서 두텁바위로를 따라 후암동으로 천천히 올라갔다. 토요일 오후 3시 12분, 36길의 한 모퉁이에서 적산가옥 한 채를 다시 만났다. 처음 본 건 작년 가을이었는데, 다행히 아직 그대로 서 있었다. 처마 안쪽으로 들어서니 햇볕이 한순간에 끊겼다.
두텁바위로36길에서 적산가옥을 찾는 일
서울역 12번 출구에서 두텁바위로를 따라 약 800m, 후암동주민센터를 100m쯤 지나친 자리에서 36길로 꺾어 들어간다. 골목 폭은 가장 좁은 데가 약 2.4m. 1980년대 슬래브 다세대와 1970년대 시멘트 블록집이 섞여 있고, 그 사이에 단층 일식가옥이 한 채 끼어 있다. 정확한 번지를 적지는 않겠다. 살림집이고, 주인이 계신다. 다만 이 동네에 1930년대 후반에서 1940년대 초반에 지어진 적산가옥은 아직 다섯 채쯤 남아 있다고 나는 세고 있다. 갈 때마다 한 번씩 다시 세는 버릇이 들었다.
처마 깊이 약 90cm, 토방의 너비
이 집의 처마 깊이는 줄자가 없어서 발걸음으로 재 보았는데, 약 90cm 정도다. 같은 동네 1980년대 다세대의 처마(거의 없거나 약 30cm)와 비교하면 세 배에 가깝다. 그래서 처마 안쪽으로 들어서면 햇볕이 한순간에 끊긴다. 오후 3시 12분, 골목 바깥 기온은 손등에 약간 따끔할 정도였는데(체감 23도쯤), 처마 안쪽은 손등이 서늘해졌다. 토방은 폭 약 1.1m, 길이 약 4m. 시멘트로 다시 발랐는데 처음 만든 자리의 콘크리트와 색이 미세하게 다르다.
적색 기와와 잉여 슬레이트
지붕은 적색 기와다. 1930년대 후반에 양산되던 시멘트 기와로 보인다. 골과 골 사이가 좁고, 처마 끝이 약간 들려 있다. 같은 골목의 옆집은 일식가옥의 일부를 헐고 1980년대 즈음 슬레이트로 덧붙인 자국이 분명히 보인다. 슬레이트와 기와가 한 지붕 안에서 서로 다른 시대로 만난 자리. 나는 이 모서리를 카메라 대신 눈에 한 번 더 새겼다.
창문 두 개의 비례
도로 쪽 정면에 작은 창이 두 개 나 있다. 폭 약 75cm, 높이 약 90cm. 현대 다세대의 거실 창(보통 폭 180cm 이상)과 비교하면 작다. 이 비례는 일식가옥의 표준에 가깝다. 안쪽 천장 높이는 직접 들어가 보지 않았으니 단언할 수 없지만, 도로 쪽 창의 윗선과 처마 사이의 간격으로 미루어 약 2.3~2.4m로 짐작된다. 현대 아파트(약 2.4m)와 거의 같지만, 천장이 평면이 아니라 비스듬한 들보 구조였을 것이다.
후암1구역 재정비 예정 — 그 그늘 안의 시간
이 일대는 후암1구역 등 일부가 재정비촉진 또는 재개발 예정 단계에 있다. 정확한 사업 일정은 변동이 잦으니 단정은 피한다. 다만 내가 매번 후암동에 들를 때마다, 새로 비계가 올라가거나 비계가 내려가고 빈터가 늘어 있다. 오늘 만난 이 적산가옥도 다음 가을에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적어도 오늘 오후 3시 12분에 이 처마 안쪽이 서늘했다는 사실은 남는다.
결론 메모 — 그늘은 측정할 수 있다
건축산책을 하다 보면 자꾸 측정의 단위로 적게 된다. 처마 깊이 90cm, 창의 폭 75cm, 천장 약 2.3m. 사라지는 것에 숫자를 매겨두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가끔 회의가 든다. 그래도 적어둔다. 그늘은 측정할 수 있고, 측정된 그늘은 사람이 살았다는 증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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