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둘째 토요일 오후 1시 53분, 충정로3가 충정아파트 — 1937년 4층 회벽과 6각 우편함
나는 5월 9일 토요일 오후, 서대문 충정로3가의 골목으로 들어갔다. 충정아파트 동쪽 벽에 햇살이 비스듬히 박혀 있었고, 회벽의 거친 결이 1937년의 손자국처럼 남아 있었다. 88년 전에 지은 4층 건물 한 채를 한 시간쯤 천천히 돌았다.
충정로3가 250-6, 1시 53분의 도착
5호선 충정로역 9번 출구에서 200m쯤 걸어 올라오면, 충정로3가 250-6번지가 나온다. 정확히 오후 1시 53분에 충정아파트 정문 앞에 섰다. 골목 폭은 4m가 채 안 됐다. 정면은 ㄱ자로 꺾여 있고, 회벽에는 아이보리에서 회색으로 빠진 색이 층마다 다르게 묻어 있었다. 외벽 하단에서 약 1.2m까지는 오래된 페인트가 한 번 더 덧칠된 자국이 있었고, 그 위로는 바람과 비가 그대로 묻은 결이 보였다. 출입구 위 처마는 약 30cm 정도 짧게 튀어나와 있었다.
1937년 도요타아파트의 흔적
이 건물은 1937년 일제강점기 때 '도요타아파트'라는 이름으로 지어졌다. 지금은 '충정아파트'로 부르지만, 지번은 그때 그대로다. 서울에 남은 가장 오래된 아파트로 분류된다. 4층 콘크리트 골조에 회벽 마감, 옥상에는 지금도 빨랫줄이 걸려 있었다. 1층 출입구 안쪽으로 들어서니 천장 높이가 약 2.7m, 복도 폭이 1.6m쯤 됐다. 복도 끝 창은 격자로 나뉜 단창이었고, 창틀의 페인트가 두 번 정도 덧칠된 자국이 보였다. 88년의 시간이 한 자리에 그대로 쌓여 있다는 사실이 묘했다. 새 건물 같은 광택은 없지만, 구획만은 처음 지어졌을 때의 비례를 그대로 안고 있는 듯했다.
6각 우편함 다섯 개
1층 안쪽 벽면에 우편함이 줄지어 붙어 있었다. 한 개당 가로 12cm, 세로 18cm쯤 되는 6각형 함이 다섯 개 남아 있었다. 회색 철판 위에 흰 페인트가 거의 다 벗겨졌고, 호수 표시는 손글씨로 1, 3, 5, 7, 9가 적혀 있었다. 짝수 호는 비어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함마다 세로로 가는 흠집이 일정한 간격으로 나 있었다. 누가 매번 같은 자세로 손을 넣었는지, 같은 자리만 닳아 있었다. 우편함 옆 벽에는 1980년대 풍의 분리수거 안내문이 한 장 붙어 있었고, 그 위에 2024년 12월 자 안내문이 또 한 장 겹쳐 붙어 있었다. 같은 벽에 40년 가까운 시간차가 한 화면에 있었다.
중정과 빨래, 오후의 햇살
건물 가운데에는 작은 중정이 있다. 가로 5m, 세로 7m쯤 되는 직사각형 빈 공간이다. 위로 올려다보니 4층 난간 사이로 하늘이 좁고 길게 잘려 있었다. 2층 난간에는 흰 셔츠 한 장과 베이지색 면바지 한 벌이 걸려 있었고, 3층에는 회색 수건이 두 장 나란히 매달려 있었다. 토요일 오후의 빨래였다. 햇살은 중정 안쪽 벽에서 약 1.8m 높이까지 직선으로 들어와 있었다. 그 선 아래로 한 평쯤 되는 그늘에 새끼손가락만 한 화분이 두 개 놓여 있었다. 하나에는 다육식물, 다른 하나에는 어떤 풀이 자라는지 알 수 없는 흙이 담겨 있었다. 오후 2시 11분, 그 그늘에 잠깐 앉아 있었다.
창틀과 손잡이의 두께
1층 한쪽 출입구 손잡이를 만져봤다. 황동에 가까운 금속이 페인트로 다섯 번쯤 덮여 있었고, 표면이 둥글게 닳아 있었다. 두께는 약 2.2cm. 1937년에 누군가가 이 문을 처음 열었고, 그 뒤로 88년 동안 같은 손잡이가 쓰였다. 창틀은 두께 8cm 정도의 나무틀이었고, 곳곳에 못 자국이 있었다. 1980년대쯤 누군가 한 번 새시로 갈았다가 다시 떼낸 흔적도 보였다. 한 건물의 시간을 만져보는 일은, 사진을 찍는 일과 다른 종류의 기록이었다. 이 손잡이는 도면에 안 남는다. 도면은 처음 모양만 그리고, 닳은 자리는 그리지 않는다.
오후 2시 31분, 골목을 나오며
충정로3가 250-6에서 9호선 방향으로 다시 빠져나오는데 38분이 걸렸다. 정확히 오후 2시 31분이었다. 충정아파트는 등록문화재 후보로 거론된 적이 있고, 재개발 구역에 포함됐다 빠지기를 몇 번 반복했다고 들었다. 지금은 거주민이 줄어 일부 호수만 사용 중이라고 했다. 88년이 지난 건물의 다음 88년이 가능한지 묻기에는 내가 너무 어리고, 답을 듣기에는 이 골목이 너무 좁았다. 그래도 오늘 회벽 한 자락에 비친 햇살을, 6각 우편함 다섯 개를, 중정의 빨래 세 장을, 손잡이 한 개의 두께 2.2cm를 적어둔다. 사라지면, 이 글이 도면이 된다.
결론 메모. 1) 충정아파트는 1937년 도요타아파트로 시작한 서울 최고령 아파트 중 하나다. 2) 회벽·6각우편함·중정의 빨래·손잡이 두께가 88년의 시간을 한 화면에 보여준다. 3) 도면에 남지 않는 닳음을 기록하는 일이, 건축산책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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