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셋째 일요일 오전 10시 40분, 충신1구역 — 흥인지문 뒤 한양도성 안쪽 골목과 70년대 적산벽돌집 여섯
나는 광장시장에서 동대문 방향으로 8분을 걸어 흥인지문 사거리에 도착했다. 도성 안쪽으로 한 골목만 들어서면 충신동 1구역이다. 70년대 적산벽돌집 여섯 채와 1990년대 다세대 사이로, 일요일 오전의 햇빛이 한양도성 성벽에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다.
흥인지문 사거리에서 충신1동 골목 입구까지 4분
흥인지문 사거리 북쪽 횡단보도를 건너 동대문성곽공원 입구를 끼고 오른쪽으로 돌면, 종로30길과 율곡로 사이의 좁은 골목이 충신동 1구역 입구다. 사거리에서 정확히 4분이 걸렸다. 골목 입구의 폭은 2.8미터, 양쪽으로 1.8미터 폭의 보도가 따로 없이 차도와 인도가 한 면에 붙어 있다. 일요일 오전 10시 44분, 차는 한 대도 다니지 않았고, 빈 손수레 한 대가 골목 끝에 비스듬히 세워져 있었다. 골목 양쪽 담장에는 페인트로 칠한 번지수가 손으로 쓴 듯한 글씨로 남아 있었다. 1-12, 1-14, 1-17. 숫자가 듬성듬성 빠져 있다는 것은 그 자리 집이 헐렸거나 합쳐졌다는 뜻이다.
적산벽돌 여섯 채 — 1972년 등기, 1976년 등기, 1978년 등기
골목 안으로 22미터쯤 들어가면 왼쪽으로 적산벽돌집 여섯 채가 줄지어 서 있다. 일제 강점기 적산가옥과는 구분되는, 1970년대 초중반에 지어진 벽돌 2층 다세대다. 첫 번째 집의 현관 위쪽 명패에는 "1972"라는 숫자가 작게 새겨져 있었고, 세 번째 집 우편함 옆 도시가스 계량기 검침 라벨에는 "1976년 등기"가 인쇄되어 있었다. 여섯 채 중 다섯 채는 사람이 거주 중인 것으로 보였다. 한 채는 1층 출입문이 합판으로 막혀 있고, 2층 창에는 신문지가 붙어 있었다. 벽돌 색은 갓 구운 듯한 붉은 색에서 그을음을 머금은 갈색까지, 50년 동안 햇빛과 매연을 받아 점차 짙어진 결을 보였다. 한 채의 벽돌 사이 줄눈을 손가락으로 만져보니 회반죽이 부드럽게 부스러졌다.
한양도성 성벽이 골목 끝에서 1.5미터 위로
골목 끝까지 걸어가면 한양도성 성벽이 갑자기 1.5미터 높이로 솟아 오른다. 충신1동의 특이한 풍경이다. 일반적으로 한양도성 안쪽은 도성보다 낮거나 평평한데, 이 구간은 도성 안쪽 지대가 살짝 꺼져 있어 성벽이 골목 위로 두 단 정도 높이를 가진다. 성벽의 돌은 조선 후기 보수 시기의 정사각형 화강암과 일제 강점기의 작은 돌이 섞여 있고, 가장 위쪽 한 단은 1970년대 시멘트 보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성벽 아래에 자라는 잡초의 키가 30센티미터쯤 되었고, 벽돌집 1층 창문에서 손을 뻗으면 성벽 돌에 닿을 듯한 거리였다. 도성과 1972년 벽돌집이 한 시야 안에 들어오는 자리가 서울에 그렇게 많지 않다.
1990년대 다세대와 빈집 한 채 — 재정비 논의의 두 얼굴
같은 골목에서 적산벽돌집 맞은편으로 시선을 돌리면 1990년대 중반에 지은 4층 다세대 세 채가 줄지어 있다. 외벽은 회색 화강석 판재로 마감되었고, 옥상에는 일률적으로 파란색 물탱크가 올라가 있다. 세 채 중 두 채는 옥상 난간이 녹슬어 페인트가 벗겨졌고, 한 채는 1층이 주차장으로 비어 있었다. 충신1구역은 2010년대 후반부터 재정비 논의가 있었지만, 한양도성 보존 구역과 인접해 층고 제한이 까다롭고 도성 조망 보호 규정이 적용되어 사업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골목 끝 게시판에는 작년 가을 날짜의 주민 공청회 공고가 빛에 바랜 채 붙어 있었다. 공고의 마지막 줄에는 "도성 안쪽 경관 보호를 전제로 한 정비 방안 검토"라고 적혀 있었다.
일요일 오전 11시, 골목의 다섯 사람
11시 정각이 되자 골목에 사람 다섯이 모였다. 적산벽돌집 두 번째 집 1층에서 60대 부부가 신문을 펼치며 나왔고, 다섯 번째 집 2층 창에서 30대 남자가 빨래를 널었다. 골목 중간 1990년대 다세대 앞에는 노란 우산을 쓴 일곱 살쯤 된 아이와 그 어머니가 서 있었다. 일요일이라 동네 가게 두 곳은 모두 닫혀 있었다. 골목 입구의 작은 슈퍼는 셔터에 "일요일 휴무"라고 손으로 쓴 종이가 붙어 있었고, 그 옆 세탁소는 유리문 안쪽에 신문이 쌓여 있었다. 골목의 시간은 평일보다 한 박자 늦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결론 — 도성 안쪽에서 사라질 수도, 남을 수도 있는 골목
충신1구역은 흥인지문 뒤 한양도성 안쪽이라는 특수한 위치 때문에, 재정비 사업이 일반 재개발 구역과는 다른 속도로 흐른다. 도성 보존과 노후 주거 환경 개선 사이에서 골목 하나하나가 협상의 대상이 된다. 오늘 본 적산벽돌집 여섯 채, 한양도성 성벽 1.5미터, 1990년대 다세대 세 채, 빈집 한 채, 일요일 오전 11시의 다섯 사람. 다섯 가지가 충신1동 골목의 현재이고, 5년 뒤에도 같은 자리에서 같은 풍경을 볼 수 있을지 나는 확신하지 못한다. 도성 안쪽의 한 구간이 사라질 수도, 남을 수도 있다는 사실 자체를 오늘 기록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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