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첫 일요일 오전 10시, 해방촌 신흥시장에서 — 셔터 내린 점포 열한 곳과 청년 공방 일곱 곳
일요일 오전 10시, 해방촌 5거리에서 신흥로 골목으로 들어섰다. 봉제공장이 떠난 자리에 도시재생 사업이 청년 공방을 들였고, 그 사이로 셔터를 그대로 내린 옛 점포들이 두 줄로 늘어서 있다. 살아있는 동네와 박제된 동네 사이를 한 시간 걸었다.
해방촌 5거리에서 신흥로로 — 첫 골목의 폭은 약 2.2m
신흥로는 좁다. 골목 입구 폭을 휴대폰 자 앱으로 재 보니 약 2.2m. 양옆으로 1.5층짜리 시멘트 건물이 그대로 붙어 있고, 위로는 빨랫줄과 전선이 지붕보다 낮게 지나간다. 5월 첫 일요일 오전 10시쯤, 햇살은 아직 골목 한쪽에만 들어와 있었다. 동쪽 벽에는 햇볕, 서쪽 벽에는 진한 그늘. 이 골목은 1960년대 후반 월남민들이 자리 잡고 1970년대에 봉제공장 거리로 굳어졌다고 한다. 내가 들고 다니는 자료는 용산구청에서 배포한 도시재생 백서 한 권뿐이지만, 골목 폭과 건물 높이만 봐도 이곳이 자동차를 위해 그어진 길이 아니라는 건 분명하다. 처음부터 사람이 어깨를 부딪히며 걸어 다니라고 만들어진 폭이다.
시장 가운데, 셔터 내린 점포를 열한 곳까지 셌다
신흥시장 본격 구간에 들어서서, 한쪽 줄을 걸으며 셔터가 완전히 내려진 점포의 수를 셌다. 끝까지 걷는 동안 열한 곳. 그중 일곱 곳은 셔터에 ‘OO미싱’ ‘OO봉제’라는 글자가 페인트로 흐리게 남아 있었다. 한 곳은 셔터 위에 손으로 쓴 종이가 붙어 있었는데, 휴대전화 번호의 앞자리만 보이고 뒷자리는 비에 번져 읽을 수 없었다. 또 한 곳의 셔터 앞에는 1.5리터 페트병에 담긴 물 두 통과 빨간 다라이 하나가 놓여 있었다. 다라이 안에는 흙이 마른 빈 화분 셋. 누군가 여전히 이 셔터 앞으로 출근하는 것처럼 보였다. 영업은 안 하지만 매일 와서 물을 두는 사람이 있다는 뜻이다.
살아남은 청년 공방 일곱 곳 — 가죽, 캔들, 도예 둘, 자수, 활판 인쇄, 1평 책방
같은 줄에서 새로 들어온 가게도 셌다. 가죽 공방 하나, 캔들 공방 하나, 도예 작업실 둘, 자수 공방 하나, 활판 인쇄 작업실 하나, 그리고 한 평 남짓한 독립서점 하나. 모두 도시재생 사업이 들어온 뒤 입주했다는 안내 스티커가 문 옆에 붙어 있었다. 인쇄 작업실 안을 통유리로 들여다보니 활자 케이스 위로 5월의 햇살이 정확히 한 줄 들어와, 자모 ‘ㄱ’과 ‘ㄷ’ 모서리에 노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도예 작업실 한 곳은 이미 영업 중이었고, 작업자가 물레 앞에서 점토를 치는 둔한 소리가 골목 끝까지 울렸다. 일요일 오전 10시 시장에서 들리는 소리가 점토 두드리는 소리라는 건, 이 동네의 새로운 자장가 같다고 적었다.
천장에 남은 둥근 흔적과 페달 자국 — 옛 봉제공장의 잔상
청년 공방 중 두 곳은 입구를 일부러 옛 모습 그대로 살려 두었다. 가죽 공방 입구에는 1980년대식 형광등 갓이 그대로 매달려 있었고, 그 안쪽 천장에는 봉제용 환풍 후드의 둥근 자리만 남아 있었다. 후드는 떼어 갔지만 동그란 흔적은 페인트로 지워지지 않았다. 천장 높이는 눈으로만 어림하면 약 2.4m, 미싱 위로 사람 손이 정확히 닿는 높이다. 또 다른 도예 공방에서는 옛 봉제공장 시절 바닥의 시멘트를 그대로 노출하고, 거기에 짙은 회색 우레탄만 얇게 발라 놓았다. 바닥 모서리엔 미싱 페달이 닿던 자리가 길게 패여 있었다. 새 가게는 옛 노동의 자국 위에 올라타 있었다.
시장 끝, 스무 칸 계단 위에서 본 남산타워와 흰 새끼 고양이
신흥시장 끝에서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계단은 스무 칸쯤, 한 칸의 높이는 약 17cm로 보였다. 계단 끝에 서면 시장의 함석 지붕 너머로 남산타워가 정확히 정면에 걸린다. 일요일 오전의 남산타워는 햇빛을 받아 흰색에 가깝게 보였다. 계단 가운데쯤에서 흰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햇볕 자리를 차지하고 잠들어 있었다. 사람이 지나가도 눈을 뜨지 않았다. 이 동네에서는 그게 자연스러운 풍경이라는 듯이. 고양이의 머리 옆엔 누군가 놓아둔 작은 사기 그릇 하나, 안에는 물이 반쯤 차 있었다.
오늘의 메모 — 살아있는 동네와 박제된 동네 사이
도시재생 사업이 동네를 살린 것인지, 시간을 멈춰 둔 것인지는 한 번 걸어서 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다만, 셔터를 내린 열한 곳 옆에 새로 문을 연 일곱 곳이 있다는 비율 자체가, 이 동네가 아직 결정 짓지 못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뜻이라고 나는 읽었다. 다음에는 평일 저녁 7시에 다시 와 보기로 한다. 일요일 오전과 평일 저녁의 공방 가동률이 같은 동네인지 확인해 봐야 한다. 사라지는 것을 기록하려면, 같은 자리를 다른 시간에 한 번 더 걷는 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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