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둘째 월요일 오전 11시 27분, 신용산역 1번출구 — 아모레퍼시픽 광장 옆 30대 남자 옷차림 열둘

한낮으로 넘어가는 길, 신용산역 1번출구와 아모레퍼시픽 본사 사이의 짧은 횡단보도 두 번에는 점심 직전의 직장인들이 잠깐 모인다. 5월 둘째 월요일 오전 11시 27분, 신호 두 번이 바뀌는 사이 내가 센 30대 남자의 옷차림 열둘을 색과 실루엣으로 정리한다.

1. 신용산역 1번출구, 아침의 여운이 남은 햇빛

나는 평일 점심 직전의 신용산역 1번출구에 자주 선다. 4호선과 경의·중앙선이 만나는 환승역이지만, 1번출구로 나오면 풍경은 의외로 단정해진다. 한쪽으로 아모레퍼시픽 본사의 흰 매스가 광장과 함께 펼쳐지고, 반대쪽으로는 한강대로의 차량이 빠르게 흘러간다. 5월 둘째 월요일 오전 11시 27분의 햇빛은 아직 한낮의 직사가 되기 전이라 사람들의 옷 위에 가볍게 얹혀 있다. 기온은 체감으로 19도쯤, 바람은 거의 없다. 점심을 위해 본사에서 내려온 직장인과 외부 미팅을 마치고 들어가는 사람들이 횡단보도 양쪽에서 천천히 모인다. 나는 광장 모퉁이의 가로수 그늘에서 신호 두 번이 바뀌는 동안 30대 남자 열둘의 옷차림을 마음속으로 메모했다.

2. 색은 줄고, 톤은 더 가까워졌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색의 폭이다. 4월 말 광화문 D타워 앞에서 봤을 때보다 채도가 한 단계씩 더 내려와 있었다. 열둘 중 일곱이 베이지·아이보리·라이트그레이의 옅은 톤이었고, 나머지 다섯도 네이비·차콜·올리브 같은 깊은 무채색 계열이었다. 빨강이나 노랑처럼 튀는 색은 한 명도 없었다. 셔츠 한 장만 봐도 흰색이라기보다 살짝 미색이 도는 톤이 다섯, 옅은 하늘색 계열이 둘이었다. 톤온톤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자연스럽게 들어맞는 시즌도 드물다. 같은 회색이라도 슬랙스와 셔츠가 한 단계 차이로 맞춰져 있었고, 베이지 면바지 위에는 아이보리 셔츠와 옅은 카멜 가디건이 얹혀 있었다. 색을 자랑하기보다, 색을 맞춰서 빼는 흐름이 분명했다.

3. 실루엣 — 어깨는 떨어지고, 바지는 다시 곧아졌다

실루엣은 두 가지 흐름이 동시에 보였다. 하나는 어깨선이다. 열둘 중 아홉의 자켓·셔츠 어깨선이 본인 어깨보다 약간 아래에 떨어져 있었다. 작년 가을부터 이어진 드롭 숄더 흐름이 5월 평일에도 그대로 남아 있다는 뜻이다. 단, 박시한 정도까지 가지 않고 한 사이즈 정도만 여유를 둔 모습이 많았다. 또 하나는 바지 통이다. 4월 중순까지만 해도 발목이 좁아지는 테이퍼드 슬랙스가 더 많았다면, 오늘은 발목까지 통이 거의 곧게 떨어지는 스트레이트 핏이 일곱이었다. 길이는 복사뼈를 살짝 덮는 정도. 신발은 흰색·아이보리 가죽 스니커즈가 여섯, 미니멀한 검정 더비가 셋, 갈색 스웨이드 로퍼가 둘, 발목 지나는 부츠가 하나. 부츠 한 명을 빼면 모두 5월의 가벼운 발끝이었다.

4. 가장 자주 본 한 벌 — 옅은 베이지 자켓 + 흰 티 + 곧은 슬랙스

열둘 중 셋이 거의 같은 공식이었다. 옅은 베이지나 라이트 카멜의 단추 두 개짜리 자켓, 그 안에 베이직한 흰 티 또는 미색 셔츠, 아래에는 차콜이나 다크 그레이의 곧은 슬랙스. 자켓의 라펠 폭은 7~8센티 정도로 좁지도 넓지도 않은 중간이었고, 안감이 비치지 않는 가벼운 코튼 혹은 코튼리넨 혼방으로 보였다. 한 명은 자켓 안에 얇은 메리노 니트 베스트를 한 겹 더 받쳐 입었는데, 그 한 겹이 이 평범한 공식을 미세하게 바꿔 놓았다. 비슷한 옷을 입어도 한 겹의 재질 변주로 실루엣이 달라진다. 5월 둘째 주의 평일 옷장은 화려한 변형보다, 같은 공식 위의 이런 작은 차이로 운영되는 것 같다.

5. 가장 눈에 들어온 한 명 — 미색 셔츠와 카키 워크 자켓

열둘 중 한 명만 따로 메모했다. 키 175센티 정도, 미색의 옥스퍼드 셔츠를 단추 두 개 풀고 그 위에 옅은 카키의 워크 자켓을 걸친 사람이었다. 자켓의 가슴 주머니 두 개는 실용 그 자체로 가만히 닫혀 있었고, 소매는 두 번 접어 손목이 보였다. 아래는 살짝 워싱된 인디고 데님, 신발은 갈색 스웨이드 더비. 광장의 흰 매스를 배경으로 그 사람의 카키와 인디고가 의외로 정확하게 자리를 잡았다. 워크웨어가 사무실의 한복판으로 들어온 게 어색하지 않은 시기다. 헤리티지라는 단어를 꺼내기엔 너무 가볍고, 미니멀이라기엔 디테일이 살아 있다. 그 가운데 어디쯤이 5월 둘째 월요일의 자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6. 20대인 내가 본 흐름 — 노력의 흔적을 가장 적게 들키는 옷

나는 20대 후반이고, 트렌드 글을 쓰면서도 매일 옷을 ‘과제’로 입지 않으려 한다. 오늘 신용산에서 본 30대 남자 옷차림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노력의 흔적이 가장 적게 보이는 옷’이라는 느낌이었다. 색은 톤을 맞추고, 실루엣은 한 사이즈만 비웠고, 디테일은 한 군데에만 줬다. 작년까지의 ‘드러내는 옷’이 가벼운 아이템 한두 가지로 자기 취향을 명확히 보여주는 방향이었다면, 올봄의 평일 옷은 그 반대 방향에서 균형을 잡고 있는 것 같다. 색을 빼고, 핏을 단순화하고, 그래서 입은 사람의 행동과 표정이 옷보다 먼저 도착한다. 트렌드는 표면이고, 그 아래에 흐름이 있다는 말을 다시 떠올렸다.

7. 결론 메모

5월 둘째 월요일의 신용산역 1번출구는, 신호 두 번 동안 30대 남자 열둘의 옷장을 압축해서 보여줬다. 색은 옅고, 톤은 가깝고, 어깨는 떨어졌고, 바지는 다시 곧아졌다. 다음 주 같은 자리, 같은 시간에 다시 서 있어 보려 한다. 같은 공식이 한 주만에 어디까지 미세하게 어긋나는지 — 그 작은 어긋남이야말로 트렌드의 진짜 얼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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