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첫 월요일 오후 1시 53분, 율곡로 83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에서 — 김수근의 검은 벽돌탑과 1997년 유리관 사이를 걸었다
창덕궁 돈화문 맞은편, 율곡로 83. 담쟁이가 덮은 검은 벽돌탑 옆에 유리관이 붙어 있다. 김수근이 1971년에 세운 공간사옥과, 그가 떠난 뒤 후계자 장세양이 1997년에 덧댄 유리 증축동. 둘은 같은 마당을 쓰면서 서로 다른 시대의 말을 한다. 5월 첫 월요일 오후, 1시 53분에 나는 그 두 건물 사이를 한 시간쯤 걸었다.
돈화문 앞에서 길을 건너기
3호선 안국역 3번 출구에서 율곡로를 따라 동쪽으로 약 6분. 창덕궁 돈화문 앞 신호등에서 건너편을 보면, 길 끝에 까만 덩어리 하나가 서 있다. 정확히는 두 덩어리다. 왼쪽은 김수근이 1971년에 세운 5층 본관, 오른쪽은 1997년 장세양이 붙인 유리 증축동. 신호가 바뀌고 길을 건너는 동안 두 건물의 윤곽이 합쳐졌다 갈라졌다 한다. 옆에는 현대건설 본사가 거대한 화강석 덩어리로 서 있어서, 이 작은 검은 탑은 더 작아 보인다.
검은 벽돌과 담쟁이덩굴
가까이 가면 외벽이 단색이 아니라는 게 보인다. 검은 벽돌은 한 장 한 장 손으로 구운 듯 광택이 다르고, 그 위로 5월 초의 어린 담쟁이가 연두색 잎을 막 펼치고 있었다. 잎의 면적은 외벽의 사 분의 일쯤. 8월이면 외벽 전체를 덮을 거다. 벽돌은 길이 약 19센티, 폭 약 9센티의 평범한 한국식 적벽돌 치수에 가깝지만, 표면을 일부러 거칠게 처리해 빛이 닿을 때마다 그림자가 작은 점들로 부서진다. 1층 모서리를 손바닥으로 짚어보니, 햇살을 받은 면은 미지근하고, 그늘진 면은 차가웠다. 같은 벽인데 온도가 달랐다.
천장 낮은 1971년 본관 — 좁은 계단을 따라 위로
본관 입구는 작다. 어른 한 명이 겨우 들어갈 폭. 안으로 들어가면 천장 높이가 눈에 띄게 낮다. 대략 2.3미터쯤. 김수근이 의도한 압축감이라고 한다. 좁은 계단이 한 층씩 꺾이며 위로 이어지는데, 폭은 70센티 남짓, 한 사람이 옆으로 비켜야 다른 사람이 올라갈 수 있는 정도다. 계단실 한쪽 벽에 작은 창이 사선으로 뚫려 있고, 그 창으로 옆 건물의 유리벽이 슬쩍 보인다. 계단을 오를 때마다 바깥의 빛이 다른 각도로 들어와서, 같은 계단인데 층마다 색이 달랐다. 4층쯤에서 손목시계를 보니 2시 17분. 24분 동안 다섯 번쯤 멈춰 섰던 것 같다.
1997년 유리관 — 후계자의 응답
본관 옥상에서 연결 통로를 건너면 유리 증축동으로 넘어간다. 장세양이 1997년에 설계한 동이다. 그는 김수근의 제자이자 (주)공간의 후계자였고, 유리관을 완공한 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래서 이 건물은 어떤 의미에서 그의 마지막 말이다. 검은 벽돌탑이 안으로 응축되는 건축이라면, 유리관은 바깥으로 열어주는 건축이다. 정면 유리벽 너머로 창덕궁 인정전 지붕의 곡선이 한 폭의 그림처럼 걸려 있었다. 유리벽 안쪽 바닥은 회색 콘크리트, 천장은 노출 슬래브. 둘 사이에 가구는 거의 없다. 빈 공간이 빛만 받고 있는 형국이다.
옥상에서 본 창덕궁 지붕
유리관 옥상에 올라가니 창덕궁 전체가 발 아래로 펼쳐진다. 인정전, 선정전, 희정당의 청기와와 검은 기와가 5월 오후 햇살에 윤이 났다. 멀리 북악산 능선이 회색으로 누워 있고, 그 사이로 종로 일대의 평지붕 아파트들이 끼어 있다. 옥상 난간에 기대서 한참을 봤다. 시계는 2시 41분. 1971년의 검은 벽돌, 1997년의 유리, 그리고 17세기의 궁궐 지붕이 한 시야 안에 들어와 있는 자리는 서울에서 그리 많지 않다.
결론 메모
2013년 (주)공간이 부도가 나면서 이 건물들은 주인이 바뀌었다. 2014년 아라리오갤러리가 인수해 지금의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가 됐다. 한 시대의 건축 사무실이 미술관이 되는 일은 흔치 않다. 검은 벽돌탑이 사라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옥상에서 내려오는 좁은 계단을 다시 거꾸로 짚으며 생각했다. 다음에는 7월쯤, 담쟁이가 외벽을 절반쯤 덮었을 때 다시 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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